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아직 더 주목해야하는 김영하작가의 말에대한 이야기

pcps78 2016.06.07 20:02:34
모든 것이 ‘털리는’ 저성장 시대,
감성 근육으로 다져진 영혼은 아무도 빼앗을 수 없다!

소설가 김영하가 말하는 글쓰기와 문학,
그리고 ‘오늘’을 살아간다는 것

『보다』 - 『말하다』 - 『읽다』 삼부작 중 두번째로 선보이는 산문집 『말하다』는 작가 김영하가 데뷔 이후 지금까지 해온 인터뷰와 강연, 대담을 완전히 해체하여 새로운 형식으로 묶은 책이다. 일반적인 대담집 형식에서 벗어나 작가가 직접 인터뷰와 강연을 해체하고 주제별로 갈무리하여 이전과 전혀 다른 새로운 이야기로 탈바꿈시킨 이번 책에서는 글쓰기를 중심으로 문학과 예술 등 작가 김영하를 구성하는 문화 전반에 이르는 그의 생각들이, 때론 논리적으로 설득력 있게 때론 작가 특유의 위트와 재치가 맞물리며 생동감 있게 펼쳐진다.
창의력에 대한 그의 강연 <예술가가 되자, 지금 당장>은 한국인 최초로 세계적인 지식 공유 콘퍼런스인 테드(TED)의 메인 강연으로 소개되어 136만 건 이상의 조회수를 기록하고 있고, 지난해 12월 SBS <힐링캠프>에 출연해서 했던 청춘 특강은 젊은층으로부터 뜨거운 호응을 이끌어냈다. KBS 라디오의 <문화포커스>를 진행한 방송인이었고, 한국예술종합학교의 강단에서 서사창작을 가르쳤던 교수, 그리고 우리나라 최초의 팟캐스트 <김영하의 책 읽는 시간>의 진행자인 작가 김영하. 이미 거의 모든 형식의 ‘말하기’를 경험한 그는 『말하다』를 통해 빼어난 말솜씨로 어느 순간 청자의 허를 찌르는, 그만이 할 수 있는 이야기들을 들려준다. 귀기울여 듣고 되새길 만한 말들로 가득하다.

함부로 꿈꾸지 못하는 시대, 비관적 현실주의자가 되자
저성장 시대다. 성공을 꿈꿀 수 있기는커녕 현실에 안주하는 것조차 어려운 시절이다. ‘삼포 세대’에 이어 ‘오포 세대’라는 말까지 등장했다. 그러나 제대로 된 대책은 보이지 않는다. 대체 지금의 젊은이들은 무엇을 바라며 살아야 할까. 밑도 끝도 없이 낙관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무작정 절망 속에서 허우적댈 수도 없다. 김영하는 「비관적 현실주의와 감성 근육」이라는 글에서 비관적 현실주의자가 되자고 제안한다. 상황을 비관하되, 자신의 자리에서 누릴 수 있는 즐거움을 찾으려는 노력을 포기해선 안 된다는 것이다.

이제는 열심히 해도 성공하기 어렵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낙관이 아니라 비관입니다. 어떤 비관인가? 바로 비관적 현실주의입니다. 비관적으로 세상과 미래를 바라보되 현실적이어야 합니다. 세상을 바꾸기도 어렵고 가족도 바꾸기 어렵습니다. 우리가 바꿀 수 있는 것은 우리 자신뿐이다, 자기계발서들이 말하는 내용이 바로 그것입니다. 너 자신이라도 바꿔라, 저는 그것마저도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자기를 바꾸는 것 역시 쉽지 않습니다. 그게 쉽다면 그런 책들이 그렇게 많이 팔릴 리가 없습니다. 우리가 당장 바꿀 수 있는 것은 세상과 자신을 바라보는 관점입니다. 대책 없는 낙관을 버리고, 쉽게 바꿀 수 있다는 성급한 마음을 버리고, 냉정하고 비관적으로 우리 앞에 놓인 현실을 직시하는 것이 우선입니다. _본문 22~23쪽

감성 근육, 아무도 침범하지 못하는 내면을 구축하라
불안한 시대일수록 단독적으로 사고하기란 매우 힘들다. 남들이 말하는 대로 행동하는 대로 따라 해야 그나마 덜 불안한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자기 삶을 잘 이끌어가는 데는 별다른 도움이 되지 않는 것이라면? 무엇보다 현실을 냉정하게 판단하고 그에 따라 분별 있게 행동하기 위해서는 누구도 침범하지 못하는 단단한 내면이 필요하다. 그것은 어떻게 형성될까. 김영하는 ‘감성 근육’을 키우라고 말한다. “나는 지금 느끼는가, 뭘, 어떻게 느끼고 있는가? 그것을 제대로 느끼고 있는가?” 스스로에게 질문하라고 주문하는 것이다.

견고한 내면을 가진 개인들이 다채롭게 살아가는 세상이 될 때, 성공과 실패의 기준도 다양해질 겁니다. 엄친아나 엄친딸 같은 말도 의미를 잃을 것입니다. 자기만의 감각과 경험으로 충만한 개인은 자연스럽게 타인의 그것도 인정하게 됩니다. 요즘과 같은 저성장의 시대에는 모두가 힘을 합쳐 한길로 나아가는 것보다는 다양한 취향을 가진 개인들이 나름대로 최대한의 기쁨과 즐거움을 추구하면서 타인을 존중하는 것, 그런 개인들이 작은 네트워크를 많이 건설하는 것이 올바른 방향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_본문 35쪽

“그건 해서 뭐하려고 그래?”라는 주술에 맞서는 방법
한국어로 행해진 최초의 TED 메인 강연으로 화제가 된 「예술가가 되자, 지금 당장」에서는 우리 내면의 예술가를 죽이는 수백 가지 현실의 중력을 이겨내는 법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건 해서 뭐하려고 그래?” 예술적 자아를 드러내려는 순간, 우리는 어김없이 이런 질문과 맞닥뜨린다.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경험하는 이런 순간에 우리는 내면의 예술가를 억압하기 일쑤고 결국에는 심지어 잊고 말기도 한다. 그렇게 주어진 조건 속에서 실용적인 태도를 견지하는 것만이 잘사는 길이라고 배우지만, 결국 억압된 예술가는 불쑥 다시 찾아오게 마련이다. 텔레비전에 나오는 연예인, 예술가 들을 만날 때 미묘하게 솟아나는 시기심의 본질은 여기에 있는지도 모른다. 김영하의 강연이 전 세계적인 화제를 불러일으킨 이유는 바로 이런 현실의 ‘악마’들을 이겨내고 잊고 있던 내면의 예술가들을 불러내라고 했기 때문이다. “그냥 재밌을 것 같아서 하는 거야. 미안해, 나만 재밌어서”라고 무심한 듯 말하며 담대하게 세상의 실용주의자들과 맞서기. 지금 여기에서 당장, 예술가적 본성을 되찾자는 김영하의 말은 감성 근육을 키워 견고한 주관을 가지고 세상을 살자는 말과 뜻을 같이한다.

무엇을 왜 쓰는가, 자기해방의 글쓰기
어떤 글이 좋은 글일까, 글을 잘 쓰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SNS, 블로그 글쓰기에서부터 신춘문예까지 글쓰기에 대한 관심은 줄어들지 않고 늘어만 간다. 그러나 무엇을 왜 쓰는지부터 스스로에게 먼저 묻는 것이 필요한 것은 아닐까. 김영하는 부모나 선생에게 선뜻 보여줄 수 없는 글이 좋은 글이라고 한다. 억압된 환경에서 억지로 써야 하는 글은 좋은 글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화려한 미사여구나 정확한 문법만으로는 좋은 글이 될 수 없다. 자기를 표현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을 때, 기록을 남겨야만 하는 절박한 순간일 때, 고통스러운 기억과 대면해야 할 때, 인간은 글을 쓴다. 그러하기에 글쓰기는 “인간에게 허용된 최후의 자유이자 아무도 침해할 수 없는 권리”이다.

지금 이 순간도 뭔가 쓰지 않고는 견딜 수가 없어서 책상 앞에 앉아 있는 이들이 분명히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중에는 직장이나 학교, 혹은 가정에서 비인간적인 대우나 육체적, 정신적 학대를 겪었거나 현재도 겪고 있는 분들도 있을 겁니다. 여러분은 혼자가 아닙니다. 한계에 부딪쳤을 때 글쓰기라는 최후의 수단에 의존한 것은 여러분이 처음도 아니고 마지막도 아닙니다. 그런 분들에게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그게 무엇이든 일단 첫 문장을 적으십시오. 어쩌면 그게 모든 것을 바꿔놓을지도 모릅니다. _본문6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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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에게 끌리는 이유, 아시나요?
by 자하
천생연분은 정말 있는 것일까? 사랑의 씨앗은 어떻게 싹을 틔우고 꽃을 피우는 것일까? 에덴의 아담과 이브처럼, 서로를 자신 있게 '여보'라고 부를 수 있는 내 영혼의 반쪽은 어떻게 찾을 수 있을까? 훈남훈녀, 선남선녀. 우리가 잘 어울리는 커플을 묘사할 때 자주 쓰는 표현이다. 그런데 이런 아름다운 조합만 있는 것은 아니다. 현실적으로 '선남악녀'나 '악남선녀'의 조합도 우리 주변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기 때문이다. 아, 짝의 문제는 오묘하기 그지없다. 누군가에게 끌리는 이유, 첫눈에 반하는 이유가 궁금하다면, 혹은 현재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나 중독된 사랑에 곤욕을 치르고 있다면, 혹은 악마의 장난인지는 몰라도 지금 내 곁의 원수가 '여보'인 까닭을 파헤치고 싶다면 심리학 서적을 참조할 수 있다. 다양한 이론과 학파들이 난립하고 있지만, 적어도 성격, 사랑, 자기실현의 문제에서라면, 카를 구스타프 융의 분석심리학이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보다 훨씬 실용적인 도움을 줄 것이다.

융의 분석심리학에 따르면, 우리 마음은 의식과 무의식으로 이루어지며 무의식은 개인적 무의식과 집단적 무의식으로 구분된다. 그 특성과 기능에 따라 의식계에서는 자아(ego)를 볼 수 있고, 무의식계에서는 그림자, 아니마(Anima) 혹은 아니무스(Animus), 자기(Self)라 부르는 독특한 요소가 있다. 간단히 말해서, 우리 마음은 자아·그림자·아니마/아니무스·자기로 구성되어 있다. 자아는 현실 세계에서 의식할 수 있는 의식의 주체를 말하고, 그림자는 인간 본성 안에 있는 부정적인 원형상으로 집착, 방탕, 탐욕, 질투심, 이기심 같은 것이 들어있다. 융은 외적 인격과 내적 인격을 구분하는데, 페르조나가 외적 인격이고 아니마와 아니무스는 내적 인격이다. 아니마는 남성 속의 여성 인격을 가리키고, 아니무스는 여성 속의 남성 인격을 가리킨다. 이처럼 남성의 무의식 내적 인격은 여성적 속성을, 여성의 무의식 내적 인격은 남성적 속성을 띠게 된다. 그리고 자기는 전체 인격의 통일성과 전일성, 의식과 무의식을 포괄하는 전체 정신을 의미한다.

모든 원형은 밝은 면과 어두운 면, 창조와 파괴의 양면이 있다. 아니마와 아니무스 원형도 그러하다. 여성성의 원형인 아니마가 에로스이며 감성과 예감능력이라면, 남성성의 원형인 아니무스는 로고스, 사유와 판단능력이다. 현실적으로 우리가 관찰할 수 있는 내적 인격의 표현은 남성에서는 주로 '기분'으로, 여성에서는 '의견'으로 나타난다. 남성의 아니마는 정서적 측면을 드러내고, 여성의 아니무스는 지적인 측면을 드러낸다. 다만 아니마가 비합리적 감정이라면, 아니무스는 비합리적 이성이다. 분노, 짜증, 민감성, 감상성 등 비합리적 감정이 아니마의 부정적인 표현이라면, 사냥개처럼 물고 늘어지는 고집, 논쟁, 흠잡기 등 비합리적 의견은 아니무스의 부정적인 표현이다.

그러나 아니마와 아니무스의 긍정적인 면, 건설적인 면을 잊어서는 안 된다. 아니마와 아니무스는 우리의 자기실현을 돕는 최고의 조력자이고 의식의 확장을 위한 내면의 영성적 안내자다. 그래서 융은 아니마와 아니무스를 영혼의 인도자, 의식과 무의식의 중개자, 무의식의 인격화로 간주한다. 아니마와 아니무스는 자기실현의 과정에서 빼놓을 수 없는 존재인데, 각각 네 가지 발달단계가 있다. 아니마는 첫째, 본능적 성적 수준의 에로스(이브나 괴테의 <파우스트>의 그레트헨), 둘째, 낭만적인 사랑의 수준(헬레나), 셋째, 천상적인 종교적 사랑의 수준(마리아), 넷째, 영원한 여성상으로 지혜의 여신(소피아)의 순이다. 한편, 아니무스는 첫째, 육체적인 힘을 가진 남성상(타잔), 둘째, 낭만적인 행동가(헤밍웨이), 셋째, 말씀의 사자(정치웅변가 로이드 조지), 넷째, 영적 진리로 이끄는 지혜로운 안내자(간디)의 순이다.

한국 심리학 연구의 기여도가 높은 저자, 이부영
작가소개
한국 융학파의 태두로서 한국에 분석심리학의 씨앗을 뿌리고 분석심리학이 하나의 분과 학문이자 정통한 정신치료술의 하나로 인식되게 하는데 큰 기여를 하였다. 그동안 많은 논문을 발표하고 단행본을 출간하였다. 단행본 중에서는 분석심리학을 통해 한국인과 한국 사회의 심층을 밝혀보려는 의도를 가진 <분석심리학>이 유명하며, 그중에서도 <아니마와 아니무스>는 많은 사람의 사랑을 받은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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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성은 안으로 느끼고 여성은 숙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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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적인 경험으로 외적 인격을 말하는 것이 타당한 만큼 또한 그 경험은 내적 인격의 존재를 가정케 한다. 내적 인격이란 어떤 사람이 내적인 정신과정에 대해 취하는 양식이다. 그것은 내적 태도이며, 무의식 쪽으로 향한 그의 성격의 특성이다. 나는 외적 태도, 외적 성격의 특성을 페르조나라 하고 내적 태도를 아니마, 즉 제엘레(Seele, 심혼)라고 한다.
(43쪽)
페르조나가 지적이면 심혼은 틀림없이 감상적이라고 융은 말한다. 경험에 의하면 심혼과 페르조나의 보완적 성격은 남녀의 성에 따라 다른 특성을 보인다. 매우 여성적인 여성은 남성적인 심혼을, 매우 남성적인 남성은 여성적 심혼을 가지고 있다고 융은 말한다.
(44,45쪽)
아니마·아니무스가 만나면 아니무스는 권력의 칼을 급히 빼어든다. 그리고 아니마는 그녀의 속임수와 유혹의 독을 뿌린다.
(72쪽)
엠마 융은 아니무스에서 다루는 남성원리를 괴테의 작품 <파우스트>에서 파우스트가 요한복음을 번역할 때 스스로 자문한 내용에서 발견했다. '태초에 말씀이 있었다'를 "태초에 힘이 있었다, 또는 의미가 있었다, 행위가 있었다로 읽으면 어떨까" 하고 자문하는 대목이다. 그녀는 거기서 힘, 행위, 말씀, 의미로서 아니무스의 네 단계의 발전관계를 보았다.
(10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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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9.04
위대한 예술가는 미래를 표절한다
예상 표절 - 오늘의 책 이미지도 급이 있다. 저질스런 표절과 고급스러운 표절이 있다. 과거의 책을 베끼는 일은 저급하다. 뻔뻔하기만 하면 누구나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미래의 책을 베끼는 일은 극소수 천재들만이 할 수 있는 고품격의 표절이다. 이처럼 표절에도 등급이 있다. 삼류가 하는 표절은 대개 인터넷에 떠도는 문구를 펌하는 짓이다. 그러나 일류가 하는 표절은 아직 출간되지도 않은 텍스트나 잠재적 아이디어를 훔치는 일이다. 이런 고급 표절과 고난도 표절이 과연 가능한가? 가능하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 바로 파리8대학의 불문학자 피에르 바야르다. 그는 상호텍스트 이론에 근거하여 과거의 대문호들이 미래의 특정 작품을 표절하였다는 별난 이론을 제시한다. 바로 '예상표절'이다.

예상표절을 할 수 있는 글쟁이야말로 일류다. 소포클레스는 프로이트를 예상표절하고, 볼테르는 코넌 도일을, 프라 안젤리코는 잭슨 폴록을, 카프카는 베케트를 예상표절했다. 표절하는 대상이 미래의 저작, 불립문자의 작품이지만 예상표절은 미래의 대박 아이디어와 최고의 스토리를 놓치지 않는다. 예상표절은 시공간을 넘어선다는 점에서 순수하게 창조적인 초월의 작업이다. 예상표절은 언제나 미덕에 속한다. 미래를 베끼는 천재성과 미래를 모방하는 혁신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감식안이 있는 독자들은 그리스 비극작가 소포클레스가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을 예상표절했다는 사실을 알아차렸을 때 독서하는 기쁨과 흥분과 감동을 배로 느끼게 된다. 물론 예상표절이라는 확증을 얻기 이전에 부조화의 느낌이 있어야 한다. 즉 이 텍스트 또는 텍스트의 일부가 이론적으로 그것이 쓰인 시대가 아닌 다른 시대에 속하는 것처럼 보이는 데서 오는 낯설음을 느껴야 한다. 반면에, 아무런 인용 표시나 언급 없이 기존의 텍스트를 베끼고 훔치는 고전적인 의미의 표절은 두말할 필요도 없이 어리석은 악행이다. 유명 지식인과 대학교수의 끊이지 않는 논문 표절 시비가 바로 이런 패덕에 속한다.

글쟁이들은 으레 표절 공포증에 시달린다. 유명무명에 관계없이 '고전적 표절'이란 모든 작가에게 끔찍한 악몽이 된다. 그러나 예상표절 이론은 표절에 대한 기존의 상식을 완전히 뒤엎는다. 그렇다면 문학적 창작의 세계에서 표절은 무죄인 것인가? 저자의 눈에 비친 문학의 역사는 한마디로 표절의 역사다. 문학과 예술 영역에서 표절은 피할 수 없는 요소라는 뉘앙스마저 풍기고 있다. 다소 진지하고 꽤 허무맹랑하면서 매우 뻔뻔한 주장이다. 자칫하면 표절은 나쁘지 않다는 뉘앙스로 읽힐 수 있다. 그런데 살아 숨 쉬는 작가에게 표절의 문제는 단지 상상력의 유희 문제가 아니라 저작권 침해라는 사법적 문제가 걸리는데 저자는 이런 법률 부문을 완전히 무시하고 있다.

저자의 말대로, 표절은 과거의 작가에게 혹은 미래의 작가에게 보내는 일종의 찬사 혹은 찬미로도 간주될 수 있다. 결국은 훔칠만한 '반짝반짝 빛나는 보석'이 있다는 얘기니까. 그래도 여러분이 예상표절론을 너무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았으면 싶다. 예상표절론을 문학작품을 향유하는 일종의 탐미적인 놀이로 간주하면 그만이다. 솔직히 문학과 예술의 영역에서 상호텍스트의 현상과 작용을 다룰 때, 표절이 제기하는 지적 재산권과 저작권의 사법적 차원을 전혀 다루고 있지 않다는 것은 무책임한 일이다.

상호텍스트의 관계는 세 가지 유형으로 나뉜다. 고전적 영향은 한 텍스트가 후대 텍스트에 미치는 효과다. 상호적 영향은 서로 다른 시대의 텍스트들이 주고받는 상호적 효과다. 회고적 영향은 한 텍스트가 이전 텍스트에 미치는 효과다. 따라서 표절관계 역시 세 유형으로 나뉜다. 고전적 표절은 이전 작가의 작품들에서 영감을 받고 밝히지 않은 행위를 말하고, 예상표절은 후대 작가의 작품들에서 영감을 받고 밝히지 않은 행위를 말한다. 그리고 '쌍방표절'은 시간적으로 분리된 두 작가가 서로 영감을 주고받는 행위를 말한다. 바야르는 이와 같은 예상표절이론에 기대어 독자적 문학사를 상상하고, 미래의 사건과 텍스트가 기존 텍스트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하는 '예상비평'이라는 새로운 문학비평의 길을 개척하려 한다. 예상비평에 의하면, 문학사는 사건적 역사와 문학적 역사로 구분되고, 작가와 예술가들은 이중의 연대기에 속하게 된다. 오, 너무나 전복적인 문학사가 아닌가!

오늘의 책 선정의 변을 써주신 `자하`님은
현실세계의 휴머니스트, 문자세계의 로맨티스트. http://blog.naver.com/mediamatrix
작가 소개
저작권이 중요시되는 오늘날 표절 문제의 새로운 시각을 담은 저자, 피에르 바야르

예상 표절 - 오늘의 책 이미지
<읽지 않은 책에 대해 말하는 법>으로 유럽과 영미 평단의 갈채를 받았고 국내에서도 화제를 일으키며 독서에 대한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한 피에르 바야르는 현재 파리 8대학 프랑스문학 교수이자 정신분석가이다. 그는 정신분석학을 문학 비평에 적용하여 충격적인 논리와 결론을 이끌어내는 방식으로 기존의 문화예술계에 암묵적으로 존재하는 금기를 깨거나 변화시키고, 텍스트를 중심으로 창조적 사고의 새로운 가능성과 지평을 끊임없이 탐구하는 일련의 연구와 저서를 발표해왔다. 또한 우리가 전통적으로 당연시해온 독서 문화와 이에 대한 금기를 되짚고 독서의 목적과 방법에 대한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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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 밑줄 긋기
문학과 예술과 사상의 역사는 반드시 선형적이지 않다.

사실, 표절은 문학에 보내는 일종의 찬사다. 걸작의 속성이란 다른 작가들이 제 것처럼 직접 써봄으로써 그 작품이 열어놓은 길들을 탐험하도록, 혹은 꿈꾸도록 부추기는 것이 아니던가. 표절은 작가들의 재능을 공개적으로 인정함으로써 그들을 드높이지만 작가들에게서 환영받는 경우는 드물다. 작가들은 오히려 분개하거나 괴로워한다. (14쪽)

이 책은 일부 도용행위에 대한 안타까움을 뛰어넘어, 창작에 대한 성찰을 목적으로 삼고 있기도 하다. 작가가 동시대인들보다 시간을 앞질러, 앞으로 올 작품들에서, 때로는 아직 태어나지 않은 작가들에게서 영감을 받음으로써 어떻게 창작이 이루어지는지 보여주려는 것이다. (17쪽)

과거에서 현대와 미래로 방향이 정해진 고전적 표절에 미래에서 현재와 과거로 향한 예상표절을 덧붙여야 할 것이다. 그런데 이 두 가지를 고려하다 보면 시간을 뛰어넘은 작가들 간의 만남으로 특징지어지는 세 번째 형태의 차용, 쌍방 표절이 생겨난다. (72,73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