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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에서 온 소식입니다.

mee4004
2001년 09월 13일 12시 44분 16초 5148
* 뉴욕에 있는 남종우라는 친구가 보내온 이멜들입니다.

#첫번째 메일
안녕하십니까?
뉴욕에 있다는 이유만으로 고국에 있는 많은 분들께 걱정을 끼치고 있네요.
이곳은 생각보다는 평화롭습니다.  저를 비롯하여 가족들 및 가까운 주위사람들 아직까지는 아무런 피해를 입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지만, 제가 모르는 적잖은 한국사람들이 피해를 입었겠지요. 여긴 한 다리만 건너면 다 아는 사람인데...  
하루종일 출근도 못하고 TV 앞에 앉아 믿을 수 없는 상황들을 눈으로 보면서 그저 살아있음을 감사하곤 했답니다.  그렇게 어마어마한 빌딩들이 결국 무너져 내리는 모습을 보고있자니 그야말로 아무 생각이 없어지더군요.
무슨 관련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집에서 한국으로 거는 전화도 안되고 해서 일일이 안부를 전할 수가 없어 이렇게 짧은 이메일로 대신 합니다.  염려해 주신 점 감사드리며 정말이지 앞으로는 더 이상 이런 엄청난 일이 없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뿐입니다.  


# 두번째 메일
Dear Friends:
하루종일 출근도 못하고 TV 앞에 앉아 믿을 수 없는 상황들을 눈으로 보면서 그저 살아있음을 감사하곤 했답니다.  
무슨 관련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집에서 한국으로 거는 전화도 안되고 해서 일일이 안부를 전할 수가 없어 이렇게 짧은 이메일로 대신 합니다. 아직까지는 우리 아는사람들 주위에 아무런 피해소식은 없습니다. 더 이상 이런 엄청난 일이 없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뿐입니다.  

 

# 세번째 메일
참사 이틀째 되는날,
쌍둥이빌딩이 더 이상 보이지 않는 맨하탄 마천루를 향하여 차를 몰고
사무실로 들어오는 길은 한차례 폭격이 휩쓸고 간 죽은 도시같은 느낌이었습니다.  
경찰들이 사방에 막아놓은 바리케이드들을 피해 2시간을 빙빙 돌아 겨우
맨하탄으로 진입하는데 다리에서 경찰들이 자동차를 일일이 세워 트렁크까지
샅샅이 뒤지고 안전여부를 확인한 다음 한 대씩 들여 보냅니다.  마치 소잃고
외양간을 샅샅이 뜯어고치는 모습을 보고 있는 것 같군요.
무슨 당첨된 것 같은 기분으로 맨하탄에 들어오니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하늘 한쪽 끝에 뭉게뭉게 하얀 구름이 보여 자세히 보니 빌딩 무너진 자리에 연기가 구름처럼 퍼져있는
모습이군요.  텅 빈 공간이 마음을 쓰라리게 합니다.  평소에 많이 막히는
5애비뉴를 그야말로 유유히 따라 내려오다 보니 양쪽 보도에 꽤 많은 사람들이
보입니다.  왠일인가 하고 자세히 보니 몇몇사람 빼고는 모두 발이 묶인
여행자들입니다.  사무실에서 가까운 엠파이서 스테이트 빌딩은 사방으로 서너블럭
막아놓았고 32가 근처 도매상들은 모두 문을 닫았습니다.  오늘은 맨하탄으로
들어오는 모든 배달이 끊겼고 사무실엔 이틀째 우편이 배달되지 않았습니다.  
거리에는 바람 때문에 여러 가지가 섞여 타는 냄새같은 것이 진동을 하기 시작했고
뉴욕타임즈는 어제 TV에서 볼 수 없었던 기막힌 사진들과 기사들을 싣고
있습니다.  한국신문에도 엄청난 사연들이 눈에 띄고 있습니다.  <건물안에 있던
28세의 여자 변호사가 전화통화로 "엄마 비행기가 와요, 쿵 쿠쿵..">  이런
기사들말입니다.  지금 맨하탄은 생각 했던 것보다 매우 차분하지만 곳곳에
군인들이다니고, 군차량들이 지나가는 모습이 보입니다. 점심으로 잘 넘어가지도
않는 자장면을 억지로 밀어 넣고 돌아오다 행여나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에 무슨
일이 생길지나 않을까 나도 모르게 연민에 쌓여 한참을 올려다보고 있었습니다.
살아있는게 미안할 정도로 숨가쁘게 복구되고 있는 맨하탄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자신이 부끄럽기까지 합니다.  헌혈도 O형만 집중적으로 받고 있고..
카메라를 들고 무작정 구조현장에 들어가 볼 생각도 해보지만 네트워크 기자들도
쉽게 접근하지 못하는 곳에서 뭘 어떻게 찍을지 생각도 의욕조차도 없네요..
인정하고 싶진 않지만 이사건으로 인해 세계 전체가 흔들리고 있다는 사실이
저를 더욱 우울하게 하는 것 같습니다.  정말 답답할 따름입니다.  아무일도
할 수가 없네요..  내일은 좀더 힘을 내어 좋은 소식을 전할수 있길 바랍니다.

9월 12일 오후 맨하탄에서 남종우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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