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폭 마누라", 드뎌 봤다...

cinema 2001.10.19 22:07:36
조폭마누라

1993년, 홍콩에서 만들어진 "철마류"라는 영화가 있다.
황비홍의 어린 시절, '철후자'라고 불리는 의적에 관한 이야기를 다룬 이 영화는 서극 제작에, 원화평 감독, "무사"에 출연했던 우영광이 주연한 작품이다.
너무 오래 되어서 대충 재미있었다는 기억만 난다.
이 영화가 최근 미국에서 개봉되어 경이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미국에서는 "매트릭스", "와호장룡" 등에서 무술지도로 활약한 원화평의 인기에 힘입어 제작된 지 8년만인 2001년 10월 개봉되었는데, 단 1,225개 극장에서 개봉하고도 601만불의 수입을 올려 첫주 6위에 랭크되었다.
작년작 "와호장룡"의 히트에 감명을 받은 배급사 미라맥스는 이 영화의 팬인 퀜틴 타란티노 감독의 소개로 개봉을 적극 추진한 것으로 알려졌다.
개봉시 미국 평론가들의 반응은 "와호장룡"의 원조격 액션을 선보이고 있는 이 작품에 대해 일제히 찬사를 보냈다.
시카고 트리뷴의 마크 까로는 "모든 가족이 즐길 수 있는 폭력 영화가 바로 여기 있다!"고 흥분된 소감을 밝혔으며, 보스톤 글로버의 제이 카는 "조금도 오래된 영화같지 않다."고 평했고, 샌 프란시스코 크로니클의 밥 그레이엄은 "<와호장룡>은 서양입맛에 맞춘 동양식과 같은 퓨전음식이었다. 이제 진짜를 맛볼 준비를 하시라."고 극찬을 실었다. 그 외에도 워싱턴 포스트의 디슨 호우는 "시각적으로 눈부실 뿐 만 아니라 재미 또한 대단하다."고 평했고, 할리우드 리포터의 데이비드 헌터는 "보라! 이 영화적 경이로움을!"이라고 호평을 보냈으며, 빌리지 보이스의 데니스 림은 "불타는 장대 위에서 펼쳐지는 마지막 결투는 정말 눈부시다."고 최고의 평을 실는 등, 근래 보기드물 정도의 호평들이 이 오래된 홍콩 액션물 위로 쏟아졌다. (필름스 영화해석 중...)

한 때 홍콩영화는 아시아 영화시장을 석권하였다.
홍콩영화는 이미 오래전 헐리우드의 수준에 못지 않는 뛰어난 완성도를 지니고 있었다.
특히 액션의 표현양식에 있어서는 헐리우드도 따라오지 못할 정도의 화려함과 유연함을 갖추었던 나라가 바로 홍콩이었다.
하지만, 좋은 시절도 한 철이라고 이제 홍콩영화는 아시아 어디에서도 찬밥신세를 면하지 못하고 있다.
최고의 전성기를 구가하던 홍콩영화는 어느 순간부터 신선함을 잃어버리고, 기존의 이미지를 복제하며 자신의 에너지를 소진하기 시작했고, 이에 식상한 아시아관객들은 순식간에 등을 돌리고 말았다.

헐리우드는 이제서야 홍콩영화의 경이로움에 눈을 뜨는 듯 하다. 뒷북도 이런 뒷북은 없다...
얼마전 개봉했던 "와호장룡"를 통해서는 자유자재로 하늘을 나는 홍콩식 와이어액션과 날렵한 쿵푸의 정반합이 헐리우드를 뒤흔들었고, 이미 중년을 넘어서 몸이 느려진 성룡의 액션이건만 미국에선 지금 이순간, 경이적인 반향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철마류"의 놀랄만한 성공은, 헐리우드의 홍콩영화 재발견의 연장선상에 있다고 봐야한다.

다행히 아시아 변방에 위치한 작은 나라에서 태어난 까닭에 세계영화를 골구루 접할 수 있었던 우리는 이제서야 홍콩영화에 열광하는 그들이 측은해 보이기까지 한다.
우리에겐 이미 한물간 액션, 지난 액션의 반복들이 그들에겐 놀랍도록 신선한 것이다.

한 때 아시아 영화시장을 석권했고, 이제는 영화의 본고장 헐리우드를 놀라게 만들고 있는 홍콩영화지만, 제 2의 부흥기를 구가할 수 있을 지는 의문스럽다.

한번 떨어진 인기를 다시 되돌리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닐 뿐더러, 홍콩영화의 천재들 중 대부분이 헐리우드로 둥지를 옮긴 상태이기 때문이다.

"조폭 마누라"를 보고 홍콩영화를 들먹이는 것은, 우리나라 영화가 홍콩영화의 절차를 밟지 않을까 하는 노파심이 들었기 때문이다.

한 해에 관객 200만명이 넘는 작품이 네 작품 이상 탄생되고 있는 지금의 한국영화는 탄생이후 최고의 전성기를 누리고 있는 듯 하다.

하지만, 그 화려한 껍데기를 거둬내면, 올해 상반기 한국영화산업의 수익률은 -29.3%라는 처참한 수치를 드러내고 있다.
한국영화산업은 1995년부터 올해 상반기까지 5년 동안 평균 순제작비는 9억원에서 24억원으로, 마케팅비는 1억원에서 9억1000만원으로, 그리고 이들을 합친 총제작비는 10억원에서 33억1000만원으로 늘어났다. 이에 따라 한국영화 관객은 95년 1200만명에서 2000년 2000만명으로 엄청난 증가 일로에 있다. 이는 급격한 매출액 증가로 한국영화의 폭발적인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지만 투자액의 증가에 비하면 절반의 성과에 불과한 것이 엄연한 현실이다. 그러니 오늘날의 이러한 열기는 대박신화에 의존하여 부의 편중만을 불어 일으키는 거품일 수 있다.

그렇지 않아도 대박신화에 들뜬 조급한 제작환경이 한국영화의 질적 저하를 야기시키고 있는데, 그렇게 만들어진 결과물들이 겉만 번지르한 포장으로 엄청난 관객을 끌어모으고 있는 작금의 현실이 심히 걱정스러울 따름이다.

그래도 홍콩영화는 최고의 절정기에, 최고의 경지에서 내리막길로 돌아섰다.  
하지만, 우리는 천장 근처에도 못가서 바닥으로 떨어지려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문이다.

시종 썰렁한 유머와 황당한 이야기 전개로 일관하는 "조폭 마누라"에 무릎을 꿇어야만 하는가?

조폭인 여자가 피치 못할 사정으로 평범한 남자와 결혼하게 되면서 겪게 되는 우여곡절을 다룬 설정은 놀랍지만, 그런 설정을 90분의 이야기로 풀어냄에 있어 보여지는 엉성함은 맨정신으로 보아 넘기기 민망할 정도이다.

다른 건 제쳐 두고서라도 은진은 왜 그리 약해 보일까?
"터미네이터2"의 사라코너나 "G.I.제인"의 제인과 같은 강인함은 아니더라도 조폭 형님으로서 최소한의 위용은 갖춰야 하지 않을까?
곁가지이지만, 어린 시절 추억을 이야기하며 죽어가는 '빠다'의 모습에선 일말의 동정이라도 바라겠지만, 관객은 시종일관 황당한 웃음을 흘렸다.
이런 식의 웃음은 정말이지 아니다. ㅡㅡ=

이밖에도 이 영화는 곳곳에서 쉽게 만들고, 대충 만든 티를 내고 있다.

이런 영화가 대박신화의 또 다른 한 페이지를 장식하게 되고, 이후로 제작되는 영화들이 이러한 영화를 본보기로 삼는다면, 기껏 부흥기를 맞이한 한국영화는 어제의 영광을 뒤로 하고 초라하게 사라질 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은 오버인가?

영화계 선배 한 분이 나에게 이런 말씀을 하셨다.
'한 눈 팔지 말고, 그저 열심히만 해라. 한 눈 팔 시간이 어디 있냐? 이런 거 저런 거 신경 다 쓰면, 언제 공부하고 언제 발전하느냐?'

옳으신 말씀이다. 정말이지 한 눈 팔지 않고 열심히 일하며 배우고 싶다.

하지만, 이런 영화 앞에선 한 눈 팔지 않을 수 없다.

나를 한 눈 팔게 한 "조폭 마누라"가 밉다.  ㅡㅡ+

참고로 이 영화의 컷수는 944(+-50)컷이다.

용꼬리 : 이 영화를 만드신 스텝 여러분, 수고하셨습니다...
근데, 이 정도로 대박 터지면, 보너스 팍팍 줘야하는 것 아닌가요?
현진에서 보너스를 주던가요? ㅡ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