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은 미친 짓이다" 관람은 미친 짓이 아니다. ^^;

cinema 2002.06.29 01:11:38
결혼은 미친 짓이다.

어제 영화계 선배 한 분과 술을 마셨다.
그 분은 이미 두 자녀를 둔 중년으로 세 편 이상의 영화에서 프로듀서를 했던 분이다.
그 분이 짐짓 진지한 표정으로 함께 술을 마시던 일행에게 당부했다.
'결혼은 서두를 필요가 없어. 이 사람 저 사람과 지겹도록 사기고 지겨워 미치겠다 싶을 때 결혼해도 늦지 않다 이 말이야...'
일행 중 몇몇은 지겹도록 사귀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며 차라리 빨리 결혼하고 싶다고 투덜되기도 했다.
하지만, 그 선배님은 아랑곳하지 않고 술 잔을 기울이며, 한 마디 더 하셨다.
'결혼생활은 금방 지겨워지거든... 근데 둘이 만들어 놓은 애는 정말 귀엽거든... 귀여워, 씨바, 근데 그 귀여운 애도 다 족쇄라는 거지. 함정이야. 함정...'

문득 얼마전에 본 영화, "결혼은 미친 짓이다"가 생각났다.
정말 결혼은 미친 짓일까?
해도 후회하고 하지 않아도 후회한다면 차라리 하고 나서 후회하겠다는 결론이 대부분인 결혼...
결혼은 이렇다 저렇다는 결론도 나지 않는 진부한 말들로 시간을 낭비하기 보다는 "결혼은 미친 짓이다"라는 영화에 대해서 얘기해 보려고 한다.

이 영화는 2000년 오늘의 작가상 수상작인 이만교의 "결혼은 미친 짓이다"를 영화화한 것이다.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이지만, 소설과 완전히 일치하지는 않는다.
소설에서는 나와 그녀의 이야기 이외에도 아버지와 어머니, 동생, 친구에 관한 이야기가 가볍지 않은 무게로 다뤄지고 있는데, 영화에서는 대부분 나와 그녀의 관계에만 집중하고 있다.(그나마 친구 '규진'의 이야기는 상당부분 살아 있다.)
소설에서 '나'는 삼남매 중 둘째로 나오는데 반해 영화에서는 삼남매의 맏이로 나오고, 몇몇 상황과 에피소드들이 소소하게 변화되었다.
한마디로 '나와 그녀의 관계'에 집중하기 위해 군더더기 같은 부분들은 과감히 삭제하고 맛깔라는 대사들은 최대한 살리는 등 90분이라는 길지 않은 시간 안에 '결혼은 미친 짓이다'라는 녹녹치 않은 주제를 담아내기 위한 적절한 조치를 취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를 보고 소설을 읽는다면(혹은 그 반대가 되어도 좋다.) 소설을 영화로 각색하는데 발휘해야할 솜씨란 어떤 것인가를 느껴볼 만한 기회가 될 거라는 기대를 해본다.

원작소설 자체가 행동 묘사나 심리 묘사에 뛰어난 관찰력을 보이고 있는 데다가 맛깔나는 대사들로 꾸며져 있어 실험적인 형식의 시나리오를 읽고 있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
이런 소설을 놓치지 않고 영화로 살려낸 유하 감독의 녹슬지 않은 감각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야한 포스터를 내세우며 '노출'과 '엄정화의 과감한 섹스씬' 등으로 싸구려 포장된 영화는 겉모습과 달리, 오프닝의 결혼식장 롱테이크 시퀀스부터 심상치 않은 내공을 발산하고 있다.

자칫 이상한 관계로 비쳐지기 쉬운 나와 그녀의 관계는 영화가 진행될 수록 묘한 매력과 긴장감을 유발시키는 현실적인? 관계로 읽혀지고, 에이스를 구하지 못해 받아들인 듯한 '엄정화, 감우성' 카드는 에이스보다 더 나은 조커였다는 사실이 이내 밝혀진다.

"결혼은 미친 짓이다"는 그리 호락호락한 영화가 아니었다.
영화장면 곳곳에서 세심하게 신경쓴 노력들을 엿볼 수 있었고, 시종 흥미와 재미를 유발하는 감각을 잃지 않고 있었다.
이 영화는 동명아트홀(구 계몽아트홀) 상영을 끝으로 극장에서 막을 내렸다.  여러분들이 이 영화를 극장에서 볼 수 있는 기회를 놓친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극장에서 빛을 발하는 영화이거늘...

결혼은 미친 짓이다!
과연 그럴까?
결혼은 미친 짓이다?
그런 것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