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명의 아가씨들......

junsway 2004.02.23 21:19:01
1. 24시간에 대하여.....


지금은 거의 그렇지 않지만 20대 때는 하루라도 무슨 술모임을 만들지 않으면 허탈해서 참을 수 없었다.

그 병이 극에 달해 아예 산속에 집을 하나 마련해서 8개월 동안 술먹고 놀고 한적도 있었다.

서른이 넘었다고 그 즐거움을 마다할리야 없겠지만 지금은 그때와 달라진 것이 있다.

그것은 스물 네시간이라는 시간에 대한 관념이다.

나이를 먹었고, 결혼을 했고, 배가 나왔고.... 주변에서 실컷 욕먹는 나이다.

하루를 쪼개어 생각해 보자면 술먹고 밤을 세우고 개념없이 놀던 때가 언제인가 싶다.

24시간에 곱하기 2하면 48시간이 된다. 그럼... 이틀에 한번 집에 들어가는 것으로 해서 마구 마구 술을 먹으면

안될까? 그랬다가는 와이프가 가방 싸서 친정으로 도망가겠지?



2. 아가씨들.

지금이야 결혼해서 나름대로 안정적이지만 불안한 20대 때야 술자리에 여성이 참여하느냐 안하느냐에 따라

분위기가 엄청 달라졌었던 것 같다. 한때는 정말 여자들한테 말도 잘하고 귀염도 잘 떨고 했는데 요새는 정말

그것도 못하겠다. 녹슬은 것일까? 집에 일찍 들어간다며 뒷모습을 보이던 그 아가씨들, 할일이 있다며 일찍 귀가를

서둘렀던 그 아가씨들, 매너없는 남자애들이랑 더 이상 술못먹겠다며 자리를 박차고 떠났던 그 아가씨들은

지금 결혼해서 애낳고 잘 살겠지? 그나마 새벽까지 같이 술마시고 떠오르는 해를 보며 헤어졌던 그 여성 동지들은

지금 어떻게 살고 있을까? 아마 평범한 아낙이 되어 있겠지? 아니면 아직도 술취한 몸으로 도시 후미진 구석을

비척거리며 새벽을 배회하고 있을까? 선배 누나들이 그랬고, 또래의 여자애들이 그랬듯이.... 2004년의 젊은 아가씨

들은 오늘도 유흥가를, 대학가를, 술집 주변을 어슬렁 거릴텐데.... 유쾌한 일이다.........

그 아가씨들에게 축복과 행운이 있으라.... 조숙하다고, 정숙하다며 일찍 귀가했던 많은 여성들이 꿈꾸었을 헛된

욕망과 관념적인 이상이 그대들에게는 없기에 얼마나 행복한가......



3. 두명의 아가씨들.....

대학1학년때 신촌의 음료권 사서 들어가는 나이트 클럽이 꽤 있었다. 거기서 여자 둘이 서로 서서 똑같은 춤을 추던

그 아가씨들..... 레즈비언이었을까? 글쎄... 그게 뭐 그리 중요하랴.... 술도 잘 안먹고 땀도 잘 안흘리고 서로를

거울보듯이 보며 춤을 추었던 그 두명의 아가씨들... 어떻게 살고 있을까? 보고 싶다. 왜 그랬냐고 묻고 싶고

지금은 어디까지 간거냐고 묻고 싶고, 다시 어디로 떠날건지 묻고 싶다.

그리고 충무로 닭한마리 집에서 본 두명의 아가씨들... 대낮에 소주 4병을 먹어 치우고도 까닥하지 않고 웃으며

벌떡 일어서는데 정말 속이 다 시원했다. 발그랗게 상기된 얼굴이 대낮의 햇빛에 반사되어 그렇게 이쁘고 아름다울

수 없었다. 뭐하는 분들이시길래..... 무슨 좋은 일이 있으신건지..... 타고난 알콜 마니아들이신지.... 그런데 왜

닭한마리에 소주 네병을 드셔야 하는지.... 정말 묻고 싶었다..... 그러나 그들은 음식값을 계산하고 유유히 닭한마리

집을 나서 미련없이 어디론가 떠나버린다. 아쉽다...

그리고 3일전 지하철역 앞 닭갈비집에서 휘청하며 나오는 한 아가씨.. 그리고 그 뒤에 음식값을 치루고 달려나와 부축

한 아가씨.... 시간은 오전 9시 10분이었고, 출근시간도 지나갈 즈음... 의자를 탁자위에 다 올리고도 마지막까지 남아

닭갈비에 소주를 먹었나 보다. 햇살은 너무도 따뜻한데 두 아가씨들은 밤새 둘이서 술을 먹고 이제 어디론가 가려는

듯 주변을 둘러본다. 술집에 나가는 아가씨들도 아니고, 오히려 너무 평범하게 생겨서 충격적인 그 두아가씨들.

출근할 생각을 잊고 잠시 서서 그들을 쳐다보는데 갑자기 울컥 속에서 뭔가가 치민다.

난 늙었구나! 난 24시간의 지배를 받기 시작한 기성세대에 불과하다.

두 아가씨들에게는 어떤 불만도, 거칠것도, 심지어는 그것을 자유로움이라고 말하는 것처럼 용서하지 않을

표정으로 그렇게 서 있었다.

들고 있던 가방을 내팽개치고 그 두 아가씨들과 해장술이라도 한잔하고 싶었던 충동을 간신히 누르고

지하철을 타고 사무실로 향했다.



4. 자유로움마저 거추장스러운......

솔직히 자유롭지도 않지만 그것조차 잊어버리고 싶은... 그런 때는 우리 주변에 얼마든지 있다.

그러기에 두 아가씨들이 보여준 그 여유와 초월의 행동이 지금도 뇌리에 박혀있고 앞으로도 잊혀지지 않을 듯 싶다.

현재를 사랑하는 그들........ 그녀들의 그 아름다운 행동이 나를 행복하게 한다..............




마틴 트래비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