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지 마세요
jelsomina
2003.11.21 06:00:24
요즘 며칠 아팠습니다.
몸이 아프게 된 후에야 건강을 생각하는건 정말 바보같은 일입니다.
먹지 말라는건 먹지 말기.
하지 말라는건 하지 말기.
가끔 산책이라도 하기.
술 많이 먹지 말기.
담배 줄이기.
낮에 일하고 밤에 자기.
간단한 몇가지만 실천하면 될것을 꼭 몸이 엉망이 되고나서야 왜 그걸 못했을까 후회합니다.
항상 그렇지만 몸이 안좋을때는 집에 갑니다.
집에 가서 어머님이 끓여주신 죽을 먹고 된장국을 떠먹고 조금 기운을 차렸습니다.
집이란 그런데 같습니다.
나가서 몸이 망가지면 돌아가는곳.
맘이 망가져도 돌아가고,
쉬고 싶을때 돌아가는곳.
새벽에 조금 나아졌길래 일어나서, 차 트렁크에 쳐박혀 있는 인라인을 꺼내 들고는 아무도 없는 강변길로 나갔습니다
삐뚤 삐뚤... 언젠가 케이블 tv에서 본 걸 흉내내며 타다가 고개를 들어 보니
단지 한 구석 테니장에 농구대가 고쳐쳐 있는게 보입니다.
금새 농구가 하고 싶어졌습니다.
공이 어딨더라 생각을 하다가 공은 사무실에 있는걸 깨닫고는 그 길로 차를 몰고 사무실로 갑니다.
새벽에는 천천히 가도 20분이더군요. 덕소에서 옥수동까지 ...
새벽길을 운전하는건 맨날 집에 갈때 하는 일이긴 하지만
몸이 아픈후에 조금 정신을 차리고 차 창을 다 내린채 찬 바람을 맞으면서 천천히 새벽길을 달리니 기분이 좋아졌습니다
새벽 4시 넘어 사무실에 갔더니 시나리오 쓰고 있는 후배가 있었습니다.
우리 회사는 오전 오후 야간반으로 운영(?) 됩니다.
농구공을 들고 "한판? " 하고 물으니 오케 하고 바로 따라 나섭니다.
찬 이슬을 맞으면서 장충동 공원에 가서 1:1 을 했습니다.
10:9.... 졌습니다.
내가 너 이기고 나서 농구 안한다고 했더니 도대체 언제까지 농구를 할 참이냐고 묻습니다.
한 살만 젊었어도 이길 수 있는데...
돈이 없어서 후배는 장충동 공원에 운동나온 할아버지한테 1400원을 달래서 미지근한 포카리를 사오고
저는 사무실 옆 편의점에 가서 외상으로 빵과 김밥을 샀습니다.
참 좋죠 ?
아프면 돌아갈 집이 있고, 어머님은 맛있는 죽을 끓여주시고
새벽길을 달려가도 같이 운동을 할 수 있는 친구가 있고
처음보는 젊은이에게 선선히 1400원을 기분좋게 뜯기시는 공원의 할아버지
가끔 보는 사이라고 빵과 우유를 외상으로 선선히 내 주는 가게 아저씨 ..
뜬금없는 말이라고 생각들 하시겠지만
행복한 과거의 기억을 남기려해도 지금을 열심히 살아야 하고
행복한 미래를 위해서라도 지금을 열심히 살아야 합니다.
언젠가 후배가 묻더군요.
지난날이 행복했냐고 후회는 없냐고 ...~
잠시 생각하고는 그렇다고 대답했습니다.
다시 살아도 이번 생을 산것 처럼 살았을것 같습니다.
공부는 열심히 안했지만 좋은 친구들을 만났고
게으름을 피웠지만 사랑하는 사람을 만났었고
늦었지만 일에도 매진한것 같습니다.
공부도 조금 더 열심히 하고 게으름을 피우지 않았더라면
조금 더 일찍 시작했더라면 하는 생각이 없는건 아니지만
조금 후회할 일도 남겨두는게 더 사는것 답다고 생각합니다.
후회할 일이 정말 없는 사람따위는 되고 싶지도 않고
그런 사람을 친구로 두기도 싫습니다.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나중에 어머님도 돌아가시고 혼자되서 아프면 어떡하나.
들기름을 넣고 달달 졸인 맛있는 죽은 누가 끓여주고 된장국은 누가 끓여주나
하지 말라는짓 왜 하냐고 누가 날 타박해줄까 ..
그래서 같이 살 사람이 필요한가 보구나 하는 생각이요.
조금 나랑 맞지 않아도 조금 미워도 그래도 같이 사는 사람이 있어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정말 혼자 있을때는 아프지 마세요.
- 조금 정신을 차리고 횡설수설 하고 싶은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