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기, 바퀴벌레 이야기.

sadsong 2002.06.07 12:53:14
날개짓 싸운드 하나만으로 백만배도 넘을 몸집을 가진 인간을 밤새
고통속에 잠못이루게 하는 모기의 파워는....

타고난 외모로, 반짝출연만으로도 온가족을 긴장시키는  바퀴벌레의 파워는....


- 모기 입장에 서서 -

그놈은, 지가 먹고사는 음식이, 살아있는 다른 생명체의 체액인지를,
그 다른 생명체에 피해를 준다는걸 알면서 그러는 건지를,
한 때 진지하게 생각해 본적이 있다.
인간이 '당연히 아무 생각없이' 지하수나, 계곡에 흐르는 맑은 물 떠먹는 것처럼,
모기도 '당연히 아무 생각없이 지천에 널린 혈관에 흐르는 피를 먹는건 아닐까....

만약 모르고 그러는 거라면, 아무 죄없이 먹이찾아 먹고 있는데,
'밥먹을땐 개도 안건드린다'는 인간들이(인간이란 존재 자체를 인식하기는 할까....)
손바닥, 책, 독극물, 파리채(모기채도 아닌.... 모기 자존심 땅에 떨어짐.) 등으로
생명을 앗아가는 판인데, 모기로선 참 황당하기도 하고 열받는 일이겠구나.

그래서 그런 생각을 했었지.
뭣모른는 저놈을, 온몸을 터트려가며 때려잡을 권리가 나에게 있는가.
난 조금 가렵고 불편할 뿐이지만(물론 질병, 죽음을 초래하는 모기도 있긴 하지만....)
저놈은 굶어죽지 않으려고 먹이를 찾아나선것 뿐인데.

그래서 또 그런 행동을 했었지. 몇해전 여름이던가.
손으로 모기를 '살짝' 잡은다음 날아가지 못하게 조심조심 손을 펴서
가위로 모기의 침 부분만을 자르고, 그리곤 다시 날려보내는.
난 모기를 죽이지 않았고, 모기도 날 찌르지 못할거고.
그런데 사실, 살짝 잡는다는게 어려워서 상당수가 다시 날지 못할 지경에 이르고....
어차피 침을 잘리는 고통과.... 피 못빨면 수일내로 죽기는 마찬가지겠고....
한방에 터져죽으나 굶어죽으나.... 그래서 다음해부터는 다시 때려잡는 쪽으로 복귀.
(혹시 모기가 피 말고, 풀을 뜯어먹는다던가.... 음식물이나, 배설물이나 뭐....
그렇게라도 연명할 수 있는건 아닌지.... 아시는분?)


아무튼 지난밤은 그렇게.... 더위와 모기덕분에 세시간을 자고 일어났다.
다섯군데 정도의 빨갛고 동그란 훈장을 달고.



- 외래종 바퀴벌레를 위한 배려 -

그렇게 부시시 눈을 떴는데,
머리 위 저만큼에서 아주 작고, 아주 짧게, '바스락'(?) 소리가.
내가 그 미세한 소리를 어떻게 감지했는지, 또 어떻게 그 소리로 '바퀴벌레겠구나' 하고
단번에 직감했는지, 참 신기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아무튼 바퀴벌레일거란 생각으로 반사적으로 자리에서 일어나 소리난 곳을 보니,
역시나.... 큼직한 한 마리, 더듬대고 있다.
'그동안 바퀴벌레 청정지역이었던 내 방에도 드디어 시련은 시작되는구나....' 하는 짧은 탄식과 함께
내려칠 신문지를 찾으려는데....

문득 떠오른 생각,
'저렇게 큰놈들은 미국바퀴이거나 독일바퀴이거나 아무튼 토종아닌 외래종이라던데....'
난 더 이상 망설일 것도 없이,
수북한 '한글 신문'들을 뒤로한 채, 어디선가 굴러 들어왔을 '영자 신문'을 집어들고
민첩하게 내리친다. 한번, 두 번.... 퍽. 퍽.
죽을 때 죽더라도 기분 덜 나쁘게, 혈통에 맞는 대우는 해주자....

KO 된 자태를 잠시 감상하고 귀찮아서 뒷처리를 미룬채 다시 잠시 누웠는데, 5분쯤 뒤?
엄마, 방에 들어오시고, '잡아놨으니 좀 치워달라'는 불효막심하나 정중한 요청을 하는데....
엄마 : "어디? 없는데?"
놀라서 다시 시선을 돌린 그곳엔.... 그놈의 모습 온데간데 없고.
밀려오는 공포....




다행히, 멀지 않은곳에서 발견된 그놈은 덤으로 '국산' 살충제까지 경험해야 했지.


sadsong / 4444 / ㅈㅎㄷㅈ
================================
이번에도 역시, 아직 뒷처리는 하지 않았다.... 설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