영화스텝노조 공청회...마지막 촛불시위....

73lang 2004.03.28 15:28:33
"담배 펴도 돼요?"

난 허락이 아닌 동의의 미소를 지어보였다.

요즘에도 이런식으로 물어보고 담배를 피우는 뇨자가 있다는 사실에 잠깐 의아하기는 했다.

담배 연기를 멍하니 뱉어내는 조 뇨자...배우라고 했던가

뇨배우의 연기(?)를 잠시 감상한 후

화장실에 가는딕끼 슬그머니 자리를 피했다.

이런 오프라인 동호회 모임에선 회비를 걷기전에 일찌감치 자리를 뜨는 것이 상책이다 ㅡㅡ;;

주머니에 손을 찔러넣고 동전들을 세어봤다.

개죽이 모자 구입 비용으로 나간돈...5,500원

결식아동돕기 후원금...2000원

88멘솔 한갑....1,200

...왜자꾸 200원이 비는거실끄나?...

암턴...또다시 집까지 걸어가야 한다는 결론이 났다.


나의 진실이란 항상 남을 웃기는 효과를 지녔다. 물론 다음엔 심각해 질지라도.


[물은 셀프]

[난 하사모다-에로배우 하소연을 사모하는 모임]이라고 적힌 물통깃발(?)을

1시간동안 정성스레 제작했지만

오늘 있었던 마지막 광화문 집회땐 별로 사용해 볼 여유가 없었다.

디씨 햏자들과 어울려 가열차게 흔들어대는 개죽이 깃발 아래선

오히려 내 물통깃발은 방해만 될 뿐이다. 또 예전처럼 호응이 좇지도 않다.


그뇨도 외로워 보였다.

왼쪽 빨통엔 [탄핵무효]라는 스티커가

오른쪽 빨통엔 [민주수호]가

그리고 축구공보다 탱글탱글한 엉덩이에 [투표참여]라고 적힌 스티커를 붙인 그뇨는,

이런 촛불시위 현장에서 마주치는 뇨자들에게선 보기드문 몸짓과 착한 몸매와 무표정한 얼굴을 지니고 있었다.

모서리쪽이 약간 너덜너덜하게 떨어진 [투표참여]를 두손으로 문질러 주고 싶었다.;;;;



길을 걸으며 가만 생각해봉께 내가 마지막 촛불시위에 디씨폐인들에게 합류한건

영화스텝노조 관련 공청회 때의 그 썰렁함을 보상받고 싶은 심리 때문이였는지도 모른다.



공청회 장소엔 역시나 예상대로 무쟈게 썰렁한 소수의 인원만이 참석했을 뿐이다.

야부리 하나도 안 보태고 150통이 넘는 전화질과 각종 영화협회 회원들에게 수천통의 메일을 보내도

언제나 이런 자리의 영화인들의 참여율은 저조하다.

스스로가 영화 로동자라고 자각하지만

실천에는 소극적일수 밖에 없는 이유가

'언젠가넌 감독이 되겄지...좀있슴 기사다...이번만 지나면 피디다...라는 식의

'계급적 지향성'과 '쿠션 먹으면 다 만나는 좁은 영화판의 입지문제와 수요,공급의 불균형' 땀시 그런 거라넌 이쑤시개(요지)의 경영학 박사 말이 잔상을 남겼다.

그들도 인정하듯 어차피 경영학은 사용자의 입장을 연구하고 대변하는 학문이고 변호사니 노무사니 영진위 행정관료니 하는 '영화스텝 노조 공동 연구'위원들이 할 수 있는건 거기까지다.

그들은 같은 발제석 자리에 앉아 있는 제작사대표의 입장에 더 가까운 사람덜이다.

아무리 그들이 스텝들 입장을 대변하더라도

몇 안되는 영화스텝들이 앉아있던 객석과 그들 발제석의 거리감 만큼이나 떨어져 있을 수 밖에 없는 사람들이다.

결론은....영화스텝은 로동자 로써의 요건이 충분히 갖춰져 있고...또 로동자란다.

1년간의 연구 결과물은 그것이었다....영화인은 로동자다...그럼, 노조를 결성하는건?...

'그건 니들 문제지...만드는 주체들이 스스로가 개척해 나가야 할 문제 아니냐'라는 말에

그래도 소정의 성과는 있었다고 난 느꼈다.

쥐좆 만큼이라도 천천히 조금씩 나아가야 하는 것이다.

하루 아침에 이루어질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

주체가 되야 할 스텝들이 쌩까더라도 실망하거나 전혀 조급해 하지 말자

여기까지 온게 어디냐...



시청근처에서

영화판에선 '운동의 지점을 찾을 수 없어' 한청인가에서 활동한다넌

취화선 연출부 출신의 친구놈을 불러내 택시비를 꿨다.

택시가 한동안 안 잡히자 그 돈으로 담배 두갑과 두유형참이슬(팩소주 --;) 3개를 샀다.

개죽이 모자를 깊숙히 눌러쓰고 물통을 짊어진 채

지하도에서 한뎃잠을 자거나 술에 취해 쌈질을 하고 있는 부랑자들 사이를 걸으면스롱

난 생각혔다.


'좀만 더 걸어가면 집이다...'

우겔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