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온글)한국영화 산업의 독과점을 걱정한다.
관리자
2000.05.04 02:39:45
'이머지'라는 잡지의 4월호에 실린 강한섭교수의 글입니다.
..무단개제합니다...
20세기 후반 내내 한국영화산업은 전체 시장의 규모가 너무 작고, 제작사들은 구멍가게 수준이며, 배급부문은 아예 개념 정의도 되어 있지 않을 정도로 주먹구구식이라는 점이 문제였다. 그래서 영화인들은 '한국영화 어떻게 할 것인가' 같은 너무 거창하고 심각한 제목을 가진 심포지움을 개최하여 어떻게 하면 드링크제인 '박카스' 하나의 매출액보다도 작은 시장을 확대하고 영화사를 메이저 수준으로 대형화하며 전국의 극장을 상대하는 배급사를 만들 수 있을까 고민해 왔다. 그러나 그것은 항상 소망으로만 기억될 뿐 한국영화는 영세성이라는 단어를 무슨 천형(天刑)처럼 달고 다녔다.
그러나 사정이 바뀌고 있다. 영화산업의 외형이 갑자기 커지고, 한국영화의 시장 점유율은 할리우드 직배사들를 위협할 정도로 높아졌으며, 몇몇 영화사들은 이미 메이저 수준으로 비대해졌다. 또한 영화인들의 오랜 숙원이던 전국의 영화시장에 일년 365일 안정적이고 효과적으로 영화를 공급하는 배급사들이 이미 위력을 발휘하고 있다. 영화인들은 이러한 급격한 산업과 시장 구조의 변화를 우선 놀라움과 기쁨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영화 <쉬리>는 <타이타닉>의 흥행기록을 넘어서는 한국영화의 거대산업화를 예고하였으며, <거짓말>은 시민단체들의 항의와 고발에도 불구하고 검찰도 한국영화를 쉽게 손볼 수 없음을 보여주었다. 즉 한국영화는 부유한 비즈니스가 되었으며, 윤리와 풍속의 법이 아니라 창작과 표현의 자유를 누려 마땅한 존경받는 문화가 되고 있는 것이다. 한마디로 한국영화와 그 산업은 지금 한국영화의 제2의 르네상스가 열리고 있다는 주장이 단순한 과장만은 아닐 정도로 아주 잘 나가고 있다. 그러나 만물에는 빛과 어두움이 공존하는 법이다. 한국영화산업의 놀라운 양적 팽창과 함께 두려운 그림자가 드리우고 있다. 바로 메이저로 부상한 영화사들의 시장 독과점 기도가 그것이다.
최고의 파워맨 강우석
영화 제작-배급사인 시네마서비스의 대표 강우석은 자타가 공인하는 한국영화계 최고의 파워맨이다. 94년의 기록적인 흥행작 <투캅스>를 제작 연출하여 충무로의 강자로 떠오른 그는 이후 <마누라 죽이기> 등의 코미디 작품으로 한국에서 가장 재미있는 작품을 가장 경제적으로 만드는 감독으로 자리를 잡았다. 그러나 강우석의 파워는 연출보다는 한국 영화흥행의 일번지 서울 종로 3가의 극장가 중에서도 가장 많은 스크린 수를 가지고 있는 서울 극장을 출발점으로 하여 전국 극장가를 호령하는 막강한 배급망을 장악하면서 시작되었다.
작년 그의 영화사는 12편의 한국영화를 제작, 배급했다. 한국영화의 연간 생산량이 60여 편 정도이니 오분의 일을 하나의 회사가 공급한 것이다. 시장 점유율은 놀라움을 넘어 가공스럽기까지 하다. 무려 60%을 석권하여 300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아마도 이러한 시장점유율은 국가가 영화산업을 독점하는 사회주의 국가를 제외하면 어떠한 자본주의 국가에서도 그 예를 찾아보기 힘들 것이다. 작년 서울 흥행 50만 이상을 동원한 흥행 베스트 5 중에서 3편, 즉 <주유소 습격사건>, <인정사정 볼 것 없다>, 그리고 <텔미 썸딩>이 그의 작품이었다.
금년 시네마서비스의 계획은 더욱 야심적이다. 더욱 공고해진 전국 극장 체인화와 엄청난 자본 동원력을 바탕으로 20편의 한국영화를 제작하여 시장점유율 70%를 목표로 하고 있다. 이러한 추세라면 한국영화가 곧 시네마서비스 영화라는 등식이 성립될 날도 멀지 않을 것같다. 한국영화뿐만이 아니다. 시네마서비스를 통하지 않으면 어떠한 외국영화도 흥행을 기대할 수 없는 상황이 되고 있다. 할리우드 직배사 중에서도 가장 강력한 20세기 폭스 코리아가 시네마서비스를 찾아가 협력관계를 요청한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였다. '스크린쿼터 없이는 한국영화는 망한다'나 '미국직배 영화가 한국영화를 고사시킨다'는 주장은 그래서 이제 아득한 옛날이야기처럼 들린다. 국내시장을 석권한 시네마서비스가 이제 해외시장으로 눈길을 돌리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수순이다. 우선 일본시장 진출을 위해 대표적 메이저 쇼지쿠사와 협력관계를 형성하여 일본시장 진출의 교두보를 확보하였다. 자, 영화산업이 벤처산업의 가장 오래된 시조 중의 하나이며, 영화는 음악과 함께 온라인 상에서 디지털로 유통될 수 있는 가장 뛰어난 콘텐츠 산업이다. 그러니 강우석 시네마서비스의 다음 행보는 어디로 향할 것인가? 시네마서비스는 국내영화사 처음으로 코스닥에 상장하게 될 것이다.
이렇게 고작 4년 전에 설립된 회사의 성과는 우선 놀랍다. 시네마서비스의 승리는 한 개인 회사의 승리일 뿐만 아니라 한국영화산업의 승리이기도 했다. 80년대 말 시장개방으로 밀려든 할리우드 직배영화와 비디오, 케이블 등의 뉴미디어의 등장으로 한때 15%까지 급전직하했던 한국영화의 국내시장 점유율은 작년 40%를 넘어서게 되었다. 그래서 이제 '할리우드 영화를 위협하는 한국영화' 정도가 아니라 아예 외국영화를 위한 스크린 쿼터제를 실시해야 한다는 농담까지 나오고 있다.
이렇게 한국영화가 갑자기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할 정도로 선전한 이유로 강우석이 이끄는 시네마서비스의 조직적이며 강력한 배급력이 우선적으로 지적된다. 시네마서비스가 뛰어난 작품선택과 과감한 투자를 바탕으로 확보한 차기 상영작 목록을 무기로 한국영화산업의 생산과 유통 그리고 판매라는 세 부분에 모두 참여하여 그 각 부분을 독과점으로 운용하는 산업의 수직적 통합 전략으로 부를 창출하고 있다.
만일 컴퓨터의 생산자와 유통업자 그리고 판매업자가 동일인일 뿐만 아니라 그가 시장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면 어떻게 될까? 그 독과점 사업자는 아담 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이 아니라 자신이 정한 가격으로 컴퓨터를 팔게 되어 소비자 복지는 무시될 것이며, 컴퓨터 산업 자체도 안이한 환경 속에서 자족하게 되어 궁극적으로 한국 컴퓨터 산업은 이노베이션의 역동성을 상실하게 될 것이다. 이러한 독과점 기업이 산업에 미치는 폐해와 함께 영화는 다양성을 목표로 하는 문화산업이다.
앞에서도 지적한 대로 강우석은 한국영화 전체 제작 편수의 25% 이상을 직접 제작하거나 지분참여하고 있다. 아니 그 정도가 아니다. 영화와 같은 오락 소프트웨어 산업은 소수의 일급상품이 시장의 절반 이상을 석권하는 카니발적 성격을 가지는 시장이다. 그렇다면 강우석은 관객이 선택하는 영화의 거의 절반 이상에 관계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요즘 한국영화 제작은 강우석의 문화적 취향과 수준에 부합하지 않는다면 제작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까지 말할 수 있다.
필자는 영화역사에서 가장 멋진 사건 중의 하나로 1938년 미 법무부가 할리우드의 메이저사들을 불공정 독과점 사업자로 지목하여 시작된 반 트러스트 재판을 기억한다. 그 재판은 무려 10년을 끌어 결국 1948년 미 대법원은 제작-배급-상영을 수직적으로 통합하여 막강한 힘을 행사하던 할리우드의 메이저사들에게 제작-배급이나 상영 부문 중 하나를 선택하라는 판결을 내리게 되었다.
물론 필자는 바이아콤의 CBS 인수합병을 다루었던 시평에서 밝힌대로 전통적인 독과점 이론이 작금의 미디어 환경에서는 그대로 적용되기 힘들 뿐만 아니라 경우에 따라서는 독과점 사업자가 시장을 더욱 역동적이게 만들어 소비자 복지에도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강우석의 시네마서비스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그는 한국영화계의 숙원이었던 전국적인 배급망을 개인의 능력과 노력으로 구축하여 한국영화 산업의 새로운 전기를 마련해 주었다. 그러나 그의 독과점적 시장 지배력이 새로운 시장 참여자의 기회를 봉쇄하고 영화문화의 다양성을 저해할 정도라면 강우석은 존경과 함께 엄중한 관찰과 비판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
마이다스의 손 - 우노필름의 차승재 대표
기획자 출신인 차승재 대표는 충무로의 떠오르는 태양이다. 91년 현장 프로듀서로 영화계에 뛰어든 차승재는 93년 영화사 우노필름을 설립하여 <돈을 갖고 튀어라>를 만들었다. 그 후 6년 그는 <모텔 선인장>, <8월의 크리스마스>, <처녀들의 저녁식사>, <태양은 없다>, <유령>, 그리고 <플란다스의 개>에 이르기까지 10편의 영화를 만들었다. 거의 모든 작품마다 흥행 아니면 작품성에서 괄목할 성과를 이루어내어 '충무로의 마이다스의 손'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다.
아무런 자본도 없이 영화사업을 시작해 단지 기획의 힘으로 멋진 영화를 만들었을 뿐만 아니라 끈끈한 인간 관계를 바탕으로 한국영화 제작환경에 적합한 토착형 제작시스템을 이루어 낸 점도 차승재의 업적으로 꼽힌다. 그래서 그는 지금 지식과 정보가 세상을 결정한다는 이 문화의 시대에 가장 적합하게 들어맞는 제작자로 영화계뿐만 아니라 젊은이들의 우상으로 숭배될 정도다.
이런 그가 최근에 '그저 영화 만드는 것이 좋아서 제작자가 되었다'라는 평소의 소박한 꿈을 뛰어 넘어 야심찬 사업가로의 변신을 계획하고 있다. 우선 그는 연간 5편 정도를 직접 제작하는 메이저사로 비약하기 위해 화려한 스타캐스팅의 <킬리만자로>, 일본과 합작하는 <봄날은 간다>, 그리고 30억원의 기록적인 제작비를 투여할 대형 영화 <무사>를 촬영하거나 기획하고 있다. 이뿐만이 아니다. 그는 요즘 지면을 장식하는 벤처 투자사와 코스닥의 인터넷 스타사들을 끌어모아 1백 10억 원 규모의 영화펀드조합을 만들고 그 펀드의 최고 운영위원으로 취임했다. 그는 조합을 띄우는 산파역할과 함께 앞으로 투자할 영화를 선정하는 역할을 맡아 이 펀드는 '차승재 펀드'로 통한다. 이름 하나로 1백 억의 펀드를 모을 수 있는 그는 확실히 충무로의 파워맨임에 틀림없다.
여기까지 필자는 차승재에게 힘찬 박수를 보내왔다. 그러나 요즘 그가 넘어서는 안될 선을 넘고 있다. 그는 최근 정우성, 장혁 등의 스타급 연기자를 확보하고 있는 EBM 기획과 함께 박신양, 전도연 등의 톱스타들을 신규 영입하여 총 30여 명의 관리를 책임지는 초대형 연예 매니지먼트사인 로커스를 설립한다고 발표했다.
강우석이 제작, 배급, 극장을 수직적으로 통합하는 상품의 생산과 유통 중심의 독과점 전략을 구사한다면 차승재는 매니지먼트, 제작을 수평적으로 통합하는 인력 중심적인 독과점 전략을 추구하고 있는 것이다. 강우석의 독과점 전략을 이해하고 비판하기 위해서는 고전적 독과점 이론으로 충분하지만 차승재의 전략을 비판하기 위해서는 '이해의 충돌Conflicts of Interest'이라는 도덕적 개념을 동원해야 한다. 이 개념은 한 사람에 대한 의무를 존중하는 것이 다른 사람에 대한 불이익으로 귀결되는 상황을 가리킨다. 그 대표적인 상황이 동일한 변호사가 소송의 원고와 피고 모두를 변호하는 경우다. 이 경우 일반적으로 변호사는 원고나 피고 중에 하나의 변호를 포기하게 된다(갈등의 포기). 언뜻 보면 연기자 관리사업과 영화제작 사업을 병행하는 차승재의 독과점 전략은 영화산업에 차고도 넘치는 투자금과 활발한 기획활동에 비해 주연급 스타수의 제한으로 고민하는 충무로 제작산업의 문제점을 한 번에 해결할 수 있는 마법의 방망이로 여겨질 수 있다.
그러나 차승재가 제작자이면서 매니지먼트 사업을 병행한다면 이론적으로 하나의 소송에서 변호사가 원과와 피고를 동시에 변호하는 모순되는 역할을 자임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차승재의 독과점 전략은 논리적으로 모순상태로 출발하게 된다. 이러한 모순은 필연적으로 자신이 관리하는 스타들에게 가장 적합한 영화의 배역을 소개해 줄 수 없는 일종의 도덕적 해이moral hazard로 이어지게 될 것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차승재의 전략은 현실적으로도 작동되기 힘들다. 왜냐하면 스타들의 수도 적지만 스타들이 출연하고 싶어하는 A급영화의 수도 그만큼 적기 때문이다. 즉 스타들은 자신들의 주가를 높여줄 수 있는, 불확실성이 낮은 문제작에는 누구나 출연하고 싶어 하지만 불확실성이 높아 리스크가 크며 흥행에서도 성공할 가능성이 낮은 작품에는 누구나 출연하기를 꺼린다.
그렇기 때문에 할리우드 영화산업과 같이 제작 편수도 많고 작품의 다양성도 높은 영화산업에서도 매니지먼트와 제작업을 동시에 하는 경우는 거의 불가능하다. 하물며 제작편수도 적고 작품의 다양성도 낮은 한국에서 이러한 독과점 전략은 현실적으로도 작동되기 어렵다.
다른 산업과 마찬가지로 지난 100년의 영화산업의 역사는 시장을 석권하고 있는 독과점 업자와 이 상태를 파괴하려는 독립영화업자의 대결로 점철되어 왔다. 심지어 초창기 영화 기계장치인 키네마토그라프를 발명했던 위대한 발명왕 토마스 에디슨은 자신의 발명품을 사용할 수 있는 소수 제작자들을 선정하여 사용 독점권을 주는 '영화특허권회사the motion Picture Patents Company'를 만든 영화산업의 첫 번째 독과점 사업자로 기록된다. 이것은 그 회사의 주주 이외에는 영화제작 자체를 불가능하게 만드는 극히 폐쇄적이고 방어적인 독과점체제로 기록된다. 그러나 첫 번째 독과점 업자들은 영화의 가능성에 무지했다. 그들은 영화의 장편극의 가능성을 알지 못한 채 10분이나 20분의 단막코미디로 일관하다가 독립프로덕션의 장편 극영화에 의해 몰락하고 말았다.
그 이후 영화산업은 '꿈의 공장'으로 불리던 고전적 할리우드의 스튜디오 독과점기를 지나 이종(異種)산업의 거대기업에 의해 지배되었던 복합기업의 독과점기를 거쳐 현재에는 동종(同種)미디어 산업 사이에서 서로의 장단점을 교환하는 상조(相助) 독과점기를 거치고 있다. 그러나 모든 독과점 시기들은 저마다 이름과 성격은 달랐지만 항상 그 결과는 똑같았다. 콘텐츠만으로는 독과점 구조를 유지할 수 없다. '영화의 성공은 아무도 모른다'가 영화 흥행의 유일한 법칙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독과점 제작자들은 매니지먼트나 극장업에 진출한다. 이것은 처음에는 멋진 사업으로 보인다. 그러나 관객이 힘을 행사하지 못하는 시장의 불공정 행위는 결국 행정과 사법권력의 심판을 받게 된다. 그래서 결국 미디어 산업의 제왕은 신화로 남게 되는 것이다.
강한섭/ 서울예대 영화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