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업 사기를 당했습니다.

caspian2001 2016.07.22 21:44:55
안녕하세요. 28세 영화 기획자 겸 수입/번역가를 목표로 하는 지망생입니다.
조금 길어질 것 같습니다. 여기 말고는 속 시원히 털어놓을 곳이 없네요 ㅋㅋ 저도 이런 일을 겪게 될줄은 몰랐습니다.
사건은 2주 전 목요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저는 작년 12월 지방 소재 대학교를 졸업 한 후 상경하여 영화사 입사를 목표로 자소서와 이력서를 돌리는 중이었습니다
벌써 8개월째인데 한 군데에서도 연락이 없더라구요. 저는 원래 외교관을 목표로 하다가 영화가 너무 좋아서
이 쪽으로 목표를 잡은지 얼마 안 된 사람입니다. 불러주지 않는건 제가 많이 모자라기 때문 인 것 같습니다.
하여튼 그런 시간이 계속되자 많이 불안했습니다. 능력이 없으면 뭐 그런가보다 하고 다른 일이라도 알아봤겠지만
기회 자체가 없으니 답답했습니다.

그러다 드디어 2주 전에 연락이 옵니다.
Park TV US 라는 회사였습니다.(Park TV Korea 이기도 합니다 - 이하 P사)
2주 전 목요일에 대표라는 사람과 스카이프로 대화를 나눴습니다.
P사는 미국에 있는 한인 회사로 저가 호텔 체인 회사인데, 이번에 회사 확장을 하면서 미디어 사업부와 한국 지사를 만들게 되었고
그 창설 멤버를 모집한다 했습니다. 혹시 이 회사 관련 메일을 받으셨거나 문자를 받으신 분은 절대로 응하지 마세요. 사기입니다.
저는 정말 절실했기 때문에 무조건 한다고 했습니다.
다음날부터 일을 하게 되었는데 계약서도 없고 사무실도 없고 뭐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그쪽에선 계약서가 없는건 업계 관행이라 했고 지금 창설 중이기 때문에 제가 사무실을 계약해야 한다는 말을 했습니다.
많이 의심스러웠지만 몇번 영화 스탭으로 일 하면서 계약서 없이 일 해봤기 때문에 그런가보다 하고 시키는대로 했습니다.
제 명의로 사업자 번호도 만들고 사무실로 미리 봐뒀다는 강남의 오피스텔도 들렸습니다.
취업 사이트에 기업 회원 가입하여 모집 요강을 만들어 취업 사이트에도 올렸습니다.
주말동안 많은 자소서가 왔고 대표라는 사람은 몇 개를 뽑아서 같이 일 할 사람들이라고 제게 보내줍니다. 저는 면밀히 살폈습니다.
다들 저같은 사람들 이더라구요. 열의는 있는데 기회가 없던. 하여튼 뭐 열심히 일 해야지 생각했습니다. 꿈같은 주말을 보냈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주 월요일이 됩니다. 즉 지난주 월요일이죠, 대표라는 사람이 저에게 다시 연락을 합니다.
저를 포함한 모든 팀원들을 곧 미국 본사로 불러서 교육을 시켜야 하는데, 취업 비자를 해결 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비자를 해결하는데 개인당 600만원이 필요하다는 말을 하며 일정 금액을 제게 요구했습니다.
원래 4월부터 진행된 프로젝트라 제 앞에 세 명이나 고용을 했다고 합니다. 그 셋은 발급 비용을 회사에서 전액 부담했는데 잠적 해 버렸다고, 그래서 회사에 큰 무리가 왔다고 했습니다. 미안하다고 300을 요구했습니다.
지금에야 이렇게 쓰면서 내가 왜 몰랐지 싶지만 당시엔 사기인걸 까맣게 몰랐습니다.
약간 의심스럽긴 했지만 설마 라는 생각이 더 앞서더라구요. 사기라 해도 인생공부 했다 치고 지불하지 뭐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트레이닝 명목으로 사기꾼들에게 돈을 뜯겼다는 연예인 지망생들의 마음이 비로소 이해가 갔습니다.
하여튼 의심스러웠지만 보내기로 하고 다음 일을 받았습니다. 이번엔 회사 명의의 핸드폰을 개통하여 인터넷 뱅킹을 뚫은 후
싱가포르의 어디론가 보내라고 했습니다. 정말 만들 뻔 했지만 부모님과 여러 지인들의 만류로 고민 끝에 사기라는 것을
인정하고 모든 모집 요강과 취업 사이트에 아이디를 삭제, 2차 피해를 막기 위해 제 나름대로 모든 노력을 한 뒤
지금까지 했던 모든 대화 자료들을 다 모아서 경찰서로 갔습니다. 첫 연락이 목요일, 경찰서 출두가 화요일 이었습니다.

반신반의 했지만 알고봤더니 사기 맞더라구요.
경찰관 께서는 악질중의 악질한테 걸렸다고, 잘 왔다고 했습니다. 스카이프를 사용했다는 자체가 노련한 사기꾼이라 했습니다. 스카이프는 외국 회사라서 대화 내용 같은것을 한국 경찰에서 요구 해도 절대 안 내준다고 했습니다. 저는 피해를 직접적으로 당한 상태는 아니라서 조사 의뢰는 할 수 없었습니다.
취업 사이트에 아이디 만든 것, 모집 요강 올린 것 때문에 피해자인 제가 오히려 가해자로 몰려 사기 1범이 될 뻔한 상황이었습니다.
폭풍같은 6일이었습니다. 하여튼 오늘 조사를 마지막으로 저는 무혐의로 풀려났고 후련한 김에 써 봅니다.
혹시나 제가 올린 모집요강으로 피해를 보신 분이 있다면 사과합니다. 일단 추적해서 네 분께는 솔직하게 밝히고 피해를 방지했습니다.
2차 피해자가 있을까 걱정입니다, PTUS 혹은 PTkorea의 대건/건영이라는 이름으로 메일 혹은 스카이프가 온다면 조심하세요.

마지막으로 이번 일을 겪으며 알아낸 사기꾼들의 특징 정리 해 드리겠습니다.
뻔하고 굉장히 주관적인 견해이므로 설득력은 없습니다. 가볍게 읽고 넘기시면 됩니다.

1. 사기꾼들은 말의 논지를 잘 흐립니다. 간단한 말인데 장황하게 이야기 해서 알아듣는데 고생했습니다. 마치 지금 이 글처럼 알갱이는 얼마 없는데 쓸데없이 장황합니다.

2. 사기꾼들은 심리를 잘 이용하며 유도 심문을 매우 잘 합니다. "~하면 좋은데 네가 구지 하기 싫다면 안해도 돼. 근데 하면 너에게 정말 좋지~ 네 선택에 달렸다."라는 말을 정말 많이 들었습니다. 의심스러우면서도 내 선택이라 착각하며 사기꾼이 유도한대로 행동하게 됩니다.

3. 사기꾼들은 절실한 사람들을 노립니다. 사기꾼이 골라준 다른 사람들의 자소서를 읽으면서 느낀겁니다. 제가 직접 겪어보니 사기인 것을 머리로는 알면서도 이게 사기가 아닐 때 올 수도 있는 허황된 그 무언가를 위해 사기꾼이 시키는 대로 행동 하게 되더라구요. 혹시 취업 과정에서 돈을 요구하면 칼같이 거절하십시오 냉정하게 판단해서 자기의 현 주소보다 과도하게 좋은 오퍼가 온다면 의심 해 보세요.

4, 사기꾼들은 이전 작품이 없습니다. 흔히 작은 회사에서 모집을 할 때는 그 회사가 어떤 작품을 했는지 모집 요강에 적어둡니다.그러나 사기꾼들은 그런거 없습니다.

이번 일을 겪으면서 저는 어마어마한 배신감과 분노에 진짜 모든것을 다 포기하고 싶었습니다.
그 이후로 사람을 못 믿겠습니다. 근데 여기서 모든걸 그만두자니 제가 한 것도 없더라구요. 저는 출발점도 안 섰습니다.
그래서 일단 당분간은 계속 목표를 향해 가기로 했습니다.
영화 기획자/ 여타 영화인을 꿈꾸시는 모든 분들 힘내세요!
저는 아직 아무것도 없지만 나중에 좋은 일로 협업을 할 수 있게 되길 빌겠습니다.
사기 당하지 마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