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출부들의 임금과 노조...

영화인 2000.05.03 12:27:26
지나가다 들린 영화인입니다.
연출부(촬영부, 조명부도 마찬가지)들의 박한 임금과 노조 결성에 대한 의견들 재미있게 읽었고요. 제 의견도 한마디 보탤까 해서 몇줄 적어봅니다.

우선, 연출부들은 노동자 일까요?
1. 미국의 경우 -- 노동자입니다.
2. 한국의 경우 -- 도제 시스템 속의 학생입니다.

한국에서 연출부가 노조 결성을 할 수 없는 가장 근원적인 문제는, 연출부가 노동자가 아니라, 자신의 노동력을 수업료로 지불하고 도제 시스템에서 영화감독이라는 스승에게 영화 제작 수업을 전수받는 문하생이라는 겁니다. 가령 한국 조감독이 노동자가 되고, 프로 직업인이 되기 위해서는, 조감독 이라는 위치가 감독이 되기 위한 연출 수업의 과정이 아니라, 처음부터 조감독이라는 직업으로서 존재해야 하는 거죠.
가령, 미국의 경우 조감독은 직업인으로, 촬영 현장을 콘트롤 하고 진행시키는 임무를 갖고 있으며, 언젠가는 감독이 되겠다는 야망 대신 하나의 직업으로 충분한 돈을 받고 일하죠. 대신 조감독에서 감독이 되는 경우는 거의 없고, 머리가 하얗게 센 조감독 경력 30년의 50대 조감독도 있습니다.
한국의 경우는 영화학교를 나온 경우도 있고, 전혀 영화 경험이 없는 경우도 있지만, 어쨌든 연출부가 되려는 이유는 영화에 대해 배우고 싶거나, 최소한 영화 산업쪽에 줄을 만들기 위한 목적이 대부분이죠. 뭐, 이건 미국, 프랑스를 제외한 거의 모든 나라가 그렇지만요. 어쨌든 이런 경우는, 숙련된 기술과 노동력을 제공하는 직업인이라기 보다는, 문하생쪽에 가깝다고 보아야 겠죠. 물론, 아무리 문하생이어도, 한국의 연출부들이 너무 박한 임금을 받는 다는 것에는 동의합니다. 최소한 한달 작업비는 줘야죠. 하지만, 정상적인 생활인으로서의 임금 지불은 앞으로도 불가능에 가까울 것 같군요. 현재 연출부 중에서 누가, 평생 연출부만을 직업적으로 하겠다고 하는 분이 있겠습니까? 모두 감독을 꿈꾸고, 자기 감독에게서 혹은 영화 현장에서 뭔가를 배우려고 하지요.
두번째는, 누군가 직업 조감독이 되려해도, 한국 영화 산업의 현실로 보자면 불가능하다고 생각됩니다. 한국에는 엄격한 의미에서 스튜디오 시스템에 의한 메이저가 없죠. 메이져와 인디펜던트의 차이는 영화사가 안정적인 배급라인을 소유하고 있는가 하는 차이이고, 스튜디오가 되려면 일년 영화 제작 규모가 20편 정도는 되서, 그중 3편이 박스오피스에서 크게 히트하고, 7편이 수지 타산을 맞추고, 10편이 실패하면, 결과 적으로는 수익이 나오는 다량 생산 구조를 의미하죠. 규모의 경제가 되지 못하면, 한편 한편에 목매게 되고, 산업으로서 성립할 수 없는 것입니다. 한국 영화 시장 규모는 기껏해야, 일년 예산이 650억 정도인 소규모(보통 연간 예산이 3000억-구 홍콩 영화 산업 규모 정도-은 넘어야 자생력이 생긴다고 하더군요. 한국은 시장 규모로 보면 나라 순위로는 17위정도 하며, 미국, 프랑스, 영국, 독일, 이탈리아, 중국, 인도 정도가 자생력을 갖추고 있습니다. 그 이하 순위는 산업으로서는 무의미하죠. 모두들 힘겹게 인디펜던트 하는 겁니다. 스웨덴이든, 일본이든, 이란, 폴랜드, 요새의 홍콩, 한국 모두...) 로서, 아직 시네마서비스나 우노도 인디펜던트 수준이지 메이저 스튜디오는 못되었습니다. 영화사가 배급 라인을 소유하지 못하면, 결국 그 영화사는 적자를 볼 확률이 많습니다. 영화를 통해 벌어들이는 수익을 총 100으로 잡을 때, 극장이 보통 절반인 50을 갖고, 배급사가 20, 제작사가 30을 갖는 현재의 산업 시스템으로 보면, 제작사는 똔똔을 맞추기 위해서는 제작비의 3배 이상을 벌어야 하는 거죠. 그리고, 이 회사가 인디펜던트일 경우, 일년에 한두편 제작 한다면, 세편 정도만 실패하면 문 닫아야 할 정도로 영화 산업은 모험 산업이고, 리스크가 큽니다.
그래서, 은행나무 침대, 편지, 약속 등의 대박을 터뜨린 신씨네 영화사 사장 신철씨가 아직도 빚에 허덕이며 사는 이유가 됩니다. 강우석은 시네마서비스를 배급사와 결합 시켜서, 이 리스크를 줄여, 메이져로 발돋음 해보려는 거고요. 영화 잘되서 대박되면, 주로 극장주와 배급사가 돈을 벌지요.
얘기가 딴곳으로 너무 빠졌군요. 네, 연출부 노조의 설립 제 1조건은 충무로에 메이져 스튜디오의 등장이 그 첫 조건이 됩니다. 제대로 월급 받고 영화 찍었던 실례로는 1960년대 일본을 들 수 있죠.(지금은 아닙니다. 일본 스튜디오가 모두 망했거든요) 당시 쇼치쿠나 토호 같은 스튜디오에서는 연간 영화를 300편 이상 제작했고, 배급, 상영까지 한 라인을 갖어서 안전한 수익구조를 갖추었죠. 그래서, 모든 연출부와 촬영부들이 게런티가 아닌, 월급을 받고 일했습니다. 월급 주고 고용할 만큼, 일거리가 매일 매일 있었으니까요. 오시마 나기사 감독의 경우도, 사회주의 운동하다 제적당하자 취직할 곳이 마땅치 않아, 쇼치쿠 영화사에 취직(!) 해서, 영화일을 시작했다더군요.
도제 방식이 있으면서, 최소한의 임금을 보장해 주는 나라는 프랑스입니다. 이경우는 세계적으로 드문 경우인데, 프랑스에는 촬영부의 경우에 자격증을 준다더 군요. 자격증은 영화판에서 짬밥을 채우고 시험을 치르던가, 국립영화학교를 졸업하면 준다고 하고, 자격증을 갖고 있는 영화인은 법으로 정해진 최소한의 임금을 보장해 줍니다.
구 공산권 국가(소련, 동유럽, 중국)는 국가가 임금을 보장해 주었고요.
그밖의 나라는 메이져 스튜디오도 없고, 연출부가 프로 직업이 아닌 도제 시스템이어서, 제대로 임금을 받지 못한다고 합니다.
미국의 경우는, 감독은 처음부터 감독일을 하죠. 작은 단편영화(자기 돈 들이는건 어느 나라나 같습니다.)에서 시작해서, 광고나 텔레비젼 시리즈나 그런 영상물에서 감독하고, 기회 잡아서 극영화 감독하죠. 그러니까, 규모만 작은것에서 큰것으로 변화해 가지 처음부터 감독입니다. 조감독은 처음부터 끝까지 조감독이죠. 오히려, 시나리오 작가가 감독으로 전업하는 경우가 많죠.

그러므로, 연출부에대한 대안은.
1. 한국에 임금을 적절히 줄만한 연간 제작편수와 상당한 제작비를 소요하는 안정적인 메이져 스튜디오가 생겨야 한다.
2. 연출부에게 국가가 자격증을 줘서 법으로 임금을 보호하는 강제적 수단을 쓰던지,
3. 연출부가 직업화 하여, 도제 시스템을 벗어나, 정당한 하나의 직업으로 자리잡는다. 그래서, 노조를 결성한다.

이럴 날이 오길 기대해 봅니다.

그럼, 이만...

지나가던 영화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