뿌리를 알자~
cryingsky
2001.05.19 13:30:39
@^.^@ [충격르뽀] 랩의 원조는 한국이었다!
이제는 우리나라 가수라는 사람들의 노래에 없어서는 안 될 것이 되고만
'랩'이라는 장르.
흑인 신세대 음악을 대표하는 랩과 힙합은
1970년대 말 뉴욕에 있는 흑인클럽과 거리에서 생겨났으며
최초 랩 히트곡으로는 1979년 말 '슈거힐 갱'이 부른 '래퍼의 환희(Rapper's
Delight)'라는 것이 정설이다.
그러나...
과연 우리나라에는 '랩' 문화가 없었는가 라는 사실에 의구심을 갖고 추적하던
본인은 놀랄만한 결과를 얻었으니...
그건 우리나라가 세계 랩의 종주국이란 사실이였다!!!
그 입증은 79년 이전의 국내 랩 뮤직을 찾아내는 과정을 통해 얻어졌다.
자 이제 그 근거를 함께 찾아 가 보도록 하자...
1. 국내 최초의 랩 뮤직 히트곡은 서태지와 아이들의 '난 알아요'(`92)라고
알려져 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크게 반론을 가지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우린 한가지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서태지는 단 한번도 '자신이 국내 랩 도입자' 라고 주장한 적이 없다는 사실이
바로 그것이다.
그렇다면 자존심으로 먹고 사는 뮤지션인 서태지를 숙연하게 한 그 대뮤지션은
과연 누구일 것인가?
2. 그렇다!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88년에 홍서범이 부른 '김삿갓'을
발견할 수 있다.
일부 음악 사가들에게 '국내 최초의 랩 음악' 이라고 추앙 받고 있는 이 곡의
가사는 아래와 같다.
듣기 : 김삿갓 <http://music2002.net/myjb/list.asp?singer=홍서범>
김삿갓 - 홍서범 -
김김 삿갓 김김 삿갓삿갓 김삿갓~
1807년 개화기에 태어나
어렸을 때 부터 글 공부를 좋아하여
열 살 전후에 사서삼경 독파
이십세 전후에 장원급제 했네
안동 김씨에 본명은 김병연
어머니를 모시고 아들 둘에 처 하나
중국의 이태백 일본의 판쇼
그렇다면 보여주자 대한민국 김삿갓! (1절)
80년대로서는 파격적이였던 이 노래는 '유치하다'라는 평과 함께 역사의 그늘로
묻히는 비극의 곡이 되고 말았다.
왠만한 랩퍼들이 30초면 소화할 가사량을 무려 3분 30초나 불러댄 홍서범의
능력도 문제였지만 (들어보면 상당히 발음이 또박또박 하다)
사실 전혀 신나지 않은 멜로디가 더 큰 문제였다...
그러나 그는 우리나라 랩음악사에서 당당히 한 축을 차지할 자격이 있다.
하지만...
홍대인 조차도 본인이 우리나라 랩음악의 시조라고 감히 주장하지 못하니...
3. 그것은 '김삿갓' 2년 전에 선수를 친 송창식의 '담배가게 아가씨'(`86)의
존재 때문이였다!
듣기 : 담배가게 아가씨 <http://www.sbs.co.kr/music/wmko/f0595.asx>
담배가게 아가씨 - 송창식 -
우리동네 담배가게에는 아가씨가 예쁘다네
짧은 머리 곱게 빚은 것이 정말로 예쁘다네
온 동네 청년들이 너도나도 기웃기웃기웃
그러나 그 아가씨는 새침떼기
앞집의 병열이 녀석은 딱지를 맞았다네
만화가게 진원이 녀석도 딱지를 맞았다네
그렇다면 동네에서 오직 하나 나만 남았는데
아! 기대 하시라 개봉 박두
다음날 아침 일찌부터 담배 하나 사러가서
가지고 간 장미 한 송이를 살짝 건네어 주고
그 아가씨가 놀랄 적에 눈싸움 한 판을 벌인다.
아 자자자자자자자자
아 그 아가씨 웃었어 (1절)
무려 5분 20초라는 파격적인 길이를 자랑하는 이 노래는 쉴새없이 중얼거리는
리듬감, 전달 메세지의 완벽한 나열, '아자자자'라는 정체 불명의 후렴구 등
'랩'뮤직으로 인정하기에 조금도 손색이 없었다.
그러나... 이렇게 훌륭한 노래를 발표한 송대인 조차도 본인의 공을 주장하지
못했으니...
그 이유는...
4. 그보다 1년 전에 발표된 조용필의 '킬리만자로의 표범'(`85) 때문이였다.
당대를 풍미한 대 작곡가 김희갑씨가 작곡하고 그의 부인인 방송작가 양민자씨가
작사한 이 노래는 김희갑씨가 나중에 밝혔듯이 분명히 랩을 염두에 두고 작곡된
노래였다.
(조용필씨가 랩을 소화 못해서 독백 형식이 되었다 한다...)
듣기 : 킬리만자로의 표범 <http://www.sbs.co.kr/music/wmko/f0335.asx>
킬리만자로의 표범 - 조용필 -
먹이를 찾아 산기슭을 어슬렁거리는 하이에나를 본일이 있는가
짐승의 썩은 고기만을 찾아다니는 산기슭의 하이에나...
나는 하이에나가 아니라 표범이고 싶다
산장 높이 올라가 굶어서 얼어죽는 눈덮힌 킬리만자로의
그 표범이고 싶다...
자고나면 위대해지고 자고나면 초라해지는 나는 지금
지구의 어두운 모퉁이에서 잠시 쉬고 있다
야망에 찬 도시의 그 불빛 어디에도 나는 없다
이 큰 도시의 복판에 이렇듯 철저히 혼자 버려진들 무슨 상관이랴
나보다 더 불행하게 살다간 고호란 사나이도 있었는데...
바람처럼 왔다가 이슬처럼 갈 순 없잖아 내가 산 흔적일랑 남겨둬야지
한줄기 연기처럼 가뭇없이 사라져도 빛나는 불꽃으로 타올라야지
묻지마라 왜냐고 왜 그렇게 높은 곳까지 오르려 애쓰는지 묻지를 마라
고독한 남자의 불타는 영혼을 아는 이 없으면 또 어떠리... (1절)
1절이 이 분량인데... 무려 3절까지 있다...
6분이면 조용필씨로서는 상당히 숨가쁘게 불렀다는 이야기다...
그렇다면 과연 이 노래가 한국 최초의 랩이자 세계 최초의 랩인 것인가?
그렇지 않다...
세계 최초의 랩이 되기 위해서는 79년 이전의 작품이어야 하는 것이다.
한국 가요계의 전설 조용필씨 조차 자신이 '랩'의 최초 도입자라는 공적을 감히
어디에서도 내세우지 못했으니...
우리는 잠시 후 그 이유를 알게 된다.
5. 그렇다면 세계 최초의 랩 음악을 발표한 사람은 과연 누구인가!
그를 찾아내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였다...
그러나 오랜 작업끝에 그 작품을 찾아낸 본인은 몸에 강한 전율을 느꼈다.
그 창세기적 작품은 바로...
'잘했군 잘했어'(71)였던 것이였다!!!
듣기 : 잘했군 잘했어 <http://www.sbs.co.kr/music/wmko/f5321.asx>
잘했군 잘했어 - 고봉산, 하춘화 -
영감 왜 불러 마누라 왜 그래요
뒷뜰에 뛰어놀던 외양간 매어놓은
병아리 한쌍을 보았소 얼룩이 한마리 보았나
보았지 어쨌소 보았죠 어쨌소
이 몸이 늙어서 친정집 오라비
몸보신 할려고 먹었지 장가들 밑천해 주었지
잘했군 잘했어 잘했군 잘했어
잘했군 잘했군 잘했어 잘했군 잘했군 잘했어
그러게 내 영감이라지 그러게 내 마누라지
영감 왜 불러 마누라 왜 그래요
사랑채 비워주고 딱정댁 마나님이
십만원 전세를 받았소 술값의 독촉을 왔었-나
받았지 어쨌소 왔었죠 어쨌소
서양춤 출-려고 술병을 고칠려고
쌍나팔 전축을 사왔지 지리산 약캐러 갔다 했지
잘했군 잘했어 잘했군 잘했어
잘했군 잘했군 잘했어 잘했군 잘했군 잘했어
그러게 내 영감이라지 그러게 내 마누라지
감동의 눈물이 앞을 가리는 순간 이였다.
이 노래의 가치는 다음만 봐도 알 수 있다.
1. 미국 최초의 랩 히트곡(`79) 보다 8년이 빠름
2. 최고 난이도의 듀엣 랩송을 2분만에 소화하는 초절정 실력
3. 전주부의 토속적이면서 아주 강한 비트의 효과
"뚱뚜두두두 뚱뚜둥 뚱뚜두두두 뚱뚜둥~"
4. 가사의 반 사회성
몬도가네식 보신주의(병아리 먹음), 처가 식구와의 갈등, 과소비와
향락(전세금으로 전축사고 춤배움), 그외 거짓말
이 노래를 부른 고봉산 선생은 본명이 김민우로(예명이 김민우가 아니라 본명이
김민우다... 예명은 왜 만들었을까...그렇다! 랩퍼는 예명이 특이해야 하는
것이다!)
1920년 4월에 태어나 평양 의학 전문학교를 졸업한 엘리트 가수였고 하춘화씨는
70년대를 주름잡은 대가수였다.
즉! 당대의 가수 둘이 힘을 합쳐 세계 최초의 랩 음악을 발표하였다는 사실에
우리는 숙연해 질 수밖에 없다...
6. 지금까지 우리 나라가 랩의 종주국임을 증명하는 증거들을 확인해 보았다.
이제 우리 음악이 미국 할렘의 흑인 음악에 종속되어 있다는 자괴감을 버리자...
그리고 신세대 가수들은 대선배들의 엄청난 선구자적 정신을 보고 반성하고 얻는
것이 있어야 할 것이다...
으악 ! 돌 날아 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