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90년대 (1990~)
venezia70
2005.06.17 17:00:45
1. 개요
1990년대의 중요한 사건은 1993년 문민정부의 출범과 1998년 50년만의 평화적 정권 교체이다. 감시와 통제의 지난 7-80년대 상황 속에서 이런 역사적 사건을 위해 얼마나 많은 이들의 노력이 있었던가. 한국영화계 역시 이러한 변화의 물결 속에서 연례없는 호황을 누릴 수가 있었다. 90년대 중반부터 현실화되기 시작한 대기업의 영화업 진출은 지난 80년대 말 UIP 직배 파문으로 크게 위축되어 있던 한국 영화계에 큰 힘이 되었던 것이 사실이다. 비디오 시장의 호황과 케이블 TV의 등장으로 소프트웨어의 필요성이 절실해 졌고 대기업들은 다량의 소프트웨어 확보에 열을 올리기 시작했다. 단관 경영의 극장가가 복합 상영 시스템으로 대형화되는 계기를 마련한 것도 대기업 자본 유입의 영향이 크다. 신인 감독의 대거 등장 또한 90년대의 중요한 특징인데, 대기업에 종속된 자본에 의해 상업적 논리에 입각한 감독 데뷔가 많은 문제점이 발견되기도 했다.
1990년대 초입부터 감지되기 시작한 장르적 상상력에 대한 경도는 두 가지로 원인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하나는 대기업 중심으로 재편되기 시작하는 한국영화의 산업추세이며 다른 하나는 전 세대와는 달리 영화적 세례를 충분히 받고 영화 연출 분야에 뛰어들고 있는 세대의 출연이다. 이때부터 허구의 구경거리라는 게임의 규칙을 만끽하려는 조짐이 나타났던 것이다. 스타일에 대한 자의식이 두드러지는 반면 잡종 장르에 나타난 빈약한 상상력 또한 나아지게 되었다. 오랫동안 산업이 정체되어 있던 까닭에 산업체계와 필연적으로 맞물리게 되어있는 장르적 표현 관습이 취약했던 한국 영화는 비로소 장르의 규칙과 긴장을 이루는 관습을 축적시킬 기미를 보인다.
또한 90년대는 영화가 문화로서 확실하게 정착되는 지점이기도 했는데 국제영화제를 비롯한 수많은 영화제의 개최 또한 영상문화의 폭을 넓히는데 일익을 담당했다. 이는 서울 중심의 집중을 해소하기위해 지방자치제의 도입으로 인한 문화의 분산화 덕택이다. 1996년 개막한 부산 국제 영화제는 아시아 중심의 예술영화를 선보이며 영화관객들에게 다양한 영화의 사고를 넓히는 계기를 마련해 주었으며 98년에는 3회를 맞이하게 된다. 1997년에 개막된 부천 판타스틱 국제 영화제 역시 오락영화만의 축제를 표방하며 세계 각국의 영화를 접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하여 많은 호응을 얻었다. 이 외에도 서울 국제 독립 영화제, 여성 영화제, 인권영화제 등 특징적 주제의 영화제가 속속 개막되어 알찬 영화 문화의 시간을 경험케 하였다. 그러나 1997년 말부터 불어닥치기 시작한 IMF 경제한파로 인해 다시금 자금난에 허덕이게 되어 영화제작 환경을 어렵게 하고 있으며 대기업의 계속되는 영화 제작의 실패로 인하여 다수의 기업들이 영화업을 포기하는 사태가 벌어지기도 했다. 따라서 앞으로의 한국 영화계가 어떤 미래를 가질지는 의문 부호로 남겨둘 수 밖에 없다.
2. 중견감독들의 활약
먼저 임권택 감독은 <개벽(1991)>으로 90년대를 시작한다. 1993년 작인 <서편제>는 한민족의 고유한 정서인 한(恨)을 임권택만의 깊이와 무게로 표현해 낸 판소리 영화로 한국영화 사상 최대의 관객동원이라는 기록을 세우게 된다. 그는 이후 <태백산맥(1994)><축제(1996)><창(1997)>에 이르기까지 꾸준한 활동과 성과로 거장의 입지를 굳힌다. 한편 박철수 감독은 <301 302 (1995)><학생부군신위(1996)><산부인과(1997)> 등의 작품으로 저예산 영화의 길을 모색하는데, 기존의 영화들에서는 좀처럼 다루지 않던 소재와 한달을 넘지않는 짧은 제작기간 등 그의 새로운 영화 제작방식은 자금력이 미비한 한국영화에 새로운 방법론이라는 점에서 관심을 끌고 있다.
80년대 말부터 활동하기 시작한 장선우, 박광수, 정지영 등의 감독들은 제각기 자신 나름대로으 색깔을 완성하며 꾸준한 작업을 해오고 있는데 정지영 감독은 <남부군(1990)><하얀전쟁(1992)>등 정치적인 주제의 작품을 만들어 오다가 <헐리우드 키드의 생애(1994)>의 흥행 실패로 작품 활동을 중단했다가 <블랙잭(1997)>이라는 미스테리 멜로물에 도전해 흥행을 노렸지만 여전히 관객의 외면을 받았다. 박광수 감독은 70년대 노동운동가의 삶을 그린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1995)>로 '1990년대 최고의 성과'라는 찬사를 받으며 작품성과 흥행 모두 성공하지만 현재 잠시 활동을 접어둔 상태다. 장선우 감독의 행적은 90년대 한국영화계의 화제인데, <경마장 가는 길(1992)>로 그 불씨를 던지더니 포르노그라피를 표방한 <너에게 나를 보낸다(1994)>라는 영화로 지식인 사회의 허위를 풍자하는 야한 농담을 시작한다. 1996년에는 <꽃잎>으로 80년대 광주항쟁을 강간당하는 어린 소녀로 묘사하여 그의 여성관에 관한 수많은 억측과 인간성을 시험당했으며 1997년에는 <나쁜 영화>라는 의도적으로 형식을 파괴한 삐딱한 10대들의 삶을 다큐와 극영화의 경계에서 그려내 또한번 화제를 일으켰다. 하지만 그의 계속되는 실험적 활동은 한국 영화사적으로도 흔치 않는 일이다.
또한 오랜 만에 작품을 선보인 중견감독들도 눈에 띄었는데, 이장호 감독은 <천재선언(1995)>을 만들어 사회 풍자와 은유의 예리함을 표현했고, 유현목 감독은 <말미잘(1995)>을, 정진우 감독은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1995)>, 배창호 감독은 <러브스토리(1996)>를 만들었으나 모두들 전작에 비해 다소 떨어지는 평가를 받아 예전의 화려했던 명성을 되찾는데 역부족인 듯했다.
3. 90년대의 신인 감독
1992년 김의석 감독의 <결혼 이야기>는 상업적 한국 영화의 모델을 제시한다. 기획-시나리오-연출- 후반작업-홍보 등에 걸친 영화의 전과정에서 뛰어난 팀워크를 보여 준 것이다. 또한 이 영화는 로맨틱 코미디라는 새로운 장르의 도입하는 전기를 마련 한국 영화의 다양화에 앞장서는 구실이 되기도 한다. 대기업의 자본 유입으로 인한 90년대 신인 감독의 데뷔는 러쉬를 이루는데, 그 중 몇몇의 감독들은 계속적인 활동으로 자신의 입지를 굳히는 반면 단 한 번의 연출로 영화계를 떠난 감독들도 많다.
80년대 데뷔한 강우석 감독은 <투캅스(1994)>의 성공으로 블랙 코미디 장르의 개척과 함께 대한민국 최고의 영화사업가로 성공하는데, <마누라 죽이기><미스터 맘마><투캅스2> 등으로 계속적인 흥행을 이룬다. 흥행성 위주의 감독 이외에도 독특한 개성을 지닌 신인 감독들도 많았는데, 이명세의 경우가 특히 그러하다. <개그맨(1989)> 으로 흥행으로서는 불행한 데뷔를 한 그였지만 <나의 사랑 나의 신부(1991)><첫사랑(1993)><남자는 괴로워(1995)> 등의 작품으로 자신의 독특한 영화 미학을 구축해냈는데, 만화적인 세트 공간에서 벌어지는 그의 모든 이야기는 신선하였고 많은 추종자들을 만들어 낸다.
여균동은 <세상 밖으로(1994)>라는 무정부주의적인 주인공의 삶을 통해 사회를 풍자하는 블랙코메디로 흥행과 비평면에서 모두 주목을 받았는데, 이후 <맨?(1995)><죽이는 이야기(1997)>등 자의식이 강한 영화들로 계속적인 활동을 하고 있다. <장미빛 인생(1994)>으로 평단의 이목을 집중하며 등장한 김홍준은 80년대의 연장선상에서 사회 속에 그늘진 이들의 이야기들을 하고있는 지식인 감독으로 영화 감독으로 데뷔하기 전 많은 글로서 자신을 드러냈던 인물인데, 최근 <정글스토리(1996)>라는 록 영화를 만든 후 부천 판타스틱 영화제의 1인 프로그래머로 활약하고 있다. 이 밖에도 <게임의 법칙> <본투킬>의 장현수, <그대안의 블루> <네온 속에 노을지다>의 이현승, <손톱> <올가미>의 김성홍, <절대사랑> <피아노맨>의 유상욱, <은행나무 침대>의 강제규, <영원한 제국>의 박종원, <개같은 날의 오후> <인샬라>의 이민용 등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많은 신인 감독들이 있으며 한국 영화계를 풍성하게하는 밑거름이다.
4. 독립영화의 붐
1990년대에는 충무로와 대기업의 자본을 중심으로 하는 기존의 영화들과는 제작형태를 달리하는 독립영화.단편영화들이 각광을 받았는데 변영주 감독의 <낮은 목소리(1995)>는 기록 영화로서는 최초로 극장개봉을 한 작품이다. 특히 <낮은 목소리>는 일제 치하에서 정신대로 끌려갔던 할머니들의 아픈 기억에 대한 진술과 현재 그들의 삶을 사실적으로 담아내 사회적 관심을 높이는데 기여하였고 1997년 <낮은 목소리2>도 개봉된다. 박재호 연출의 <내일로 흐르는 강(1996)>은 6.25전쟁으로부터 1990년대 초반까지의 한국 현대사를 배경으로 한 가족의 문제를 그리면서 그간 한국 사회에서는 금기시 되어온 동성애를 사회 구조적인 모순 속에서 묘사 했다.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의 배용균 감독의 두 번째 작품인 <검으나 땅에 희나 백성(1995)> 역시 독특한 시각을 가진 초현실주의적인 예술적 작품으로 그의 감독 이력을 빛나게 했다. 신인 감독의 영화 치고는 이례적으로 평론가들의 극찬을 받은 <돼지가 우물에 빠진날(1996)>은 복잡한 의미를 지닌 영화인데 홍상수의 차기작을 기대해 봄직하며 단편영화제에서 대상을 수상한 여성 감독 임순례의 데뷔작 <세 친구(1996)>역시 섬세한 연출력으로 신선한 바람을 일으켰다.
5. 의문부호 속의 한국영화
한국 영화는 오랫동안 대중과의 교감 통로를 잃어버린 상태로 있었다. 대중적 영향력 면에서는 방송에 비할 바가 아니었으며, 문화적 영향력 면에서는 아무도 자리를 인정하지 않는 구석에 몰려 있었다. 그런데 이제 변화하는 내적, 외적 상황의 조건에 밀려 어떤 식으로든 자기 자리를 찾으려는 기운이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다. 빠른 속도로 대중 문화의 중심에 편입된 한국의 영화 문화는 그러나 산업과 장르의 미묘한 관계를 정비하기에는 아직 겨를이 없어 보인다. 아직 정착되지 않은 형태로나마 지금의 제작 체계는 자본의 견제가 훨씬 심해지는 체계를 지향하고 있다. IMF 경제 한파와 대기업의 영화업 포기 등 현재 한국 영화계의 자금력이 난국에 처해 있는 상황 속에서 더 이상의 영화제작은 사치일런지도 모른다. 이런 진공 상태를 뚫고 나가지 못할 경우 한국영화가 설 수 있는 입지는 산업면에서나 문화면에서나 장기적으로는 점점 좁아질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1990년대의 막바지에 다달아 있는 한국 영화는 모든 사소한 것들에 대한 저항을 얼마나 잘 극복해 나갈 수 있느냐에 따라 최종의 성과를 판가름할 수 있을 것이다.
[참고 문헌]
1. 한국 영화 발달사 (유현목) - 책누리
2. 한국 영화의 이해 (이중거 외) - 예니
3. 한국의 영상문학 (민병기 외) - 문예마당
4. 어떤 영화를 옹호할 것인가 (강한섭) - 부키
5. 한국 영화 읽기의 즐거움 (김지석) - 책과 몽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