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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개토의 영화리뷰(2) 블랙호크 다운-검은 매가 추락할 때.

sukhoi
2002년 02월 10일 19시 57분 06초 7891
광개토의 영화리뷰 (2)

블랙 호크 다운 - 검은 매가 추락할 때.

흑백 브라운관 가득히 미군 철모가 모자이크 무늬로 변해갈 때면, 힘찬 군가와 더불어 나레이터의 긍지에 찬 목소리로 소개되던 이름, '빅 모로', 어떤 악조건, 심지어 죽음 직전의 상황에서도 끄덕 없는 자신감 넘친 얼굴과 톰슨 기관총 하나로 나치 수십 명을 죽이면서도 탄창조차 갈기를 거부하던 신기의 보급술, 바쁜 전투의 와중에도 여자와 아이를 보면 가족의 중요성까지 설파하던 교육열의 소유자, TV 시리즈물 전투(Combat)가 보여주던 전쟁의 '낭만'과 미국 영웅의 모습이 라이언 일병 구하기의 오마하 해변에서 흘린 유혈에 의해 환상이 씻겨 내려진 후에도 여전한 듯 싶다.

배달의 미공군 기수 탑건에서 베트남전을 자성함에도 당사자 베트콩은 움직이는 표적판으로 취급되던 플래툰에 이르기까지, 할리우드는 전쟁이란 소재를 오락과 진지한 역사 기록의 양극단 사이에서 교묘히 양다리를 걸치며 살아왔다. SF 고전이 되버린 블레이드 러너와 에어리언, 페미니즘 영화의 대중용 버전 델마와 루이스, 함량미달로 보이는 한니발과 역사 스펙터클을 대중적으로 구현해 내는데 성공한 글래디에이터에 이르기까지, SF와 오락, 페미니즘의 요소, 예술까지 전혀 어울리지 않는 이질적 요소를 잘 조화시키는 리들리 스콧이 이번엔 글래디에이터의 원형 경기장에서 카메라를 소말리아의 모가디슈 거리에 옮겨놓는다.  차이가 있다면 로마시대와 서사극에서 10년전 CNN화면으로 생생히 소개된 소말리아 길거리 한복판에서 미 특수부대의 자존심 델타 포스와 레인저가 19명 학살되는 동안 1000여명의 민병대와 민간을 사살했던 참상을 전투의 비극적인 실상을 그려내기 위해 동원된다.
언뜻 블랙 호크다운은 라이언 일병 구하기의 현대전 버전으로 비춰지지만, 문제는 유럽을 구하는 인류 최후의 정당한 전쟁이 주는 정당성과는 상당히 거리감이 있다는 점인데, 그럼에도 아이디드의 잔혹성, 내전에 의한 기근을 막고자 하는 UN의 노력을 전반부 자막을 통해 강조하면서 영화는 스스로 애써 전쟁의 정당성을 만들어 내려 노력한다.

영화의 미덕 - 리얼리티와 전우애.

걸프전 직후 세계 경찰을 자처하는 미국의 이익을 위해 탄생된 실패작 '희망회복 작전'이 '비극회복 작전'으로 둔갑하는 이 영화에선 행인지 불행인지 탄창을 갈지 않는 무한 보급의 군인도, 정체 불명의 로켓 달린 오토바이 하나로 수십 명의 테러리스트를 해치우던 선배 델타포스 척 노리스도 등장하지 않는다. 단지 전능한 미군과 악의 화신 유색인종을 피와 살을 가진 동일한 인간으로 다뤘다는 점 하나만으로도 지금까지의 미국의 전쟁영화와는 한 차원 다른 모습을 보여주었다고 높이 평가할 수도 있다.
영화는 전반적으로 명감독의 탁월한 연출력과 원작이 가지는 숨가쁜 리얼리티가 조화를 이뤄내서 지금까지 만들어진 어떤 영화보다도 덜 할리우드 영웅적인 군인들이 등장한다. 시가전은 철저하게 실제 교범과 실화를 바탕으로 이루어져 뻔한 액션과는 차원이 다른 리얼리티를 선사한다. 상당부분은 바로 원작이 실화를 철저하게 묘사했기 때문에 영화 역시 다른 전쟁영화와는 다른 현실감을 갖는다.

탄창을 갈지 않던 무한보급의 영웅모습 역시 블랙 호크 다운에선 총알이 없어서 고민하는 제대로 된 정상적인 영웅으로 바뀌고 델타와 레인저의 보이지 않는 알력도 감동적 전우애로 로 포장된다. 리들리의 탁월한 연출은 콘티와 실제 장면이 완전히 같다는 감탄사 그대로 짜임새 있고 박진감 넘치게 영화를 이끈다. 라이언 일병 구하기의 오마하 씬 이상의 리얼리티를 담은 전투 장면은 스펙터클한 액션과 더불어 참상을 전달하는데 역시 소홀하지 않는다.  전우애를 위해 전투에 뛰어든다는 마지막 대사가 사족이라 느껴질 정도로 영화는 잔잔한 동료애를 느끼게 해주었다.

아쉬운 점 - 인디언은 보안관이 아니다.

사실 서부영화를 보며 보안관에 몰입하고 인디언은 여자를 납치하고 살인을 저지르는 무개성의 표적판으로 등장하는 것을 당연히 여기던 관객들에게 인디언의 사생활과 화살을 제작하는 고뇌마저 보여준다면 그것은 할리우드이기를 거부하는 일일지 모른다. 그럼에도 리들리 스콧처럼 페미니즘 문제까지 대중적 버전으로 만드는 역량과 혜안을 가진 감독이 원작에서 보여준 나름대로 객관적인 미국과 소말리아의 양측의 시각을 무슨 이유에서인지 한쪽만 담아냈다는 점은 그의 흥행감각과 정치적 이슈를 최소화하려는 시도인지는 모르겠지만 궁극적인 비판은 모면하기 힘들 것이다. 아이디드 민병대와 정체 불명의 민간인(이들이 왜 싸움에 참여하는지는 영화 전체 어디에도 언급되지 않는다.)의 전투 역시 톰슨 하나에 볼링핀처럼 쓰러지는 나치들이나 같은 소리를 질러대며 총구 앞으로 달려드는 베트콩과 별 차이가 없도록 획일화시켰다. 실화처럼 RPG로 600만불짜리 헬리콥터를 2대나 격추시키고 지붕 위에서 AK소총으로 험비에 매달린 델타와 레인저를 사살하며 합참본부 모니터에서 보이는 벌떼같이 몰려드는 그들의 모습에서 에어리언의 아프리카인 버전 같다는 느낌이 들 정도의 획일성과 편파적 시각을 느끼도록 만든다. 원작에서 미군의 무차별 사격으로 억울하게 희생된 어린 동생 때문에 분노에 떨며 즉석에 총을 든 10대 원주민 학생의 생생한 인터뷰, 그의 친구들이 당한 참혹한 죽음에 대한 내용이나 토우 미사일을 이용한 이전의 요인 암살 작전 때문에 무고한 민간인이 학살당했다는 소식에 분노해 있던 당시 모가디슈 주민들의 반감, 헬리콥터 연습 때문에 받은 수많은 주민들의 피해로 변호사까지 대동하고 미군에게 항의하러 갔음에도 만나주지 않았던 일화, 총구 앞에 무식하게 덤벼드는 미개인처럼 보이는 영화 속 모습이 죽음을 각오하고 덤비는 그들 나름대로의 전통적 전사의 모습이라는 작가의 보충설명 역시 시나리오 작업에 참여했다는 설명에도 영화 속 어디에도 언급되지 않는다. 궁극적으로 델타와 레인저에게 총격을 가한 사람들 중 상당수가 자발적 민간인들이였다는 사실과 그들의 동기가 묻혀졌다는 점은 영화가 가진 치명적 단점으로 남는다.

전쟁 영화에 있어서 피할 수 없는 야누스적 측면은 전쟁의 비극을 알리는 의도 역시 하드코어한 액션의 오락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는 것이다. 오마하 해변에서 자신의 팔을 집어든 병사의 넋 나간 표정을 보고 쾌감을 느끼는 변태는 세계적으로 무척 드묾에도 불구하고 비극을 그리는 시도 역시 또 다른 액션으로 받아들여질 위험 또한 내포하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블랙 호크 다운은 잘못된 정책과 무리한 작전, 그리고 아무리 성공적인 작전이라 하더라도 무고한 희생과 고통을 치룰 수밖에 없다는 주제를 전하는데 성공했지만 동시에 스펙터클한 액션과 미군의 또 다른 영웅물로 받아들일 위험 역시 남아있다. 리들리 스콧만이 가진 탁월한 리얼리티와 오락의 조화를 추구하는 연금술사의 재능이 감동과 전투의 참상을 주면서도 동시에 스펙터클한 밀리터리 영화의 재미를 같이 전달된다는 점에서 비극적인 사고를 오락적인 면으로 포장하는 할리우드의 어쩔 수 없는 본능은 영화를 즐겼던 필자에게도 웬지 피해자들에겐 괜한 죄의식을 느끼게 만들었다. 그러나 영화 마지막 어린아이를 안고 넋놓은 표정으로 차 앞을 지나가던 소말리아인의 모습은 리들리 스콧이 보여주려던 소말리아인들의 피해에 대한 최후의 경의였을지 모르겠다.

결론 - 탁월한 수작, 그러나 악의 축은?

블랙 호크 다운은 분명 현대전의 참상을 객관적으로 그려낸 수작이다. 나름대로의 공정하려는 시각이나 영웅주의의 탈피, 오락과 역사 기록의 간격을 적절히 타협한 감독의 탁월한 연출력은 인정받아 마땅하다. 또한 미국, 소말리아의 문제를 떠나 어떠한 전투도 본질적으로는 참혹한 결과를 가져온다는 교과서적인 결말을 생동감 있게 그려냈다는 측면에서 블랙호크 다운은 시대를 넘는 보편성 역시 지니고 있음은 분명하다.
19명을 담보로 1000여명을 죽이는 전쟁 영화의 주제가 단지 전우애와 전투의 참상 외에 없다는 것은 분명 아쉬움으로 남지만, 그럼에도 블랙 호크 다운은 라이언 일병 구하기 이래 새로운 전투의 모습과 전쟁 영화 장르의 나갈 모습을 보여주었다는 면에서 영화팬은 놓쳐선 안될 걸작이다. 악의 축을 말하며 스스로 편견의 축을 쌓아나가는 아무개에 대한 혐오감 때문에 탁월한 영화 한편을 미제국주의 산물로 도매금할 시간엔 차라리 프렛첼 한 상자를 마음의 선물로 보내는 것이 나을 듯 싶다. 영화는 결국 영화일 뿐이므로.

시네리뷰어 광개토
kakemusa@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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