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大道無門 - 퍼온 글

jelsomina jelsomina
2000년 11월 02일 15시 52분 00초 6806




구내 이발관에 머리를 깎으러 갔다. 이발을 하려다 말고 주인이 뜬금없이 "사모님이 왼편에서 주무시죠?" 한다. 아니 이 자가 내 마누라가 왼쪽에서 자는지 오른쪽에서 자는지 어찌 안단 말인가? "머리 모양만 보면 압니다." 동료 교수에게 이 이야길 했더니 "정선생이 금슬이 되게 좋은 모양이네." 하며 놀린다.

내친 김에 그는 손님이 머리 깎을 때 주문하는 말만 들어도 그 사람의 성격과 하는 일까지도 대개 알아 맞추겠더라고 한다. 시시콜콜히 이래라 저래라 하는 사람이 있고, 이제 당신 거니 알아서 하슈하며 아예 눈을 감는 사람도 있다. 깎고 나서도 무엇이 못마땅한지 비맞은 중처럼 중얼거리기도 하고, 머리 감기가 무섭게 빗질도 마다하며 휙 나가기도 한다. 심하게는 다음날 다시 와서 도저히 승복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손질을 요구하는 경우까지 있단다.

구두쟁이는 발 생긴 모양으로 그 사람을 짐작하고, 안경점 주인은 안경 모양만 봐도 또 가늠이 되는 모양이다. 말하자면 수십년 한 가지 일에만 몰두하다 보니 마침내 그 안목으로 세상을 보는 눈이 열리기에 이른 것이다. 앉은 자리에서 묵묵히 자기 일에 충실하다가 어느덧 그 문을 통해 세상이 보이고, 사람이 보이게 된 것이다. 세상에는 뜻밖에 이런 고수(高手)들이 많다. 그 목소리는 나직하고 수줍지만 힘이 있다.

큰 도에 들어가는 문이 따로 있을리 없겠다. 길은 어디에도 있고 또 어디에도 없다. 볼 줄 아는 눈 앞에만 길은 보인다. 한 줄 어줍잖은 글을 쓰면서도 요리재고 조리재는 터수에 언제나 남의 뒤통수만 보고도 마누라 누운 방향까지 읽는 지혜의 눈이 환히 열릴 것인가.
젤소미나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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