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인쉬타인의 첫사랑..

JEDI 2000.04.18 00:51:57
영화 관련 사이트에 웬 아인쉬타인...
..퍼온글인데요..뭔가 생각하게 해주는 부분이 있어서 옮깁니다.
개인적으로 아인쉬타인을 존경하시는 분들은 읽지 않으시는게 좋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아인슈타인.....
참으로 거창하고 위대한 이름입니다..
그를 생각하면 '상대성 이론'과 '엠씨스퀘어'라는 공식이 떠오르는군요..
그런데.. <아인슈타인의 첫사랑> 이란 글을 읽고 전 좀 실망을..
인간에게는 앞면과 뒤면이 있게 마련입니다.
참다운 위인이란 그 많은 결점에도 불구하고 또는 그처럼 많은 결점 때문에 더욱 친밀감을 느끼게 만드는 것인데, 그런데 우리는 높은 사람들이란 으레 모든 면에서 훌륭해야 한다는 것으로 여기려 듭니다.
매우 딱하게도 본인들도 그렇게 행세하려 들고 있구요..
다음글을 읽으면서 개인적으로 참으로 분개 했습니다..
아인슈타인의 사적인 비리에 대해서 고발하려고 합니다..
다음글은 조선일보에 칼럼을 연재하고 있는 홍사중씨의 모모 책에서 읽은 내용입니다.

< 아인슈타인의 첫사랑 >
1901년 5월의 어느 날, 아인슈타인은 밀레바라는 여인에게 이런 편지를 써 보냈다.
"기운을 내라.. 내 사랑아. 그리고 역정내지 마오.
여하튼 나는 당신 곁을 떠나지 않겠으며 모든 것에 행복한 결과를 맺게 할 것이다."
그녀는 정식 결혼만을 안했을 뿐 이미 아인슈타인의 아이를 뱃속에 가지고 있었다.
아인슈타인은 17세 때 취리히에 있는 공과대학에 입학했다.
여기서 그는 같은 물리학 강의를 듣는 밀레바 마리크라는 여학생과 사랑을 속삭이게 되었다. 흔히 그녀는 매우 평범하고 멋없는 여성이었다고 알려져 있다.
그러나 아인슈타인을 사로잡을 정도였으면 명석한 두뇌의 소유자 였음이 틀림없다.
그들은 결혼을 3년 넘게 미뤄야만 했다.
그것은 밀레바가 네 살이 나 위인 데다가 가정주부감이 아니라 학자라고 어머닉 반대했기 때문이었다. 아인슈타인의 어머니가 반대한 가장 큰 이유는 밀레바가 가난하고 천한 집안 출신이라는 사실이었다.
21세가 되던 해에 아인슈타인은 밀레바에게 이런 편지를 보냈다.
"내가 당신과 결혼할 의사를 밝히자, 어머니는 몸을 침대 위에 던지고 얼굴을 베개 밑에 파묻더니 어린애처럼 목놓아 울었다.
당초의 충격으로부터 회복하자 어머니는 '너는 너의 장래를 망쳐 놓으려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주위에서 반대하면 할수록 사랑은 더 굳어지는게 보통이다.
아인슈타인의 경우에도, 적어도 밀레바가 임신했을 때까지는 그랬다.
밀레바가 딸을 낳자 아인슈타인은 더 이상 결혼을 미룰 수가 없었다.
어머니의 반대는 여전했다. 어머니와 아내 사이에서 겪어야 했던 아인슈타인의 고통도 작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밀레바의 고통은 여기 비할 바가 아니었다.
두 번째로 낳은 사내아이는 정신장애자였다.
이를 전후하여 첫째 딸은 다른 집에 양녀로 보내졌다.
밀레바는 이런저런 고통과 충격, 특히 시어머니의 구박을 이겨내지 못하고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정상을 잃게 된다.
그러나 아인슈타인은 이혼을 회피하려는 '냉혹한 꾀'라고만 여겼다.
그는 자기 아내를 '흔히 볼 수 없을 만큼 추악한 여인'이라고 평하기도 했다.
드디어 아인슈타인은 1919년에 이혼했다.
이를 누구보다도 기뻐한 것은 그의 어머니였다.
이 해에 그는 '상대성 이론'으로 세계적인 인물이 되었다.
그러나 그는 그 후에 단 한번도 정신병원에 들어가 있는 아들을 찾아가지 않았다.
그가 67세에 쓴 <자서전적 각서>에도 그에 대해 단 한마디도 없었다.
그 동안 공개되지 않았던 서한들을 통해 보여준 아인슈타인의 인간상은 별로 매력 있는 것이 못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