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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름메이커스에 대한 애정과 충심으로

아웃사이더
2020년 04월 15일 11시 56분 08초 214

필름메이커스에 대한 애정과 충심으로

 

 

내가 이 곳에 글을 올리는 이유는 책과 영화의 바탕으로 삼으려한다고 했습니다. 책 한권 사서 볼 독자도 없을 것 같고, 돈 주고 봐줄 관객도 없을 것 같은데 왜 그런 짓을 하는지 이해불가일 것입니다.

이것은 필름메이커스에 대한 애정과 충심입니다. 이 곳에는 유명 필름메이커에서부터 스텝, 배우, 지망생은 물론 관객, 일반인 그리고 아이들, 아이들의 보호자들까지 활동하는 공간입니다.

필름메이커와 영화에 대한 인식에 오류를 우려하여 보태려는 의도입니다. 물론 대다수 회원들에게는 글을 쓴 자의 의견이 도움도 안 되고, 오류의 인식에 더 영향만 줄 뿐이라고 한심해 할 수도 있습니다만 일단 내가 보는 시각과 입장에서 나는 이렇게 생각하는데 어떻게 생각하는지 의견을 제시하는 것입니다. 공감할 수도 공감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잘못된 인식, 오류를 발견하여 바른 인식, 바른 흐름을 위해 말을 보태는 것이니 다소 거북해도 너그럽게 이해를 부탁드립니다.

 

 

 

 

 

글을 쓰면 공감하는 독자도 있지만 공감할 수도, 이해할 수도 없는 경우도 있어 반론은 있기 마련입니다. 유능한 언론사의 기자, 주간의 글에도 분노하는 독자가 있는데 무능한 아웃사이더의 글에 반론이 없는 게 말이 안 됩니다.

 

돈도 안 되고 수양에도 전혀 도움이 안 되는 일을 굳이 할 필요가 있을지 의문이 아닐 수 없을 것입니다. 애정과 충심도 맞겠지만 반론 자가 지적하는 꼰대가 맞을 지도 모릅니다. 한번 웃고 지나가면 될 것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끼어들어 잔소리하는 사람을 꼰대라 하더라고요. 꼰대기질은 나이를 먹을수록 더욱 더 드러난다고들 합니다. 영화를 하겠다고 마음을 먹고 어린 나이에 영화를 보고, 하려고 돈을 모으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어느새 꼰대소리를 들어야 하는군요. 한번 웃고 넘어가겠습니다.

 

여기서 반론자의 댓글을 무시하지 않고 일일이 집고 넘어가는 것은 잘못된 인식과 상식의 오류를 바로 잡기 위해서입니다.

이 곳에서 나의 글에 댓글을 달고, 이의를 제기하는 반론 자는 이 공간에서 많은 글과 댓글을 달고 있는 것으로 압니다. 많은 선량하고 순진한 사람들에게 조언을 해 바른 길을 가게 하고자 봉사하는 열정으로 보입니다.

애정과 충심으로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 바르게 인도하려는 의도는 글을 쓰는 자나 반론을 제기하는 자나 같은 마음일 것입니다. 보는 사람들은 참으로 답답하고 한심해 보이겠습니다. 말 같지도 논쟁을 시간낭비하면서 왜 하는지, 같은 말을 하면서 왜 자꾸 겉 돌고 있는지, 왜 그냥 무시하고 넘어가면 될 일을 굳이 집고 넘어가려고 하는지 웃기지도 않을 것입니다.

 

이 순신 장군의 난중일기를 보고 폄훼하는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일기 속에 여러 여자들과 잤다는 기록을 근거로 장군님의 문란한 사생활을 지적하며 성웅이라는 호칭이 부적절하다는 주장입니다.

전시상황에서는 천막에서 대충 잠을 청해 자야했을 것이고 남녀구분 없이 잠자리를 잡아야했을 것입니다. 그만큼 열악한 환경에서 전쟁을 하였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얼마나! 전시상황에서 군사들의 진지가 열악하면… 이렇게 생각하면 될 것입니다. 그런데 예기치 못한 의혹 아니 비리를 제기합니다.

나는 이 순신 장군의 난중일기에서 여진과 잤다는 이야기를 들었지만 부적절한 관계로 상상하지 못했습니다. 늦은 밤 피곤하여 먼 길을 온 손님을 재우고 장군님도 눈을 좀 붙인 것으로 이해했습니다. 그런데 이것을 가지고 괴상망측한 상상을 하면서 장군님을 폄훼하는 것입니다. 때가 되면 그럼 잠을 자야지 무엇을 해야 한단 말인가요?

잠은 잠이지 음탕한 관계가 아닙니다. 남녀의 애정관계를 표현하기가 곤란할 때 잠을 잤다는 표현을 빌려 쓸 뿐이지 잠을 잤다는 말이 어찌 부적절한 행위일까요? 잠을 부적절한 관계로 이해하는 사람의 세계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잠을 자는 동안 늘 부적절한 관계를 하는 사람일까요? 잠은 그냥 잠이어야합니다.

 

이 곳에 19금이라는 영화가 배우모집을 한다고 거북해하는 분위기가 있어서 19금 영화도 영화라는 말을 하는 것이고 배우로서, “19금 영화에 출연을 하지 않으면 올바른 배우가 아니다! 그러니 배우는 19금 영화에 반드시 출연해야 한다!” 라는 말이 아닙니다.

 

적절한 비유가 아닐 수도 있고, 읽어 봐주는 입장에서 매우 불쾌한 비유일 수도 있지만 의사와 경찰관을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어느 한 살인자가 있습니다. 착한 처녀를 실수로 죽인 살인자입니다. 이 자는 경찰고위간부의 사랑하는 아들입니다. 경찰간부의 부하인 형사는 범인을 쫓는 수사를 시작합니다. 다른 형사들은 증거를 수집해 화장실 청소부의 아들을 범인으로 지목합니다. 한 형사는 증거도 없이 심증과 정황만으로 자신의 승진을 쥐고 있는 고위간부 아들을 지목합니다. 이 아들은 공부도 잘하고, 똑똑해서 장차 경찰이 되어 미제사건을 해결할 천재로 기대하는 상황입니다. 살인은 그저 실수일 뿐입니다. ‘모든 형사들이 청소부의 아들을 지목하고 있고, 청소부의 아들이 처녀를 죽였다는 결정적인 증거도 있고, 굳이 자신을 승진시켜줄 간부의 아들을 의심하고 수사할 필요가 있을까? 어떻게 하지?’ 형사는 두려워집니다. 이때 꼰대는 주책없이 말합니다. “경찰은 대통령의 아들이라도 혐의가 보이면 수사해야 한다.”고 합니다. “의심했다는 사실만으로 옷을 벗어야하고, 참담한 인생을 살아가야할 처지가 될 테지만 범인이라고 생각하면 수사해야 한다.” 형사의 끈질긴 추적으로 마침내 증거를 찾아 범인을 잡았습니다. 범인을 잡은 형사는 의문사를 당합니다. 보복살해를 당할지라도 경찰은 성역을 가리지 말고 용의자를 수사해야 합니다. 멀쩡한 형사가 죽었네요. 정의롭고 용감한 경찰이 희생을 당했지만 아무리 봐도 이것이 꼰대의 말실수로 보이지 않습니다. 그저 죽을 만큼 안타깝고 유감스러운, 아주 불행한 사고가 발생한 것입니다.

범인을 잡고 보니, 아! 살인은 실수가 아니었습니다. 비슷한 처녀를 30명이나 희생시켰습니다. 현장검증에 범인이 나와 재연을 합니다. 분노한 피해자의 부모가 쇠파이프를 들고 범인을 향해 달려갑니다. 이때 꼰대는 말합니다. “자신의 딸을 죽인 범인일지라도 법에 따라 처리해야합니다. 당장 보복살인을 멈추십시오.”

분노한 사람은 멈추지 않고 범인을 마구 때리고 나서 바로 체포, 구속됩니다. 죽어가는 범인을 치료해야하는 의사는 범인이 끔찍하게 희생시킨 처녀의 아버지입니다. 딸의 아버지는 죽어가는 범인을 보면서 화가 치밀어 오릅니다. “내 딸은 지금 너보다 더 고통스럽고 무서워했을 것이다!” 더욱 더 고통스럽게 하고 싶었습니다. 더욱 처참하게 죽이고 싶었습니다. 이때 꼰대는 말합니다. “의사는 딸을 죽인 범인일지라도 정성으로 치료해줘야 한다.” 의사도 알고 있습니다. 의사는 환자가 고통스럽지 않게 주사를 놓고, 밤새워 수술을 해서 목숨을 살립니다.

전쟁터에서 아군의 부상자를 치료하던 의사에게 적진의 병사가 총에 맞아 실려 옵니다. 위독한 상황입니다. 의사는 적군의 병사라도 치료해야합니다. 적군을 치료했다는 이유로 비난을 받고 매장을 당하더라도 의사는 치료해야합니다. 그런데 의사가 가벼운 상처를 입은 적장을 치료하다가 고의로 죽였다면? 의사는 적일지라도 치료해야 한다던 꼰대 이렇게 말합니다. “참 잘했어요!” 이때 의사는 의사이기 전에 이 나라 국민이고 애국전사이기 때문입니다.   

 

연기라는 전문 기술자, 배우는 벗는 연기라도 마다하지 말고 해야 합니다. 흉악범일지라도 응급처치가 필요하다면 의사는 치료해야 하는 것처럼, 대통령의 아들일지라도 혐의가 보이면 경찰은 수사해야 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다만, 의사이기 전에 한 나라의 시민이고 전사이고 애국자라면 마땅히 적장을 처단해야 하고, 배우이기 전에 음란물에 노출되어 상처받는 영혼을 생각하는 여자라면 연기를 필요로 하는 갈급한 자가 애걸복걸을 하더라도 자신의 미래와 이미지에 흠집이 될 것이라 여겨지면 음란물을 거부할 것이 아니라 막아야합니다.

적일지라도 치료해 줘야 한다던 꼰대가 우리의 나라를 위태롭게 하는 적장을 죽였다고, “의사가 그럼 못쓰네!”라고 하겠습니까? 말이 완전히 달라집니다. “애국전사여! 훌륭했어!” 이렇게 말입니다. 배우는 벗는 연기일지라도 자신의 연기를 필요로 하는 영화라면 해야 한다고 말하던 꼰대가, “음란물로 상처받는 대중을 생각하고 피해자들을 생각해 저질 동영상을 훔쳐가지고 폐기했습니다. 남의 재산을 훔쳐 폐기했다고 고소한다고 난리를 치네요.” 고 말하면 꼰대가, “배우가 도둑질까지 하면서 작품을 없애면 못쓰네!” 이렇게 하겠습니까? “아주 잘했어. 네가 안 하면 내가 하려고 했어.” 하면서 할 수만 있다면 징역도 대신 살아줄 것입니다.

 

자신의 치료, 수사, 연기가 필요로 하는 사람에게는 프로라면 헌신적으로 해줘야합니다.

내 딸을 죽이고 내 나라를 쳐들어온 적일지라도 나의 치료가 필요한 사람은 치료해 줘야합니다. 내가 치료하지 않으면 적군일지라도 고통스럽게 죽어가야 합니다. 지금 이 환자에게는 의사인 나의 치료가 필요합니다.

청소부의 딸이 피해자일지라도 나의 승진을 포기하고 고위간부의 천재아들을 체포해야합니다. 청소부는 딸의 억울한 죽음에 한이 맺혀 있습니다. 한을 풀어줄 사람은 이 청소부에게 지금 나 밖에 없습니다.

19금 영화를 제작하는 필름메이커에게 벗는 연기를 내가 해야만 한다면 해줘야 합니다.

 

의사가 적장을 살려 보냈다면 의사가 아니라 반역자입니다. 경찰이 청소부의 한을 외면하고 간부의 아들을 봐 주면서 승진을 했다면 경찰이 아니라 범죄자입니다. 배우가 필름메이커의 영화를 외면하고 불법적인 장사꾼들의 음란영상물에 출연한다면 배우가 아닙니다. 영화와 야동은 다릅니다. 남들이 다 영화라고 해도 나에게는 야동일 수밖에 없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의사, 형사, 배우는 지망생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프로 전문 의사, 형사, 배우입니다. 프로는, “의사는 적군이라도 치료한다! 청소부의 딸을 살해한 용의자가 고위간부, 대통령의 아들일지라도 수사해한다! 배우는 벗는 연기라고 못하겠다면 안 된다!”는 말을, “의사는 적군을 반드시 치료해야 의사다! 경찰은 대통령의 아들을 수사해야만 경찰이다! 배우는 벗는 연기를 해야 배우다!”로 이해하지 않을 것입니다.

프로는 역시 프로이어야 합니다.   

 

19금 영화도 야동이 아니라 영화라면 영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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