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화
pearljam75
2004.03.26 15:34:09
난 2001년도에야 휴대폰을 마련했다. 휴대폰이 없는게 편했으니까.
그리고 곧 후회했다.
휴대폰은 당시 고시공부에 매진해야할 나에게 수많은 술약속을 만들게 했다.
왜 인간들이 공부하는 사람을 불러내서 술마시고 꼬장부리고
고민을 털어놓느냐 말이다. 내말은......
남탓 할 것 없이, 나는 머리도 나쁘고 공부도 제대로 하지 않았으므로
당연히, 1차시험을 본 후, 가답안으로 채점을 하자마자 .....다 때려치웠다.
국가고시에 대한 스트레스는 정말 살인적이다.
이번 2003 사시 수석합격이 학교에서 나와 같은 수업듣던 사람이라는 것을 알았을땐,
흑, 다시 돌아갈까? 도 생각해 보았지만,
시험날짜가 다가올수록 겪어야하는 스트레스가 상상만으로도
너무 무섭고 괴로워서 난 고시판으로는 못 돌아갈것 같다....
휴대폰만 없었다면, 내가 그때 수석했을텐데...ㅋㅋㅋ. 크게 구라를 쳐본다.
그리고 내 꿈은 영화판에서 이루어야한다. 고시판이 아니다.
난 술먹고 휴대폰을 사람 머리에 제대로 명중시켜서 피를 본 적이 있다.
피를 본 사람은 나와 휴대폰 커플요금을 하고 있던 놈인데.... 어쩌구저쩌구 그랬다...
커플요금은 곧 해지되었고, 난 6개월동안 핸드폰 사용을 정지시켜두었다.
좀 편하게 살고 싶어서....
핸드폰이 없는 동안, 술자리가 줄어들었느냐, 그건 또 절대 아니다.
집에서 빨리 오라고 독촉전화도 오지 않으니 나는 밤새 마시고, 외박하고 마시고, 며칠씩 집에 안들어가고 마시기도 했다.
그리고 다시 전화를 살려서 쓰고 있는데 요즘엔 전화가 도통 안온다.
다시 핸폰을 살린것을 지인들이 많이 모르기 때문이다.
오늘만도 하루종일 온 전화는 단 두 통이다.
한 통은 그나마 잘 못 걸어서 온 전화였고,
또 한 통은 지난 14일, 광화문 무대트럭에 선 홍석천을 보고
내가 오랜만이라고, 집회참석해서 너무 훌륭하다고 문자를 보낸것을 오늘에서야 보고는
석천 오라버니가 안부겸 답 전화를 한 게 전부다.
얼굴 본지 하도 오래되서 기억도 못할거면서 이태원 가게로 술 한잔 하러 오란다...
띡~ 갔는데, "어디서 봤더라? 우리?" 하면 어떡해?
하루종일 내방 컴퓨터앞에 앉아있으면 집으로 걸려오는 전화를 모두 받아야 하는 건 내 몫인데
낮에 걸려오는 전화는 주로,
부동산 재테크, 정수기, 신문, 박주천 연설회장 참여 부탁, 기타 설문조사 등이다.
나는 무조건 혀짧은 소리를 내며 초등학생인것 마냥
"여버세여... " 한다.
그럼 상대방은 "어, 꼬마야? 어른들, 집에 안계시니?"
그럼 난 "네, 엄마랑 아빠 안 계세여..."
그럼, 담에 다시 한다는 건 예절 바른 텔레마케터들이고 대부분 그냥 뚝, 끊어버리는게 대수다.
물론 만성 축농증으로 코맹맹이인 내가 초등학생 목소리 내는 걸로 다 커버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어린이 영어교실에서 전화가 걸려오면 완전히 잡히는거다.
"여버세여...."
"학생이니?"
"네...그런데여?
"어, 몇학년이야? 여긴, 어린이 영어교실인데..."
"허걱.....저,저, ....대학생이에요!"
그럼 다시 뚝,,,, 성공이닷!
히트는 우리 아빠다.
"부동산 재테크에 관심있으십니까? 저희가 좋은 정보 가지고 있습니다. 투자해보세요. 사장님..." 하면
우리 아빠 말씀:
"아니! 그렇게 좋은거 있으면,..... 당신이 하지 그래!"
........복, 수, 혈, 전! 흐흐흐.. 아빠, 나이쓰~!
미국 코믹 드라마 <앨리 맥빌>에서는 지나친 텔레 마케팅 때문에 집에서 쉴 자유가 없다면서
뉴욕의 한 시민이 텔레마케팅으로 제품 홍보를 하는 회사에 소송을 낸 적도 있다.
어째꺼나 내 졸업앨범들이 부동산회사나 정수기 회사같은델 돌며
내 개인정보가 함부러 유용되고 있는것이 기분 좋은 일이 아니다.
그 텔레 마케터의 전화를 받게 되는것은 더더욱 그러하고...
난 전화가 싫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