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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달족' 유감 - 퍼온 글

jelsomina jelsomina
2000년 11월 02일 15시 59분 52초 6806
온달족이란 말을 자주 듣는다. 별볼일 없던 친구가 마누라 잘 만나서 팔자 고친 경우에 쓰는 말이다. 한동안 신데렐라 콤플렉스라는 말이 유행하더니, 온달족은 그 반대 개념어로 자리잡아 가는 모양이다.

지금도 영춘(永春)에 가면 온달산성이 있고, 인근에는 곳곳에 온달 장군의 전설과 유적이 남아 있다. 그의 비장한 최후가 민중의 가슴에 깊은 파문을 던졌기 때문일 터이다. 그가 살아 온달족이란 말을 들었다면 과연 어떤 표정을 지었을까.

"온달은 고구려 평강왕 때 사람이다. 용모는 꾀죄죄하여 우스웠으나 속 마음은 맑았다." 삼국사기의 온달 열전은 이렇게 시작된다. 열전은 결코 아버지의 농담을 진담으로 새겨 들은 멍청하고 고지식한 공주와, 길거리에서 동냥하던 바보 청년의 우스꽝스러운 결혼 이야기이거나, 온달의 운좋은 출세담을 말하고 있지 않다. 이 글에 일관되이 흐르는 것은 '신의(信義)'의 문제다.

"임금은 희언(戱言)하지 않는다"며 명문가로 시집 가기를 거부하고 가출하는 공주와, 신라에 빼앗긴 땅을 되찾지 않고는 돌아오지 않겠다는 맹세를 지켜 관조차 움직이지 않았다던 온달에게서 이 신의의 문제는 행동의 준칙으로 일관되이 나타난다. 더구나 그의 출정은 보장된 영화의 길을 접어둔 위국진충(爲國盡忠)의 결단이었기에 더욱 값지다.

온달열전에는 고구려 사나이의 기상과, 고구려 여인의 강인한 삶의 정신이 맥맥히 살아 있다. 말하자면 이들의 이야기는 고구려 다운 삶의 한 권화(權化)인 셈이다. 온달장군의 비장한 일생에서 읽어야 할 소중한 의미는 다 버려두고, 고작 마누라 등쳐먹고 사는 '등처가'의 약삭빠름을 읽는대서야 피차간에 면목이 없는 노릇이다. 나는 이러한 문화 코드의 오독에서 잔약한 전통문화의 앞날이 떠오르는 것 같아 민망해지곤 한다.
젤소미나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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