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말하라구
vincent
2001.11.25 14:46:21
싫어한다기보다, 어떻게 하라는건지, 정말 대책 없는 말들이 있다.
피디나 감독한테 이런 말 들으면 한동안 머리속이 멍-해진다.
(오해를 막기 위해 이 이야기는 특정 인물과 관계 없음을 밝힙니다)
아이디어를 낸다. 이렇게 풀면 어떨까.
돌아오는 대답.
"음... 쉽지 않을텐데..."
혹은..
"그거.. 어려울텐데..."
속으로 나혼자 대답한다.
"알았어요. 그건 어려우니까 포기하고 쉬운 길을 찾아보죠."
아니면...
"가만있어봐... 그러니까 그 말은 그건 어려운 방법이고,
난 그렇게 어려운 건 못풀거 같다 이거죠?
내 능력에 맞는 쉬운 길을 찾아봐라?
그럼 다른 사람 알아보세요."
더 심하게는
"어려울텐데... 풀 자신 있어?"
이번엔 자신감 테스트다.
아니, 내가 자신 있다면 할거고 자신 없다면 안할건가?
속으로 대답한다.
"아뇨, 자신 없어요. 그러니까 하지 말죠."
문제는 제기한 '그것'을 검토하는 태도의 문제이다.
시나리오는 함께 만들어간다고 모두가 창작력을 발휘해서
지치지 않고 소화도 안되는 아이디어를 내놓는 집단도 괴롭지만,
한발짝 떨어진 듯 판단하려고만 하는 집단도 괴롭긴 매한가지다.
이들은 자기들은 시나리오에 관한한 작가에게 일임하겠다며
겸손을 떨다가도 시나리오만 나오면 팔짱을 끼기 시작한다.
세상에 쉬운 시나리오는 없다. 매순간, 언제나 어렵다.
새로 무언가를 쓰기 시작할 때마다 그게 지금까지 했던 작업중에
가장 힘든 작업이 된다.
어렵고 쉽고를 판단해달라고 머리 싸매고 고민한 결과를 제기하는
바보가 어딨을까. 쉬우면 고민도 안했겠지.
다만...
그것이 만들려고 하는 영화에 근접한 것인지 꼼꼼하게 검토하고
맞다면, 어떻게든 가장 근접한 모양새가 나올 때까지
쓰고 토론하고 다시 쓰고 또 고치고, 계속 해나가야만 하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대안 없는 문제제기처럼 속 터지는 일도 없는데
대부분의 경우 모니터링을 한 후 문제제기는 수도 없이 쏟아지지만
'대안'스러운 대안은 찾아보기 힘들다.
사실, 모니터링을 도대체 왜 하는건지 의아할 때도 많은데
대부분의 문제 제기 지점들은
작가도 감독도 피디도 모두 인식하는 지점일뿐더러
향후 수정작업 시에도 그것이 공통으로 지적되는 지점이라서가
아니라 만들고자 하는 영화의 상에 더 근접하기 위해
수정을 불사하는 것이니까...
여하간, 그 지난한 과정들이 어렵건 쉽건
(쉬운 경우는 절대 있을 수 없지만)
가야할 길이라고 여겨진다면, 그 순간 그 지난한 과정을 마다할
작가는 없을 것이다.
언제나, 어렵더라도... 가야할 길만 놓여있을 뿐이다.
그 가야할 길에 나 대신 다른 누군가가 나서더라도 말이다.
나도 한 번 질문해볼까.
"음, 어려운 영환거 같은데... 만들 자신 있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