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우개 공장 1
hal9000
2000.08.10 03:22:40
학교가 끝나면 빨리 집으로 가서 가방부터 팽개치고
동네 아이들하고 놀궁리를 했다.
무얼 하고 놀 것인가.
그래. 우리에는 골목이 있었다.
찻길에 가깝게 넓기도 하고 중앙선도 그려져 있어서
그다지 골목답지 않은 골목이지만
그래도 저쪽 복개천 공사를 하는
팔십 미터쯤의 근대화 근 연쇄점 까지는
정확히 우리가 점령한 인정된 놀이터 였다.
땀을 뻘뻘 흘리며 술래를 피해 달리기도 하고
얌체공 하나에 아이들은 우르르 몰려 다니기도 하면서.
맨몸으로 열심히 뛰어 다니고 웃기도 엄청 많이 웃었다.
그런 웃음은 아마 두꺼운 국어사전에도 없을터.
그렇게 숙제를 잊은 늦은 오후.
우리동네 꼬마 대장 노릇을 하는 중학생 형이
학교를 마쳤나 보다.
대뜸 지우개 공장을 가잔다.
지우개 공장이라면 지우개를 만든는 공장이다.
논을 가리키며 길게 펴지는 그 형의 자신만만한 손가락.
-지우개는 여러 종류가 있었다.
'점보'지우개. 정말 지우개 그 자체의 모양인것으로 기억된다.
컷다.
'예삐'지우개. 강아지가 그려져 있었다.
우리 동네는 김포 공항하고 멀지 않아서 비행기가 자주 보였다.
비행기를 먼저 본사람이 먼저 "예삐!"라고 말하면 상대아이는
얼음이 되는 놀이를 한 기억도 있다.
기차모양의 색색의 지우개들.
은하철도 999에 등장하는 기차들. 222. 777. 888...
딱딱한 지우개. 물렁한 지우개. 볼펜 지우개...
그렇게 지우개들은 우리들에게 인기가 많은 물건이었다.
그런 것들을 만드는 공장을 말하고 있었다.
우리 골목 뒤로 펼쳐진 평야에 바람이 한번 쏴아 불면서
파란 모들이 하늘 거린다.
땀이 식으며 느껴지는 시원함보다
지우개 공장의 위치가 궁금했다.
그 형은 위치를 말하기 보다 지우개 공장의 모습만
묘사하고 있었다.
"공장문을 들어가면 마당이 있는데 한쪽으로 지우개들이
쌓여있다. 아마 느네 집 두개는 채울거다. 빨리 가보자.
그래 어딘지는 내가 아니까 안갈래?
갈 사람은 집에가서 비닐봉지 하나씩 가져와라.
오늘까지 가는 사람은 거기 아저씨가 한봉지씩 준다고 했다.
난 흰봉투를 가지고 갈테다. 펴보면 알겠지만 흰게 크다."
지금 기억하면 마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의 지섭의
말투였다.
그런 말을 듣고 가지 않을 수는 없었다.
걷기를 얼마나 걸었던지
우리는 농담으로 "우리 논 두 마지기 정도는 걸었을 거야."
마지기가 넓이 단위인지 길이 단위인지,
얼마나를 말하는지 모르면서도
"두 마지기는 더 걸었을껄. 한 네 마지기 정도." "마지기..."
골목 뒤쪽 논을 가로지르면 약 6킬로미터는 되지 않았을까
기억된다.
논이 끝나면 공장들이 있었는데 그 형과 더불어 나와 친구들
여섯명은 처음으로 논을 가로질러 공장들쪽으로 계속 향하고
있었다.
태어나서 생전 처음 가보는 논 너머 그 곳.
어쩌면 논 너머에는 낭떠러지가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며.
(이하는 다음에 올리겠습니다. 무책임한 졸음이...)
(예고 -
그들 여섯명은 과연 지우개 공장에 도착할 수 있을 것인가?
집이 멀어지면서 하나씩 하나씩 엄마를 찾는 친구들...
한녀석은 급기야 중간쯤에서 포기하고 되돌아가고.
개구리를 잡아 손가락 마다끼고 걷던 어린 나는 비닐 하우스
옆에서 굉음을 내며 돌아가는 펌프의 날카로운 모터날을
발견하게 되는데.
남은 다섯명의 운명은 과연..)
갈길 먼
ha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