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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아시스

sjmo7
2002년 08월 20일 09시 40분 16초 3451 1
학교 다닐 때, 장애인 자원활동을 했었다.(요즘은 봉사라는 말 잘 안쓴다) 그 때, 뇌성마비 또래를 알게 됐었다. 난 처음 접해보는 장애인의 문제에 대해서 그 친구에게 얘기했고, 그 친구 얘기를 들으면서 많이 내 자신에 대해 깨는 걸 느꼈었다. 난 그때까지 뇌성마비 장애인이 우리와 똑같은 사고를 한다는 사실을 솔직히 몰랐었다. 그 뒤틀어짐이 그냥 왠지 전혀 다른 이질감을 주었기에 피했을 뿐이었다. 몸이 안 따라서 술을 어렵게 마시면서, 얘기를 하다가 울던 그 친구의 모습이 아직 선명하다. 또 선명히 기억하는 건 계속 '씨발'이라고 하던 그 목소리도...  이 영화를 보면서 그 친구가 생각나는 건 너무나 당연했다. 그리고 또 한편으로는 그 친구에게 미안했던 감정을 어느 정도 삭힐 수도 있었다. 지금까지 느끼지는 못했지만, 나와는 다른 사람들이라는 인식이 아직도 팽배했기 때문에 이런 감정을 느꼈던 것이었을테고 이 영화로 인해 그런 인식이 없어지고 엷어졌음을 스스로 느꼈기 때문이다.
장애인이 나오면서도 그런 생각이 안 들었고, 진실로 사랑이 뭘까? 하는 우문을 다시 곱씹게 했다.
종두의 모습은 흔들거리고 늘 시선은 상대방과의 중간에 있다. 영화에서 종두의 시선이 정면을 바라보는 건 공주에게 얘기를 건넬때다. 끊임없이 보통의 가정과 사회에 편입되기를 원하면서도 늘 그 한켠에 벗어나 있다. 그런 종두에게 자신이 도움이 되고, 절대적으로 도움을 줄 수 있는 존재가 생긴다는 건 하나의 경이이자 새로운 발견이다. 그런 맥락에서 보면 공주도 마찬가지이다. 자신의 존재를 무력하게 만드는 오빠와 올케의 모습은 둘째 치고 자신의 방 앞에서 섹스를 하는 옆집 부부의 모습은 화를 넘어서 인생을 서글프게 한다. 이때 흘리는 한 줄기의 눈물... 이런 그녀에게 자신을 그냥 여자로 봐주는 사람이 나타났다. 꽃을 주고 자신의 몸에 대해 남자로서의 성욕을 발휘하는... 공주 자신이 스스로 여자임을 자각하게 하는 새로운 경험이었다. 종두는 끊임없이 밝은 것을 원하고 자신이 어둠 쪽에, 그늘 쪽에 있다는 것을 잊으려고 한다. 그러기에 밝은 조명으로 지나가는 영화촬영 레카차를 쫓아갔던 거였고, 공주를 보고 돌보면서 자신이 밝은 쪽에 편입된 것을 느끼려 한다. 이런 상징적인 모습은 공주를 이제부터 마마라고 부르겠다고 하는 종두의 모습과 종두를 이제부터 장군이라고 하겠다는 공주의 대화 장면이다. 밝은 자연광은 화면을 반으로 해서 오른쪽으로 치우치고 거기에 걸쳐있는 건 종두뿐이다. 공주의 모습은 그늘에 들어가 있다. 이 영화에서 거의 드물다고 생각되어지던 몇 안되는 고정된 화면이었고 상당히 대비적으로 느껴지던 모습이었다. 끊임없이 조금씩 흔들려지는 핸드헬드의 촬영은 사실감을 부여하면서 동시에 끊임없이 인물들과의 거리를 강요한다. 결국 관객들은 인정하고 싶지는 않지만, 종두와 공주의 사랑을 방해하는 주변인물들이 자신들의 평범한 보통의 모습임을 자각하고 힘들어진다.(괴롭고 아프다) 벽걸개의 오아시스는 낮과 밤의 모습이 다르다. 음산하다고 생각되어지는 나뭇가지의 흔들리는 모습은 아침이 오면서 밝아지면 엷어지며 없어진다. 카메라는 고정되어 이 변화되는 모습을 그냥 보여줄 뿐이다. 밝은 낮에만 움직이며 공주를 보는 사람들은 이런 밤의 모습을 모르고, 공주가 뭘 원하고 무서워 하는지 알려고 하지 않는다. 아무 여과 없이, 아무 기법 없이 보여주려는 카메라의 이런 태도는 영화내내 지속된다. 종두는 공주의 소원을 들어주고 싶다. 오아시스의 그 공간을 온전히 지켜주고 싶다. 나뭇가지를 자르면서 처음으로 내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해 충분히 즐거워하고 기뻐한다. 남을 위하는 일, 사랑하는 사람을 위하는 일... 춤을 출 수밖에 없는 일이다. 나뭇가지를 다 자르고 떨어져 경찰에게 잡혀가는 그 모습은 계속 공주의 시선으로 롱테이크하고 화면은 다시 벽걸개를 보여준다. 오아시스는 낮과 똑같이 온전하다. 다시 계속되어지는 공주의 일상... 하지만, 이제 그녀의 일상은 그 전과는 다르다. 자신의 소원을 들어준 자신의 남자가 있기 때문이다. 그 사람과 같이 할 수 있는 희망이 있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고, ‘내가 만일’ 노래를 부를 때, 온전히 그 목소리가 아니라 마음속의 노래를 알아주고 같이 불러주는 모습도 다시 새길 수 있을 것이다. 사랑얘기인데도 왜 이렇게 아픈지...
배우의 연기가 어떻다고 하는 건 사족인 것 같습니다. 그냥 몰입해 보면 그 마음을 알 것 같아요. 이창동 감독이 있어서 우리 영화계가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오아시스라는 단어가 주는 청량감이나 쉰다는 이미지와는 안 맞지만, 방점을 찍고 돌아보는 시간은 된 것 같습니다. 전 제작사와 아무 관련이 없습니다. 하지만 진심으로 많은 사람들이 이 영화를 봤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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