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공이 많으면, 일단 산으로 가라!?
89기 임상수
여행갈 때 처음 떠오르는 질문은 아마도‘바다로 갈까? 산으로 갈까?’아닐까? 난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하라고 하면 바다를 고른다. 왜냐면 바다는 노동을 요구하지 않는다. 버스를 타고, 택시를 타면 어느덧 바다라는 장엄한 자연이 내 앞에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산을 오르는 것은 얘기가 다르다. 산꼭대기의 비경을 감상하기 위해선 몇 시간 동안의 육체적 노력이 필요하고, 위험하기까지 하다. 그래서 보통의 젊은이들은 단풍보다는 비키니를 택한다.
2006년 초여름. 89기 아니, 나는 단합을 위한 비키니를 원했지만, 단합을 위한 산행을 위하여 불암산으로 갔다. 산에 오르는 것만으로도 별로 유쾌하지 않은데, 산행 당일에는 하늘에 구멍이 뚫린 듯 비가 내렸다. 비를 맞으며 하는 행동 중에 가장 로맨틱하지 않은 것이 산행이라는 것을 그 때 알았다. 축축함과 불쾌함으로 산행은 계속 되었다. 왜 산일까? 나는 이런 의문을 하나 가득 담은 눈총을 설 조교님에게 날렸었다.
산을 좋아하는 친구 녀석이 있는데 그 녀석은 여자 친구가 생기면 산에 같이 오를 거라고 말한다. 산에 가봐야 그 사람의 본모습을 볼 수 있다나 뭐라나. 근데 이 말도 어느 정도 일리는 있다. 산에 들어가면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와 전혀 다른 환경에 놓인다. 내 옆에 있는 동료, 내 가방에 있는 음식들, 그리고 나무가 전부인 산. 그 안에서 살아서 나오려면 동료와 내 가방과 나무를 믿어야 한다. 산을 오르면서 설 조교님은 영화를 하는 것이 산을 오르는 것과 비슷하다고 말씀하신 것이 기억난다. 오르고 또 오르면 꼭 정상에 닿는다는 긍정적인 메시지였는지,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이 있다는 부정적인 메시지였는지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독립영화워크숍에 들어가기 전까지 나에게 영화는 바다였다. 일정의 비용을 지불하면, 아주 아름다운 영상을 선물해주었다. 하지만, 그 영화를 만드는 것은 산과 같았다. 자신 옆에 있는 동료를 믿고, 자기 가방 속에 축척해 놓은 지식들을 먹으며 나무를 가로질러 정상에 오르는 것이라는 것을 교육과정에서 배웠다. 아니 불암산에서 배웠다. 여성도 있었고, 아픈 친구도 있었다. 나처럼 짜증 섞인 얼굴의 아이도 있었다. (설 조교님이 길을 잘못 들어간 경우도 많았다.) 89기가 독립영화워크숍에서 한 작업도 마찬가지였다. 불암산의 골짜기보다 더 깊은 감정의 골이 생긴 적도 있었고, 늦는 친구도 있었고, 생각대로 진행이 안 되는 경우도 있었다. 독립영화워크숍을 수료하고 1년이 지난 지금 이 글을 쓰면서, 그 날의 불암산 산행은 그 후에 6개월간의 우리의 여정을 미리 예견하는 것 같다.
이런 의미에서 설 조교님이 우리를 산으로 끌고 올라간 것이 아닐까?
장대비를 가르고, 비록 정상은 못 봤지만, 무사히 산행을 마치고 내려온 평지에는 감자탕이라는 수라상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 날 먹은 감자탕이 아직도 기억에 난다. 4차 실습의 첫 16mm 러쉬 필름을 볼 때와 같은 기분이었다고 하면 러쉬 필름에게 모독일까? 그 정도로 뿌듯하고, 감동적이었고, 무엇보다 따뜻했다. 단합을 위한 산행. 돌이켜 생각해보면 그 날의 산행은 나에게 서먹서먹했던 89기 동기들에게 쌓았던 벽을 허무는 기회뿐만 아니라 바다라고 생각했던 영화가 산이었다는 사고의 전환이 된 계기가 됐다.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고 한다. 왜 산으로 가는 것일까? 산은 고통이고, 인내이고, 주변인에 대한 배려를 배우는 곳이기 때문이다. 이런 의미에서 독립영화워크숍의 극기등반 단합산행은 앞으로 험난한 제작실습을 위한 든든한 주춧돌을 세우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 지난 독립영화워크숍을 수료한 참여 회원의 공동작업에 관하여 http://inde1990.cyworld.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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