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능이 너무 없는데 어떻게 해야 할까요

피지오겔라비아 2022.04.25 17:28:18

어릴 때부터 영화 보는 걸 너무너무 좋아해서 나도 영화 감독 되고 싶다! 하며 살았는데


막상 실무로 가서 몇번 만들기 시작하니 재능이 없는 것 같아 허한 마음이 드네요


재능 없다는 게 명감독들만큼 못한다 정도 수준이 아니라


딱히 촬영 해보지 않은 분들보다도 보는 눈이 없는 느낌입니다






홍대병 걸려서 그런지 자꾸 뭔가 특이하고 형이상학적인 연출을 찍고 싶은데


또 대중들 니즈는 챙겨주고 싶어서 그런 연출이 나올 수 있을만한 상황을 억지로 채워넣으니


자꾸 어중간하고 이해 안 가는 알쏭달쏭한 걸 만들게 되네요


(예를 들어 하얀 "눈밭 위에 빨간 꽃 한 송이"라는 색대비가 강렬한 이미지를 찍고 싶어서 그와 관련된 얘기를 밤새 만드는데,


또 대중성을 잃기는 싫어서 기승전결 스토리를 우겨넣다보니 대충 그런 연출 구색 맞추는 얘기 정도가 됩니다.


이 얘기를 본 사람들은 "어... 그래서 눈 위의 빨간꽃이 주제인 건 알겠어. 그럼 그 꽃의 의미가 뭐야?"라고 묻습니다.


그러면 전


"의미를 억지로 집어넣긴 했는데... 사실 무슨무슨 주제다! 보다는 그냥 저 이미지 너무 예쁘다 싶어서 찍었습니다......"


라고 대답합니다.


사람들은 당연히 뭔 소리를 하는 거냐는 눈빛을 보냅니다.) 






학생 영화 만들며 이러고, 독립 영화 만들면서 자꾸 이럽니다.


매번 "신기한 거 찍으려고 열심히 개고생한 건 알겠는데 뭘 말하고 싶은지 이해가 안 간다"라는 비판을 받고,


맨날 듣는 칭찬은 "상상력이 엉뚱하고 이미지가 특이하며 4차원적이다, 근데 이해가 안된다..." 입니다.


물론 상황이나 대사를 기가 막히게 만들면 장땡인 부분인데


어릴 때부터 미국 공포 영화나 히어로물같은 장르물만 봐서 그런지 몰라도 대사부터 자연스럽지 않다는 얘기를 많이 듣네요


이 일이 혼자 일하는 거면 상관 없는데 항상 팀 단위로 일해야 하고,


팀원들도 사람이다보니 이런 내용을 별로 내키지 않아하는 게 보이고, 그렇게되면 저도 어쩔 수 없이 촬영 내내 눈치를 보게 됩니다







태어날 때부터 만들기를 좋아해서 그림 그리고, 글 쓰고, 동영상 찍고, 종이로 게임 만들고 이런 게 삶의 낙이었는데


29살 먹고 아 나는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는 재능이 없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포기하고 다른 길 걸어야 하나 진지하게 고민 중입니다






계속 이 일을 하는 게 맞는 걸까요


아니면 좀 더 적성에 맞는 다른 할 일이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