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림.
junelee74
2001.06.15 00:34:51
어릴적 내가 살던 동네엔 '도깨비시장'이라는 곳이 있었다.
엄마가 어쩌다 나를 혼자 집에 남겨두고 도깨비시장이라도 갈라치면
나는 엄마 치맛자락에 질질 매달려 약 30여미터를 배를 바닥에 대고 줄줄 밀면서
땡깡을 부리다 마침내 엄마가 무서운 힘으로
치마를 부욱 찢어버릴듯이 나를 떼내였을 때에야 비로서 포기하고
집안, 엄마가 들어오는 대문이 가장 잘 보이는 곳에 바르게 앉아
엄마가 나간 그 순간부터 엄마가 들어올때까지의 그 시간을
눈 깜박임 마저도 자제하면서 꼼짝않고 엄마를 기다렸다.
그저 같이 따라가지 못한것에 대한 무언의 시위라고 보기엔
어린 나의 기다림은 뭔가 사색적이고 구도적인 빛깔까지 띄었다.
'엄마를 기다리는 동안 내가 뭔가 딴짓을 하면...엄마가 돌아오지 않을꺼야'
따위의 슬픈 생각에 사로잡혀
움직일수도 숨을 제대로 쉴 수도 없었다.
이상하지.
울 엄마가 끊임없이 가출을 꿈꾸던 '노라' 캐릭터의 아줌마도 아니었는데
그 당시 일곱 살에 불과했던 어린 난
뭐가 그렇게 불안하고 슬펐을까.
그로부터 아주 오랜후에
집안의 오랜 비밀을 하나하나 얻어듣기 시작하던 어느날.
내가 세살때,
집안 사정으로 몇개월동안 엄마가 나를 할머니집에 맡긴채
찾으러오지 않았다는 얘기를 할머니로부터 듣게 되었다.
할머니집에 살던 세살난 나는
하루에도 몇번씩
할머니집의 오래된 수돗가에서 대문쪽을 바라보며
이런 노래를 불렀다고 한다.
"한다알(한달)...드다알(두달)...해 가고 가아도(가도)
편지 한장 언네 (없네)"
기억이란
기억에 의한 반사작용이란
몸 어딘가에 자기들만의 세포를 숨겨두었다
때때로 움찔움찔 거리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