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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구성 - 나는 아무 잘못 없어

dongja
2020년 06월 17일 13시 10분 27초 197

 

공지가 또 올라왔다. ‘기말시험은 비대면으로 진행하겠습니다.’ 캠퍼스 라이프를 꿈꾸며 상경을 시작한 것이 벌써 넉 달, 나는 자취방에서 썩어가고 있다. 시험 공지가 하나, 둘 올라온다. 아직 안 들은 온라인 강의가 많은데 큰일이다. 빌어먹을 전염병만 없었어도 내가 이러고 있지는 않았을 거다.

오늘부터 진짜 열심히 살아야지공을 바닥에 튕기며 외쳐본다.

 

왜 이렇게 졸린 걸까. 밀린 강의에서는 교수님께서 벚꽃 얘기를 하고 있다.

 

교수님, 죄송하지만 지금은 한여름입니다.’

 

이런 시답잖은 농담을 생각하고 나니 배고픔이 밀려온다.

, 강의는 밥 먹으면서 봐도 되니까.’

냄비에 물을 올리고 끓을 때까지 가만히 기다린다. 11, 한창 자고 있을 시간인데 일어나서 강의를 듣는 내 모습이 그래도 좀 기특하다.

 

앗 뜨거손잡이 온도에 너무 놀라, 책 위에 냄비를 올려 놓아버렸다.

어쩌겠냐, 금강산도 식후경이라는데

책 위에 냄비를 올려놓은 채 면발을 건져 올린다. 나의 라면 솜씨는 정말 일품이다. 원래대로면 이 솜씨를 대학교 친구들에게 자랑했을텐데.

 

라면을 다 먹어 치우고 보니 이런, 책이 탔다. 공부를 하려 해도 도와주지 않는다.

그래도 강의는 들어야지, 오늘부터 열심히 살기로 했으니까

아무리 다짐을 해도 식곤증은 막을 수 없나 보다. 교수님의 목소리가 달콤한 자장가로 들려온다. 공을 바닥에 튕기는 것도 이제 지친다. 생각해보니 어제 늦게 잤는데 너무 무리하게 일어난 것 같다.

 

한숨 자고 시작해볼까?”

 

해가 벌써 지려고 한다. 시계를 보니 7시가 넘었다. 생각보다 오래 잤다. 그래도 잔 만큼 새벽까지 공부하면 목표치를 채울 수 있을 것 같아 다행이다.

일단 저녁부터 먹어야지

냉장고를 열어보니 음식물 쓰레기 봉투와 유통기한이 다 지난 음식만 가득하다. 먹을 거라곤 고향에서 보내준 김치뿐. 어쩔 수 없이 배달 앱을 연다. 밖에 나가서 뭘 사 먹고 싶어도 나갈 수가 없으니 배달밖에 답이 없다.

 

중국 음식으로 배를 채웠다. 너무 속이 느끼해서 바로 공부가 안될 것 같다. 소화도 시키고 잠시 휴식도 할 겸 노트북으로 그동안 못 챙겨봤던 야구 경기를 봤다. 나는 이렇게 집에 갇혀 있는데 밖에 나가 스포츠를 하는 선수들을 보니 짜증이 났다. ‘얼씨구, 치어리더도 있네...’

나는 영상을 멈추고 책상에 있는 휴지를 가지고 왔다.

그래, 그동안 너무 안 했어

황홀했던 3분이 지나고 나는 노트북을 덮었다. 오랜만이라 힘들었다. 휴지로 나의 흔적을 모두 닦았다. 그리고 꽉 찬 쓰레기통에 휴지를 집어넣었다. 시계를 보니 11시가 넘어가고 있었다.

씨발

12시간 전의 나는 내가 기특하다 생각했다. 기특은 무슨, 너무 한심하다. 언제 입었는지도 모르는 옷이 여기저기 내팽개쳐 있고, 꽉 찬 쓰레기통에서는 정액을 닦았던 휴지가 삐져나오려 한다. 냉장고에는 음식물 쓰레기가 가득하고 공부하려고 폈던 책은 거멓게 태워져 있다.

 

저 구석에 공이 보인다. 공을 힘껏 바닥에 내리쳤다. 공은 천장까지 튀었다.

 

공은 떨어져도 저렇게 높이 뛰어오르는데....

 

나는 자취방에서 끝없이 추락하고 썩어가고 있다. 내 잘못이 아니다. 내 잘못이 아니다..

내일은 정말 열심히 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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