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화분
jelsomina
2003.09.14 14:01:44
하루는 낮잠을 자고 있는데, 날 깨우시려는듯 했다.
엄마가 날 깨울때는 아주 살살 깨우시는데, 나중에 너무 살살 깨워서 내가 못일어났다고 항의를 하면
네 놈이 안 일어나놓고 누굴 탓하냐고 조금 삐지신다.
엄마는 내가 깨워달라고 한 시간인데도 내가 일어나지 않으면 몇번이고 몇번이고 깨우신다.
근데 문제는 너무 살살 깨운다는 것이다.
엄마가 확고하게 믿는게 몇가지 있는데
아마도 그 첫번째가 물을 많이 먹어야 한다는것. 사람 몸이 다 물이라고...
벌레같은것들 쓱 문질러버리면 물만 남지 안느냐고 사람도 똑같다고 ...
그래서 난 어렸을때부터 물을 많이 먹었다. 아니 엄마는 나에게 물을 많이 먹였다.
우리집 아기들이 오기로 하면 물부터 준비하신다. 그래서 우리 아이들도 물을 엄청 많이 먹는다.
키 안크는 애를 보면 그 엄마보고 물을 많이 먹이라고 하고
물을 안먹는 아이들은 성격이 안 좋아진다고 믿으신다. 팍팍해진다고. ^^
그 중에 2번째가 잠잘때는 함부로 깨워선 안된다는것이다.
잠 잘때 급히 깨우면 큰일나는줄 아신다.
예전에 아버지는 내가 안일어나면 찬물을 바가지로 떠와 퍼 부으셨다.
나 고3때는 내일이 시험인데도 졸리다는 말 한마디만 하면 자라고 이불 깔아주시던 분이다.
그리고 3번째가 세상 모든게 사람말을 알아듣는다는것이다.
그날도 자고 있었는데 엄마는 결국 날 깨우지 못하고 혼자 한강변에 나가셨나보다.
늦게 일어나 먹을걸 뒤지는데 이제 일어났냐고 하시면서 무언가 자랑하고 싶으신 눈치가 뚜렷하다.
또 무얼 하셨길래 그런가 궁금해 물었더니, 베란다 화분구경을 시켜 주신다.
백옥같은 하얀 자갈들이 화분을 덮고 있다.
아주 작고 예쁜 흰 자갈들을 주워오시는데 무거워서 내 힘을 좀 빌리시려다가
배낭 메고 강변에 나가셔서 낮 종일 내내 주워오신거란다.
예전에 제주도에 엄마랑 둘이 여행 갔을때 돌아오는 날. 해안 도로를 지나다
여관에 두고 온 물건이 생각나 숙소로 돌아갔다 오는데 엄마는 바닷가에 내려달라고 하셨다.
돌아와보니 언덕너머로 엄마의 흰 머리가 보였다 안보였다 했다. 무얼 하시나 다가가보니
작은 돌들을 줍고 계셨다. 나 오면 들려서 가져갈라고 크고 납작한 돌들도 주워놓으셨는데
그거 다 뭐할라고 그러냐고 했더니 그 큰놈들은 김장 담그면 눌러놓을 것들이고
작은 것들은 화분에 깔아줄라고 하신다고 하던 기억이 난다.
하얀색 자갈들로 옷을 갈아입은 화분은 기분이 좋은듯 보인다.
누나. 형수들의 화분이 죽어갈때면 연락이 온다.
화분이 시들시들하다고...
그럼 며칠을 두고 내 눈치를 보시며 그걸 좀 가져다 주었으면 하신다.
그렇게 한참 실갱이를 하다가 어느날 누나나 형들의 집에 들를 일이 있으면 엄마는 열 일 재쳐두고
나랑 같이 나서시는데 화분을 가져오기 위함이다.
그런 화분들은 엄마의 지극정성 속에서 새롭게 살아난다.
아직 엄마의 손을 거쳐서 살아나지 못한 화분을 본 일이 없다.
그런 엄마의 말 인즉... 정성을 들여 안되는게 어딨냐는 것이다.
며칠을 두고 살아날까 못살아날까 가서 대면하고
꼭 아기 대하듯 잎파리도 닦아주시고, 소소한 가지치기도 해주시고, 비료주고, 물 주고, 흙 갈아주고, 햇빛을 흠뻑 쬐어주면
정말 그렇게 하면 싱싱 ~ 해져버린다. 너무 당연한 말이 아닌가 싶다.
다들 그렇게 못해줘서 시들시들 해진것이지만 ..
가끔씩 말 못하는 아기랑 얘기하듯 하시기도 하는데 이쁘면 이뻐졌다고 칭찬해주신다.
그렇게 씽씽해진 화분들은 제 주인이 가져와서 낼름 들 가져가 버리지만 ...
엄마의 확고한 4번째 믿음은 소망하면 이루어 진다는 거다.
평생을 소망해 이루어 지지 않는일은 없다라는게 엄마의 지론이다.
다만 평생을 소망해야 한다는것.
너무 많이 바라지 말고 꾸준히 소망한 길을 가라는것.
밥 한 그릇 다 먹어야 배 부르지 첫술에 배 부르냐는 얘기다.
지겹게 맨날 듣는 이야기다. 그러다 보니 내 느긋하다 못해 게을러 빠진 내 성격도 다 엄마 때문이다
비닐하우스 부추 베는 아르바이트 때문에 몸이 많이 여위셔서 하지 말라고 난리를 쳤더니 안한다고 안한다고 하셨는데
일어나보니 집에 안계신다. 또 아르바이트를 갔는지...
어머니는 집 밖에 나가면 사람들하고 만나서 일하고 돈도 버는데 집안에만 있으면 뭐하냐고 하신다.
그럼 어디가서 나 같은 할머니가 일을 하냐고 하신다.
자식은 부모의 속을 알 수 없다. 알려고 노력하는일이 아마 최선일것이다.
화분 얘길 하려다가 또 엄마 얘기를 해버렸는데, 예전에 날 사랑했던 아가씨가 이랬다.
"오빤 엄마랑 사겨 ?"
다시는 오해가 없기를 바라지만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