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만년만의 화성, 삼생의 연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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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08.14 16:55:22
뉘우우스 게시판에 이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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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생에, 그러니까 백이십년전의 나는 늙은 느티나무 아래에 앉아있었다.
얼마 동안이나 그 자리에 나와 앉아있었던가.
그러나 내 사랑은 오지않고 바람과 구름만 오갔다.
문득 아득한 어두운 벌판 끝에서 한 사람이 삿갓을 쓰고 나타났다.
그 사람은 발을 절뚝거리며 백 년은 걸릴 듯 천천히 힘겹게 내가 있는 곳으로 오고 있었다.
내 가슴속에서 나뭇가지 부러지는 소리가 났다.
그의 모습이 분명했다.
바로 그였다! 나는 두팔을 벌리고 끝없는 들판으로 뛰어나갔다.
그도 나를 알아보고는 삿갓을 벗어던지고 달려오기 시작했다.
우리는 죽을 둥 살 둥 모르고 달리고 또 달렸다.
우리 사이의 거리는 십 리에서 오 리로, 오 리에서 일 리로 줄어들었다.
드디어, 마침내, 어쨌거나, 하여튼 우리는 서로를 얼싸안았다.
"보고 싶었어."
"왜 편지를 안 한 거야. 삼 년 내내 매일 여기 나와서 기다렸단 말야."
"거기에는 우체부가 들어오지 않았어. 내 사랑을 전해줄 봉화대도 없었고.
난 삼 년 동안 걸어서 너에게 온 거야. 내가 편지이며 우체부이며 봉화야.
그리고 너의 나이기도 해."
"사랑해. 이젠 정말 헤어지지 않을거야."
"그래. 죽을 때까지."
그래서 우리 두 사람은 끌어안은 채 굶어죽었다.
성석제 <쏘가리>에 실린 '삼생의 연애' 가운데서.
늦잠을 자다가, 어젯밤 달 옆에서 빛나던 밝은 별이 어떤 별인지 혹시 아느냐는
ryoranki군의 뜬금없는 전화 때문에 깼습니다.;; (멋진 친구죠? 여성회원님들께 소개 가능합니다.)
때놓친 점심으로 고춧가루 조금 뿌려 짜장면 한그릇 먹으면서
여기저기 찾아보던 중에 떠오른 것이 이 대목이네요.
육만년의 우주적 거리. 아득한 그 사이.
애니메이션<별의 목소리>도 생각나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