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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왠지... 나를 숨기고 싶다면...

이제 한봉우리를 넘었습니다. 아래 10년동안 연기한배우의 잠못이루는 밤을 쓴 사람입니다.

2009년 08월 14일 03시 06분 06초 1915 2
먼저 오랜만에 글을 적으니 기분이 새롭습니다. 200분이 넘는 분들이 제 작은 글을 읽어 주셔서 너무나 송구하고 감사할 따름입니다. 어제로 우유 배달하는 일을 그만 두게 되었습니다. 사실 그렇습니다. 배우라는 직업을 가지고 정규직엘
취업해서 일을 한다는 것은 실상 매우 힘든 일이지요.. 그렇다고 나이를 먹고 서빙이나 뭐 그런 아르바이트를 하기도 참으로 어렵다는 걸 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아무도 안보이고 혼자 생각할 시간도 많은 일이 뭘까 하던 끝에 집 밖에 보이는 우유배달집을 찾게 된거고...
그리고 참으로 행복한 마음이 들더군요.. 작은 우유하나를 배달하는 일이지만 사람들은 그걸 기대하고 있겠지...

말머리가 길었습니다. 연기도 또한 그렇습니다. 그 연기에 맛들린(우유처럼) 사람들은 다시금 그걸 맛보길 원하고 기대하게 됩니다. 몇일 전 처음으로 매니지먼트 오디션이란걸 보게 됐습니다. 그 곳에 가서 전 참 재밌는 경험을 했습니다.

전 처음 들어가는 순간부터 생각했습니다. 겸손하자. 오로지 딱 하나였습니다.

하지만 그곳엔 예전의 저와 몇 달전의 저와 연기를 처음 시작했던 저와 마주칠 수 있었습니다. 긴장하고 있는 나. 긴장하지 않는 척하는 나, 거만했던 나. 괜히 거들먹거렸던 나... 수 많은 나와 마주치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편하다... 이제서야 이걸 보는구나... 이제서야 정말 연기를 조금은 이해 하는구나. 생각 했습니다. 이 안에서 내가 최고다하는 생각이 아니고 이 안에서 가장 나 다운 사람으로 기억되자. 가면같은거 다 집어 던지고 호주머니에 돈 천원이 없어서 버스비를 빌린다고 생각 했습니다.................

친구들이며 후배며 잘풀린 분들이 많습니다. 매니지먼트를 좀 더 어렸을때 생각할껄 그랬나 하는 욕심도 조금은 들었습니다. 하지만 준비가 안되 있는데 그것을 보는 또한 무슨 의미가 있으며 무슨 가치가 있을까 하는 못난 마음이 컸습니다.

준비... 준비... 과연 무엇이 준비인가... 어느 덧 제가 겪은 고생과 삶 속에 치열함이 그곳에 조심스럽게 자리 잡아져 있었나 봅니다. 그렇게 준비라는건 그냥 묵묵히 세상을 살며 쌓아가는건가 봅니다.

오늘 전 한 통의 전활 받았습니다.

연극 오디션에서 처음으로 주인공을 맡았을때처럼 행복한 그런 전화였습니다. 메이져급 회사는 아닙니다만 제가 메이져급 배우가 아니듯이 그렇게 내가 해온 지난 연기를 돌이켜보자 싶어 본 오디션에 합격을 했습니다.

아... 이게 성취구나... 내가 연기라는 것을 가볍게 하지 않았구나... 기뻤습니다. 한참을... 그렇게 기뻐했습니다.

모모씨 정말 연기 너무나 잘 봤습니다. 이러이러하니까 내일까지 어디로 와주십시요.. 계약은 어떻게 되고 주저리주저리.....

전 단 하납니다. 오로지... 연기를 참 잘하시네요. 그게 절 눈물 흘리도록 감사하게 만들어주었습니다.

같이 영화 시나리오 작업을 같이 했던 감독님이 이번에 정말 미안하게 됐는데 제작사쪽이랑 주인공 기획사 쪽에서

너무 미는 바람에.. 미안하게 됐다.....

서운 했습니다.

3차까지 됐는데 아.. 어쩌냐 기획사에서 밀어서.. 힘들꺼 같다...

전 참으로 그 소릴 많이 들었습니다.

연기도 못하는 것들이.. 하면서 욕도 많이 했지요.. 소주를 마시면서... 근데 그게 끝이라는 겁니다.

그리고는 다음날 일어나면 해장을 하기 위해 라면을 먹어야하는게 현실이라는 겁니다.

매니지먼트에 그 전활 받고 그래서 전.. 축하주하자는 친구의 말에 미안하다고 얘길 했습니다.

아직 ... 아직은... 우유를 배달해야 할 집이 많습니다. 그러기 위해선... 술 정신으론 힘이 듭니다.

이 글이 또 몇 분에게 읽혀질런지 모르겠지만.. 조심스레 긴 장문의 글을 적습니다.

준비하고 있으십니까?
2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anonymous
글쓴이
2009.08.14 14:20
글..잘 읽어 보았습니다.. 가슴이 뜨끔뜨끔하네요.. 연기를 배우지도 않고.. 맨땅에 해딩만 하고 있는 저로서는.. 이것도 경험이랄까.. 연기의 한 부분이랄까.. 아니면 도를 닦는 고행과도 같은 것이랄까.. 아직 판단이 서질 않네요..연기자가 되려면..
연기를 배워야 함에도 불구하고.. 저는.. 마음약한 핑계들로 위로만 하였네요..
먼저 한참 더..멀리가신.. 님의 글에서 많은것을 마음으로 느끼고 반성하고.. 생각하게 만드네요..
언젠가.. 만나 뵙길..원합니다.. 힘내세요..
anonymous
글쓴이
2009.08.14 16:18
감히 준비라는 것에 대한 저의 생각을 조금 적어봅니다. 하루에 한 편의 영화나 만화나 소설책을 읽거나 보십시요.
그리고 아무 오디션이라도 좋습니다. 찾아보십시요. 그리고 꼭 하루에 한번 일기를 쓰십시요... 자신에 대해 조금은 알아 갈 수 있을껍니다. 앎이 커질수록 자신감이 커지는 법입니다. 자신감이 커질수록 자신의 원하는 연기를 언제든 뽑아 낼 수 있는 겁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한가지를 적습니다. 꼭 하루에 한방울이라도 땀을 내십시요.. 작은 방청소라도 좋습니다. 배우라는 것은 삶속에서 우러나오는 거라 감히 생각합니다. 모두 힘내시고 제가 더 높은 산을 오르게 되면 그 때 또 작은 경험을 올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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