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게시판
13,812 개

소소하게 수다나 떨자는 곳입니다. 무슨 얘기든지 좋습니다.
아무거나 한마디씩 남겨주세요.(광고만 아니라면).

<너스 베티>와 <푸른 안개>

vincent
2001년 06월 01일 01시 29분 34초 5447 7

며칠 전 송승환이 진행하는 시사난타에서 드라마 <푸른 안개>를 놓고
'당신이 윤성재(이경영)라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라는 질문을 던진 적이 있다.
제법 전문가 연하는 패널들과 어린 아가씨에게 끌려 인생이 송두리째 흔들린
중년 남자를 연기했던 이경영과 그 부인 역을 맡았던 김미숙이 나왔다.
처음에, 그들은 제법 담담하게 논의를 시작했으나, 점차 배웠다는 그들도
어쩔 수 없는 것인지 드라마 속 한 인물의 편이 되다가 급기야는 자기 얘기처럼
각자의 입장을 옹호하느라 법썩을 떨었다.
압권이었던 것은 막판에 걸려온 두 통의 시청자 전화였는데,
첫번째 남자는 자기 얘기는 아니라고 시작했다가 점차 모두에게 그 자신도
한 번쯤 바람(?)의 전력이 있었을거라는 강한 심증을 남긴 채 통화를 마감했고,
두번째 남자는 비슷한 경험이 있었고, 지금은 이혼했다며 윤성재와 비슷한
입장이라는걸 시인하다가 급기야 드라마속 윤성재의 얘기를 꺼낼 때마다
'내가..."라고 말머리를 꺼내는, 현실의 자신과 드라마속 설득력 있는 윤성재를
혼동하고 있다는 불안감을 던져준 채 시간이 허락하지 않아서 통화가 끊겼다.

자신들이 모두 드라마속 윤성재처럼 불쌍한 굴레를 짊어지고 사는거라고
착각하는 남자들 때문에 나는, 시종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
드라마에서 악역을 맡은 연기자를 길에서 만나면 욕하고 흘겨보고 심지어
한 대 치고 도망간다는 아줌마들을 보며,
"하여간 유치해. 드라마는 드라마지 그걸 갖고..." 이렇게 이죽였던
멀쩡한 남자들이 대신 그 자리에 앉는 순간이었다.
드라마 속 윤성재와 자신의 환경이 절대 등치될 수 없는데도
남자들이 그 인물과 자신을 동일시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결국은 욕망의 문제가 아닐까.
드라마 속에서 직접적으로 욕망하는 대상을 점 찍고 그에게 매달리는 것보다
드라마 속에서 자기 욕망의 적절한 변명거리를 찾아내는데 성공했으므로
그들의 '동화'는 다소 불순해보인다.
이런 불순함은 송승환의 시사난타 중간에 끼어든 포장마차 토크에서
결정적으로 드러나는데 그들의 모든 남자를 볼모로 가장 크게 얘기하는 지점은
중년남성의 가족과 사회에서의 위치에서 오는 압박감이나 아픔이 아니라
대다수가 그런 상황에서 그런 아리땁고 어린 여자가 다가오면 넘어갈거라는 얘기였다.
그러니... 결국... 핵심은 윤성재의 환경이 아니라 윤성재에게 다가온 여자였던 것이다.

그런 사람들에 비해 드라마와 현실을 착각해서 무모한 도정에 나서는
우리의 베티(르네 젤뤼거)는 바보스럽지만 차라리 순수하다.
그녀는 드라마에 미칠 수 밖에 없는 한심하고 갑갑한 현실에서 출발해서
드라마속 주인공과 촬영지가 있는, (게다가 실제로) 드라마안으로 들어와서야
진짜 현실과 맞닥뜨릴 기회를 얻게 된다.
그녀는 드라마속 욕망에 전염되기 보다는 드라마속에서 빠져 나와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그래서, 풋풋한 르네 젤뤼거의 미소는, 사랑스럽다.
보편적 소재에서 출발했으나 비범하게 꼬아가는 뛰어난 각본도
그녀의 미소만큼이나 사랑스럽다.
작년 칸느영화제 각본상 수상.

추신. 별점 매기기는 피하고 싶다.
별 몇 개로 영화의 감흥을 나눌 수 있다는건,
내겐 거의 불가능한 일처럼 보인다.

글 등록 순으로 정렬되었습니다 글쓴이 날짜 조회
공지
대상이 특정되는 비방,폭로 등의 글은 삭제합니다 10
새글 소속감에 대하여 TOCOSMOS 2024.08.20 2019
새글 연극배우 서형윤이 직접 집필한 사극 소설 연모의 검 형윤 2024.08.20 4982
부산 웹드라마 크루 ‘ 우아 스튜디오 ’ 에서 웹드라마 '그대는 괜찮으세요? ’ 태네코디 2024.08.19 7926
전문스타일리스의생활전략 72-자작한 의상차,분장차로 손수만든 한복으로 분장까지 4박5일 문 의상차분장차소유한복부터캐리터의상까지자체제작일본어가능한비쥬얼아트디렉터 2024.08.18 13278
패러디로 구독자 헌정영상 만들어 보았습니닼ㅋㅋㅋㅋㅋㅋㅋ (엄근진) 금금 2024.08.16 29369
의정부에서 영상 관련 수다떠는 무료 행사가 있는데 같이 하실 분? 댕이 2024.08.15 32238
서울 자취지역 질문드립니다.. 2 SUVI 2024.08.15 38382
영화 사운드 믹싱 구인합니다. 6 새모 2024.08.14 38419
단편영화 제작캠프 참가자 분들을 모집합니다! 씨네프렌즈 2024.08.14 38436
컬러스페이스 xyz topgun123 2024.08.14 39769
대학원 연출전공 포트폴리오 촬영카메라 2 여여 2024.08.14 41773
캐스팅 디렉터에게 갑질을 당한 경험 있으신 분들 빠른발 2024.08.14 41670
연기 학원들은 어떤가요 ? 3 주석훈 2024.08.14 44704
예술을 하는 모든 사람들을 돕고자 합니다. Artn7 2024.08.13 45524
메인플러스 캐스팅 제의 10 으하학 2024.08.13 46123
안녕하세요. 액팅 클라우드 팀입니다. 빠른발 2024.08.13 46903
앵무새 모델(?)은 어디에서 구해야 하는지 아시는분 계신가요? 에이웍스 2024.08.13 50883
극단모집 오디션 공고는 어디서 볼 수 있을까요..? 2 영팔이 2024.08.12 53332
제발 읽어주세요 그리고 조심하세요..!! (특히 여성분들!!) lookaram00 2024.08.12 54279
광고나 뮤직비디오 프로덕션에서 조감독 생활을 하려면 어떻게 해야하나요?? 뎌니 2024.08.12 53295
1 / 691
다음
게시판 설정 정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