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하의 길 위의 이야기...의 또다른 재미(?)
vincent
2003.08.18 17:24:06
[김영하의 길위의 이야기] 횡단보도 사수하자
버스를 타고 가는데 플래카드 하나가 눈에 띄었다. 눈길을 오래 사로잡을 뿐 아니라 보고난 뒤에도 깊은 여운을 남기는 글귀였다. “주민의견 수렴안는 횡단보도 사수하자!” 우선은 ‘안는’의 맞춤법이 틀려 있다. ‘않는’이 맞을 것이다.
그리고 문장도 이상하다. 상상력을 발휘하여 최대한 그 의미를 짐작해보자면 이럴 것이다. “주민의견도 수렴하지 않고 횡단보도를 철거해선 안된다. 횡단보도 사수하자.”
그러고 나니 이번엔 ‘사수’가 마음에 걸린다. 사전에 따르면 사수는 ‘목숨을 걸고 지킨다’는 뜻인데 아무리 그래도 횡단보도에 동네 주민들이 목숨을 건다니 좀 심하다 싶었다.
보시다시피 이렇게 맞춤법이며 앞뒤가 철저히 안 맞는 과장된 비문법적 구호인데 이상하게 오래 기억이 남았다. 이것이 바로 ‘오류의 주목효과’다. 정확한 문장이라면 무심히 지나쳤을 플래카드지만 이상했기 때문에 오히려 오래 기억되었다.
한글학회에선 싫어하겠지만 저렇게 이상하게 쓰는 게 그들의 목표인 횡단보도 사수에는 꽤 도움이 될 것 같다. 우리도 한번 따라서 외쳐보자.
“주민의견 수렴안는 횡단보도 사수하자!”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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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남동 횡단보도 지켜져야
얼마 전 한국일보 독자광장에 서울 원남동 횡단보도 철거를 반대하는 내용의 투고를 한 독자다. 마침 원남동 횡단보도와 관련한 얘기를 쓴 20일자 ‘김영하의 길 위의 이야기-횡단보도 사수하자’를 읽었다.
작가는 버스를 타고 가다 서울 원남동 거리에 ‘주민의견 수렴안는 횡단보도 사수하자!’라고 쓰여진 플래카드를 보고 느낀 점을 적었다고 했다. 잘못된 맞춤법이나 어색한 표현이 역설적으로 강한 인상을 남겼다는 내용이었다.
작가의 지적대로 ‘수렴안는’이란 표현은 잘못 쓰여진 부분이지만 나머지 부분은 사실과 다르다. 플래카드 원문은 ‘주민의견 수렴안는 횡단보도 없애는 게 웬말이냐-원남동, 연지동, 연건동 횡단보도사수대책위원회’로 작가가 말한 ‘사수하자’는 표현은 어디에도 없다.
물론 오해 없기 바란다. 작가를 원망하거나 서운하게 생각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작가의 재치 있는 글 솜씨에 감탄하고 있다. 아무튼 작가의 글로 원남동 횡단보도 철거문제가 널리 알려져 횡단보도 지키기에 도움이 됐으면 한다. /story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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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하의 길위의 이야기] 골탕
‘골탕 먹이다’라고 할 때의 ‘골탕’은 소의 등골이나 머리골에 밀가루나 녹말을 묻혀 기름에 지진 다음 맑은 장국에 넣어 끓인 음식이라고 한다. 이 말이 어떤 경로를 거쳐 ‘심한 손해나 곤란’이라는 뜻으로 변해 왔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렇지만 이 말이 이토록 오래 살아남은 것을 보면 어원을 떠올리지 않아도 될 만큼 그 어감과 실제가 맞아떨어지는 부분이 있는 모양이다.
월간 ‘맥심’ 6월호는 ‘왕재수들 골탕 먹이기’라는 코너에서 매우 간단하고 신선하면서도 상대적으로 피해가 적은 방법을 몇 가지 권하고 있다. 그 중 하나만 소개한다.
평소 싫어하던 인간에게 전화를 걸어 통신회사라고 말한다. 현재 지역선로 수리 중이니 전화벨이 울리더라도 받지 말라고 한다. 그리고 다시 전화를 걸어 그의 짜증이 폭발할 때까지 5분이고 10분이고 끊지 않는다.
마침내 그가 받으면 ‘받지 말라는데 왜 받느냐’며 따지고 전화를 끊는다. 구체적 인물을 떠올리며 그를 골탕먹이는 상상을 하는 것만으로도 미움은 어느 정도 가신다.
‘골탕 먹이다’라는 말의 용례를 모르는 외국인이나 어린이가 있다면 위의 사례를 통해 금세 이해시킬 수도 있을 것이다.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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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를 읽고] 통신직원 거론 '골탕' 유감
통신업체에서 일하고 있는 직장인이다. 15일자 ‘김영하의 길 위의 이야기-골탕’이 작가의 의도와는 무관하게 통신업체 직원들에게 불쾌감을 불러 일으켜 한마디 하고자 한다.
작가는 통신회사 직원임을 사칭해 상대방에게 전화를 걸어 골탕을 먹이는 방법을 소개한 모 월간지의 내용을 인용했다. 상대에게 전화벨이 울리더라도 받지 말라고 당부한 후 전화를 걸어 끊지 않고 내버려둔다는 것이다. 우리 글을 바르게 알고 넘어가는 것은 바람직하고 이 글을 읽으니 ‘골탕’에 이런 뜻이었구나 하는 느낌도 든다.
그러나 왜 통신업체 직원을 거론하는지 매우 불쾌하다. 내용을 보면 굳이 특정 업종 종사자를 거론하지 않고도 취지를 전달할 수 있다. 지명도 있는 작가라면 자신의 글이 타인에게 오해를 불러 일으키지 않도록 숙고해야 한다고 본다. 통신업체 직원들은 현재 수많은 고객에께 보다 나은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lhyk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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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 상관은 없지만서도..
제가 요즘 과천을 지날 때마다 보게 되는 인상적인 현수막의 문구,
"그린벨트 30년에 기무사가 보답이냐"
30년 동안 그린벨트로 묶여 있었던 것과
기무사가 이 곳으로 이전된다는 것,
그 둘 모두가 과천시민에게는 억울하다는 걸
효과적으로(?) 전달해주는 것 같군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