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쓰를 부르는 음악.
sadsong
2003.01.14 15:37:18
<만남을 가져다 준 음악. - 긴 서론.>
오래전이다.
방안에 가만히 앉아만 있어도 눈물이 날 것 같아서 미치게 좋은,
대낮인데도 창밖이 어둠으로 가득한 그런 날.
그러다 가벼운 비라도 내리면,
난 참지 못하고 뛰쳐나갈 수밖에 없는, 그런 하늘색.
그 암흑대낮의 어느순간,
라디오에서 기가 막히게 끈적한 기타연주가 흘러나오는데....
날씨 탓에 더 깊게 꽂혔을 것은 분명하지만,
그 분위기에서의 그 음악은 굉장히, 몹시, 짜릿한 것이었다.
가슴속에, 그 연주곡의 감동이 한꺼풀 정도 깔렸을 -여전히 암울한 하늘색의- 그날 저녁,
나는 반포의 아주 작은 술집에 앉아 있었는데.
이런 우연이 또 있을까.
한참 분위기 무르익어 갈 즈음,
작은 스피커에서 낮에 들었던 그 기타연주가 흘러나온다.
(스쳐들었을 기회를 빼고는) 처음 듣고 푹 빠진 음악을 같은날 또 다시....
일행들에게, 술기운 반 섞인 흥분됨으로 열심히 감동을 전해본다.
"(흥분)내가 아까 집에서, (흥분)이 곡을 라디오에서 들었었거든,
(흥분)와~~ (흥분)이런 우연이.... (흥분)연주 죽이지 않냐...."
하지만,
등장인물들을 한 화면에 잡아보면,
차분한 일행들 가운데 나만 혼자 신났다.
다음날, 음악하는 친구와의 전화 통화에서
겨우 기억에 남아있던, '아주 짧은' 부분의 멜로디를 잠깐 흥얼거려주었는데,
다행히도 친구로부터 바로 답을 들을 수 있었다.
"Parisienne Walkways - Gary Moore"
이제, '스띨 갓 더 블루쓰' 말고도 개리무어 아저씨의 음악을
한 곡 더 알게 된 것이다.
친구의 설명에 따르면,
개리무어 아저씨가 아일랜드 출신인 탓에,
한(恨)의 측면에서 우리 민족과도 어울리는 감성을 지녔을 것이라고.
친구는, 내친김에 개리무어 아저씨 음악들을 몇곡 녹음해 주겠다고 했다.
공테잎은 내가 구입, 제공하는 조건으로. ㅡㅡ;
(소리바다는 물론, mp3 file 같은것도 나돌지 않던 시절이었으리라. 아마도. 아.... 모뎀이었겠구나.....)
<키쓰를 부르는 음악. - 짧은 본론.>
그래서 내손에 쥐게 된,
열네곡 담긴 개리무어 모음집.( 'Gary Moore special' 이라고 친구가 써준.)
그런데, 그 중에서도
그냥 흥겨운것도 아니고, 그냥 블루지한것도 아니고, 그냥 슬픈것도 아닌,
특별한 느낌으로 다가오는 곡이 있었으니....
그 느낌이 어떤것인지 깨닫게 된 이후,
나는 그 곡을 -어느 광고문구를 인용했음직한- "키쓰를 부르는 음악"으로
이름짓기에 이르렀다.
듣고 있자면,
꼭 누군가와 뽀뽀를 해야만 될 것 같은 바로 그 느낌이다.
"With Love(Remember) - Gary Moore"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것은,
기쁨의 키쓰가 아닌, 슬픔의 키쓰임이 분명하다.
마지막 이별의 순간임이 확실하다.
서로의 눈물까지 함께 해준다면 더할나위 없는 것이겠지.
닫힌 실내 공간이 아닌, 넓게 열린 공간에서이다.
인적은 드문것이 좋겠지만, 그렇다고 외진곳은 아니다.
거대한 빌딩숲, 조명으로 치장된 대도시의 아주 늦은 밤거리가 좋겠다.
내 남은 삶에,
몇번의 이별과, 몇번의 눈물의 키쓰가 함께할지.
그러고 보면,
"헤어질 때 또 만나요, 뽀뽀뽀."
이것은, 도저히 쉽게 넘길 수 있는 노랫말이 아닌 것이다.
sadsong / 4444 / ㅈㅎㄷ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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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훗날 우연히 마주친 우리는 터질듯한 가슴으로
덧없이 흘러간 시간을 느끼며 스쳐지나 가겠지
- 다음 세상을 기약하며, 015B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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