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정말정말 오랜만에 들어오는 필커입니다.
몇년 전에도 오랜만에 들러보는 필커에 대한 새로운 감회를 글로 몇자 남겨보았었는데요.
그마저도 벌써 약 2년 전인 거 같군요.... ㅋㅋ
약 10년 전에 예술을 해보겠답시고 필커도 들락날락 하면서 선배님들이 나눠주시는 깨알같은 정보들을
주워담아보기도 하고, 또 가끔은 주제 넘게 자작 시나리오 게시판에 피드백을 남겨보기도 했었습니다.
기억하실지 모르겠지만 2016년도 즈음에 활발하게 실험 영화에 대한 글을 연재하곤 했었습니다...
여하간 저는 그 이후로 현대 예술을 공부했고, 대학 4학년 때 우연찮게 희곡 시나리오로 상을 타 등단도 하였고
활발하게 공연도 이어나갔었습니다.
비록 지금은 건강 탓에 예술을 그만두고 전혀 다른 일을 하고 있지만
가끔 열정과 호기심 하나만으로 살아가던, 좋은 작품 한편 보고 나면 하루종일 짜릿했었던.
작품 감상을 일처럼 했던 그 때가 그립기도 합니다.
그래서 10여년 전의 저처럼 혼자서 창작을 이어나가시는 내일의 예술가분들을 위해서
시나리오, 희곡을 재미있게 쓰는 법에 대해서 몇자 남겨보려고 합니다.
제목은 '대본 재미있게 쓰는 법'입니다.
제목처럼 재미있는 대본을 쓰는 법일 수도 혹은
대본을 게임처럼 재미있게 쓰는 법일 수도 있습니다 ㅋㅋ
여러모로 부족한 글일 수도 있겠지만 재미있게 읽어주시길 바랍니다 ㅎㅎ
블로그에 연재했던 글을 재연재하는 탓에 여러모로 오류나 시기적으로 맞지 않는 부분이 있을 수 있습니다..
양해 부탁드려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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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우지간 이제 본격적으로 극적인 글을 쓰는 법 두번째를 이야기 하도록 하겠습니다.
시나리오와 희곡을 통틀어 극본이란 완벽히 '물리적인' 글입니다.
이는 소설이나 시와 완벽히 구분되는 지점입니다.
극본은 소설이나 시와 달리 인간의 '의식'을 나타낼 수 없습니다.
무대 위의 배우나 카메라 앞의 연기자는 생각하는 척은 할 수 있어도 생각을 보여주지는 못합니다.
나레이션이나 방백 혹은 독백을 통해서 생각을 드러낼 수는 있지만
이는 어찌 되었든 연기자의 목소리이지 생각 그 자체는 아닙니다.
또한 희곡과 시나리오에서 서술되는 모든 글들은 시각적으로 치환 가능해야만 합니다.
구체적이지 않아도 성립할 수 있는 소설과 시의 묘사와 달리 상당히 제약적이죠.
간혹 어떤 이들은 이를 잘 이해하지 못하기도 합니다. 한가지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밝은 어둠이 사납게 잠자고 있다."
"부드러운 직각이 시끄럽게 귀를 막는다."
이 두 문장은 시나 소설에선 가능한 서술이자 묘사입니다.
하지만 영화나 연극에서는 이를 시각화하기 어려울 뿐더러
설령 가능하다고 하더라도 연출자의 각색이 불가피합니다.
그러므로 희곡과 시나리오를 쓰기 시작한 분들이라면 반드시
이들은 물리적 제약이 있는 글이라는 것을 상기하며 써야 합니다.
후술할 이야기는 우선 희곡을 기반으로 설명하겠습니다.
첫번째, 장소 이동은 최소한으로 하세요. 장소 이동이 없으면 없을 수록 좋습니다.
간혹 글을 쓰는 초보자들은 이런 실수를 합니다. 한가지 예를 들겠습니다.
아주 오랜 죽마고우가 있습니다. 주인공은 이 친구를 자주 만나 시간을 때우곤 했는데
어는 날 이 친구가 평소와 같이 시내에서 나들이를 하다가 저녁을 다 먹고는
자신에게 빌린 시간들을 갚으라고 합니다. 그 동안 네가 나와 논 것은
나의 시간을 차용한 것이니 그동안의 모든 시간들을 갚으라는 것입니다.
대충 이런 스토리가 있다고 칩시다. 초보자들은 이 짦은 줄거리를 극본으로 쓰기 위해서
이 친구가 죽마고우라는 것을 알리기 위한 여러 장면들, 아침에 만나는 장면
점심을 먹는 장면, 노래방이나 당구장을 가는 장면, 혹은 죽마고우라는 것을 알리기 위해
저녁에 소주 한잔을 마시고 빈 공터에서 고민 상담을 하는 장면까지 넣습니다. 그리고는
본론인 차용한 시간에 대한 상환을 요구하는 장면을 마지막에 넣습니다.
또는 글을 조금 써본 이들이라면 이 모든 것을 대사에 우겨 넣는 실수를 합니다.
가령 예를 들어
"참 우리가 함꼐 했던 시간들이 얼마니?" "한 십오년 됐지" "우리도 친구로 지낸지 오래됐네'
이런 식으로 말입니다. 이는 종종 등단을 한 신인 작가들도 자주 범하는 실수 입니다.
이런 거추장스러운 것들은 다 제하세요. 이런 것들을 없어진다고 분량이 줄어들지 않습니다.
바로 본격적인 상황으로 들어가세요. 이런 줄거리라면 곧바로 "너 내 시간 갚아"라는 식의 대사로
시작해도 좋습니다.
대사의 힘은 여러분들이 상상하는 것보다 강해서
이 한마디 만으로도 연극의 주된 상황이나 컨셉이 드러납니다.
둘째 말하려 하지 말고 보여주세요.
이는 사실 극본보다는 소설에서 많이들 실수하는 부분입니다.
종종 '소설을 쓰는데 동화같이 전개가 되어요.' 라고 말들을 많이 합니다.
이게 무슨 말이냐 하면, 가령
영희가 슈퍼에 가서 대파를 사오다가 이십년 전 잃어버린 반지를 발견한다는 줄거리가 있다 칩시다.
그런데 이러한 줄거리를 특정한 상황이나 장면이 아닌
정말 줄거리처럼 서술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영희가 슈퍼에 갔다. 대파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러다 오는 길에 반지를 주웠다. 이십년전 잃어버린 반지다.
이런 식으로 말입니다.
이렇게 되면 더 이상 쓸 이야기가 없으니 말도 안되는 묘사들만 휘황찬란하게 합니다.
대파의 색깔이 영희의 안색이라느니, 저벅거리는 발소리가 어떻다느니와 같이 말입니다.
이럴 땐 차라리 길거리에서 떨어진 반지를 유심히 바라보는 영희의 모습을 그러주는게
더 나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면 이게 왜 여기에 있지? 정말 그 반지가 맞나?
그런데 이십년간 어디에 가 있다가 왜 뜬금 없이 이 길바닥에 있는 것이지?와 같이
서사의 핵심적인 내용으로 전개될 수 있는 질문들을 가감없이 보여줄 수 있죠.
슈퍼에 갔다느니 대파가 필요하다느니 이런 실질적으로 불필요한 설명들을 전부 제거하고 말입니다.
이 두가지만 잘 기억하여 첫 장면을 짜기만 해도
다음 이야기로 전개시켜 나갈 때 거추장스러운 묘사나 장면 반복 없이
정말 필요한 이야기들을 중심으로 깔끔하게 전개시켜나갈 수 있습니다.
오늘의 설명은 여기서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다음에는 장면 전개의 기술에 대해서 이야기하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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