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의 어머니

sadsong 2002.07.07 21:15:33
기타를 잘 치는 긴머리 내친구.
내가 전화하거나 집에 놀러갈때면 환하게 웃으면서 맞아주시던 친구엄마는
얼마전 봄부터 기침이 잦아지셨다.
이놈 언젠가 날 만난 날엔 약국서 엄마의 기침약을 사기도 했었던 기억과,
아픈목 달래시게 한다며 달콤한 사탕을 고르던 기억.


아들놈 사간 약에도 잘 멎질 않는다.
설마하고 찾은 병원에선 몹쓸병이라더라.
이미 손쓸 수 없을 말기이고 6개월정도 생각하라고.
그렇게 입원하신게 아마도 세달쯤 전이다.

친구는, 음악의 길을 잠시 미루고 아버지 하시던 피씨방일을 돕고 있었는데,
언젠가부턴 이런저런 사정으로 엄마가 아들을 대신,
그러니까 부모님이 24시간을 둘로 나눠 일을 보시기도 했다.
컴퓨터 기본 사용법조차 몰랐을 어머니까지 가게일에 나서게 된데에는 어떤 사정이 있었겠지.
일하시다 컴퓨터 조작법을 몰라 내 친구에게 전화로 물어보시던 경우도 종종 접했는데
"8월의 크리스마스" 비디오 사용법의 눈물을 아는지 모르는지
이놈은 상냥하게 가르쳐드리질 않고 짜증스러움을 나타내기도 하더라.


입원하신 어머니의 상태악화로 가게를 처분하기로 결정했고,
먹고자며 가게를 보던 친구자신도 빨리 마무리짓고
어머니 간호에만 전념하고자 했다.

친구를 찾아 가게정리를 돕고 있던, 비가 많이 오던 지난 금요일, 7월5일.
친구의 전화가 울리고 전화속 아버지는
아무래도 지금 병원으로 오는게 좋겠다고 말씀하신다.

얼마전 아들이 찾은 때에는, 가지 않겠다고, 기운 내보겠다고 하셨다는데,
하루전 아들이 찾은 때에는, 너무 힘들어서 더는 못버틸것 같다고 하셨다는데,
그리고 나서 하루.

그날 오후까지도 친구녀석은,
어제 며칠만에 병원에서 본 엄마는 이미 의지를 잃은 모습이었다거나
집에 있는 살구씨 기름을 마저 갔다 드려야 하겠다거나
아무래도 일주일을 더 넘기기는 힘들겠다거나
식도에까지 번진 암덩어리로 이제는 물도 못드시고 토해내신다거나....
그런 이야기들을 섞어서 하고 있었다.

비라도 오지않는 날까지만 버텨주시지....라면서
같이 지하철을 타고 가는 중에도 재촉하는 전화는 두 번을 더.
한걸음에 닿지 못함을 안타까워하며 병원으로 달려가는 아들마음 아시는지 모르시는지....
조금을 더 기다려주지 못하시고 그냥 그렇게 떠나가셨다.
마지막을 지켜드리지 못했다는 것은 친구에게 어떤 상처로 남을지.

병원에선 6개월이라지만 더 노력해서 조금 더 지키겠다던 희망은 그렇게
세달여만에 마무리되어졌다.


오늘, 아들들 친구들은 어머니를 모시고 비탈 심한 산길을 올라
바람 시원하고 공기맑은 곳에 뉘여드렸는데,
산아래 호숫가에는 휴일맞은 가족들이 즐겁고,
어제까지 서럽게 비를 뿌리던 하늘은 눈물이 나게 맑고,
사진속 어머니도 밝게 웃으시고.
그 웃음을 잘 알던 나는....



비오던 그날 낮에, 지나간 수요예술무대를 뒤지다가
새삼 목소리에 푹 빠져서 다시 듣게된 박혜경의 노래제목이
뒤에 알고보니 "Rain"


sadsong / 4444 / ㅈㅎㄷㅈ
=====================================================
아주머니, 어머니.... 그 환한 웃음 기억하며 잘 살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