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에
hal9000
2001.02.10 03:46:42
2월 이맘때면
항상 생각이 많아지는 기분이다.
생각한다는 건 역시 과거를 재료로.
.
.
신정동에 살 때
그 때 국민학교 4학년때
학교안에 새마을 금고가 생기고
난생 처음으로 내 통장을 만들기 위해
집 근처 시장에서 이천원 주고 목도장을 팠다.
도장 파는 아저씨는 김치찌게를 먹고 있었다.
통통한 어린 놈이 도장 파달라고 할 때는 얼마나
귀여웠길래 배달된 큰 쟁반을 옆에 미루고 나무토막을 골랐을까.
"도장 얼마에요?" ... "어? 백만원!"
난 무얼 안다고 그 얘길 듣고 웃었을까.
엄마한테서 받아온 건 전부 오천원인데.
쭈뼛쭈뼛 도장 파는거 구경하면서 아저씨 눈치 보면서.
오천원 넘으면 어떡할지 걱정 참 많이 했다.
...동시에
도장 파는 사람은 치과의사처럼 거울을 보면서 일하지 않는구나...
가게 안에 주렁주렁 걸린 열쇠들은 언제 다 팔릴지
아저씨 도장 파는 잠깐동안 대신 걱정을 하기도...
김치찌게 다 식겠다...
아저씨 눈 나빠 지겠다...
손 베면 피 나는데...
이름보다 성이 더 크면 어떡하지...
오천원 넘으면 어떡하지...
저금 많이 해야지...
푸후! 막대기에 세긴 내 이름 표면에 한번 불고는
인주 한번 꾹 뭍이고 종이에 찍어보는 아저씨.
내 이름.
도장 옆면에 살짝 넘쳐서 묻어 있는 인주.
어른들이 여기저기서 도장찍는 모습들이 떠올랐다.
그런 스치는 기억하고 비슷한 이미지에 내이름이 찍혔다.
지금 성장하는 기분.
연필. 지우개. 공책처럼 따로 내 이름을 안 써놔도 내 것인.
그리고 이천원이라고 말하는 아저씨. 아! 기분좋은 앙상블.
시장골목에는
꽁치도 있고
시금치도 있고
도토리묵도 있고
참기름도 있고
쏘세지도 있고
복숭아도 있고
팽이도 있고
...
..
.
다음 날 학교에 가서
1교시가 끝나고 통장을 만들었다.
아이들 55명 중에 도장있는 열명 조금 넘게만 통장이 생겼다.
새마을 금고 통장을 만들때는 1000원과 도장을 줬다.
새삥 빳빳한 종이로된 통장에 내 이름을 쓰고
내 도장을 찍고 그 위에 비닐 스카치 테이프를 덮어 발라준다.
이제 이건 죽어두 내 꺼.
그걸 구경하고 한장 더 넘기면 1000원이라고 찍혀져 있었다.
난 천원이 없는듯 보이지만 천원이 있는 것이었다.
2교시가 끝나고
2교시 내내 생각하던 돈 계산을 했다.
일주일에 천원씩 일년이면 얼마고 십년이면 얼마 모이겠지.
일단 일주일에 천원씩 일년을 모으고
포수 글러브랑 홍키공을 사야지...
일주일에 이천원씩 저금할 수 있다면 나중에는
집도 사고 차도 사고 내가 좋아하는 소녀랑 극장도 가야지...
다른 해 2월 중학교에 올라가고
저금해서 듣는 칭찬보다 또 다른 재미에 빠지면서
새마을 금고 통장을 더 불리지는 못했다.
그래도 다행히 포수 글러브는 샀다. 글쎄 다행인지.
.2월에는 또 포수글러브를 샀던 달이다.
..포수 글러브는 두껍고 무거워서 길을 잘 들여야 된다며
...지나가는 자동차 밑에 던져 넣고 깔고 가기를 기다리기도 했다.
....운전하던 아저씨가 놀라서 차를 세우고..
.....우리들은 놀다가 떨어져서 차 밑어 굴러간거라며 죄송하다고 하고...
.....또 2월은 겨울 방학이 끝나는 달이고...
.....또 2월 달은 수다스러운 달이고.
.
..
보고싶은 사람도 갑자기 생기는 달이고...
9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