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개월이 지나고 나서야... 이 세상 모든 분들께 고함니다.
여러분께 묻고 싶습니다.
이럴 땐 어떻게 해야 하는지 너무도 가슴이 아파 글을 올립니다.
만약에 연예인에게 감금당해 구타를 당했다면 여러분은 어떠실지...
지금부터 그때 상황을 적어보겠습니다.
한국이었다면 온 가족이 모여 만두를 만들고 있을수도 있었겠죠.
이 모든 것이 꿈이길 기원하면서 지난 악몽을 되새겨 봅니다.
이런 영화같고 소설같은 실화를 많은 사람에게 알려주시고 좋은 조언 부탁 드립니다. 병중에서 써 놓은 글입니다.
2004년1월19일 중국 상해로 영화 촬영을 떠났다.
제 직책은 중국프로듀서였습니다.
“남방산성” 이라는 호텔에 영화스텝들의 숙소로 정하였습니다.
상해에 먼저 도착한 스텝들은 촬영 준비하기에 바쁘게 생활 해갔습니다.
하루하루를 촬영을 위해 모두가 긴장하며 촬영을 기다리며 준비하고 있었다.
스텝들 모두가..
주연배우인 유씨와 매니져는 2004년 1월22일 날 상해로 도착했다.
그날 저녁부터 숙소에 함께 머물게 되었는데 첫날밤은
그냥 무난히 지나갔다. 2004년 1월23일 am 10시30분경 유씨
매니져가 1009호인 내방으로 찾아왔다.
스위트룸 2개 준비해 달라고 했다. 그래서 난 지금은 준비가 안 되었으니 지금은 그냥 써달라고 부탁했다.
상부에서도 호텔이 안 좋으니까 우선 그냥 쓰게 하라고 했다.
유씨 매니져가 궁시렁 거리며 내려갔다. 그리고는 바로 유씨가
10층 라인으로 들어왔다.
내 방 앞에서 스텝들과 얘기를 나누고 있는데 다짜고짜 다가오더니
복도에서 내 따귀를 갈기기 시작했다.
한대 두 대 세대를 때릴 동안 주위에 사람들은 아무도 말리지 못했다.
유씨가 내 멱살을 잡고 내 방문을 열라고 했다.
난 그래도 유씨가 연배이고 공인이니까 좋게 얘기 할줄 알고 순순히 응했다. 난 스텝이나 누군가 따라 오겠지 생각하며 문을 열었다.
문이 열리는 순간 유씨는 내 머리채를 잡고 끌고 들어가며 문을 닫았다.
그때부터 나의 악몽은 시작되었다. 지금부터 그 야만인 유씨는
내게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을 저지르기 시작했다.
머리채를 잡고 끌고 들어가면서 얼굴을 구타하기 시작했다.
약 먹은 것처럼 반쯤감긴 눈에 내게 달려드는 그는 인간이 아니었다.
미친 개 같았다. 이런걸 보고 개라고 하는구나 생각했다.
이성을 잃은 유씨에겐 난 단지 복싱 체육관에 샌드백인 것처럼
두둘겨 맞았고, 짓 밟히기 시작했다.
힘없이 무너지는 내게 유씨는 더욱 거칠게 날 짓밟고
정신치료를 받고 있는걸 알면서도 내 머리를 발로 찍고 강타했다.
허리를 잘못 맞아서 허리를 부여잡고 숨조차 잘 쉬지 못하는
내게 유씨는 비웃으며 아픈 곳을 더 때리는 것이었다.
허벅지를 강타당해 다리를 절면 그곳을 더 차고 밟고,
꾀병 피우지 말라면서 비웃으며 유씨의 악행은 더해갔다.
유씨왈 : 나 운동 좀 했거든 챔피온 봤지.. 정말 또라이 같았다. 급소를 맞아 숨도 잘 못 쉬며 난 유씨에게 절규했지만 그는 전혀 개의치 않았습니다.
일부러 아픈 곳만 더 골라서 때리는 그가 너무도 죽이도록 싫었다.
그리고는 침대에 앉아 나를 무릎 꿃게 하고는
유씨는 자기를 똑 바로 쳐다보라고 했다.
자기 눈을 똑바로 보라면서 따귀를 때렸다.
난 그가 인간이길 바랬다. 하지만, 유씨는 날 더욱 비참하게 하였다.
난 유씨의 돌아간 눈빛을 보며 또 다시 공포에 떨어야 했다..
유씨가 이번엔 잠바를 벗으라고 했다.
잠바 입으면 안 아프다면서 벗기며 때렸다. 가슴을 때렸다.
영화 전부터 그는 나뿐아니라 회사 직원들을 공포에 떨게 했었다.
유씨왈 : 나 이제 영화 진짜로 촬영하거든 이제 진짜촬영한다고..
(그럼 촬영안하려고했었나..!??) 유씨왈 : 그리고 나 A급 배우거든..
(이게 대한민국의 영화A급배우의 참상인가? 난 단지 유씨 혼자 생각일 꺼라 생각한다. 우리나라 배우들 중에 인간성 좋으신 분들이 얼마나 많은데..)
한다면서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며 날 계속해서 짓 밟았다.
아직 점심시간 전이니까 점심시간 까지만 맞아라하면서
유씨는 계속해서 때렸다. 유씨는 날 때리다 손바닥이
내 이빨에 맞아서 찢어졌다. 피를 보더니 더 흥분해서
그는 더욱 거칠게 개 패듯이 나를 구타했다. 피가 사방으로 튀었다.
난 문 쪽으로 밀리며 계속해서 맞았다. TV, 물컵,
화장품등 난 소리 나는 건 맞아 가면서 일부러 밀치며 다녔다.
누군가 들어오길 학수고대하면서... 그러나 아무도 들어오지 않았다..
난 계속해서 이리저리 방안에서 맞으며 끌려 다녔다. 이리저리 날 구타하던 유씨는 조심하라며 외치고는 방을 나갔다. 난 쓰러져있었다. 고개를 들고 방문 쪽을 보았다. 유씨 매니져도 있었고 스텝들도 있었다. 난 그 자리가 싫었다. 그냥 벗어나고 싶었다.
난 여권을 가지고 다리를 절며 복도로 나갔다. 유씨 앞에선 억울해도 참았던 눈물이 복도에 가만히 서있는 스텝들을 보니 복받쳐 눈물 쏟아졌다. 내 자신이 너무도 비참해 보였다. 이 영화 안한다면서.... 다들 너무한다고 어떻게 안 들어 올수 있냐고... 유씨 앞에서 울지 않았지만... 복도에 있는 사람들을 보며 너무도 분통했다..
감금당해서 매 맡고 있는걸 알면서도..... 어떻게 아무도 안 들어 올 수 있는지.. 기가 막힌 노릇이었다. 아픈 다리를 절며 겨우겨우 걸었다. 난 엘리베이터를 탈수도 없었다. 유씨와 마주 칠 가봐서 10층에서 다리를 절며 8층까지 간신히 내려가다 도저히 아파서 화물엘리베이터를 타고 주차장까지 내려갔다.
주차장에 앉아있는데 너무도 서글펐다. 내가 왜 그에게 아픔을 당해야하는지 이런 굴욕을 받아야하는지... 너무도 억울했다. 난 영화 때문에 영화를 잘 만들고자 참고 참았지만 이젠 더 이상 참지 못할 거 같다. 낯선 중국에서 몸도 안 좋은 상황에서 혼자선 도저히 병원을 가지 못했다.
난 통역사한테 전화했다. 그리고는 가까운 병원으로 가달라고 부탁했다. 그리고 병원을 3군데나 옮겨가며 치료를 받았다. 병원을 옮기던 중머리가 너무 아파 구토를 했다. 옆에 있던 중국통역사가 사진을 찍었다. 핏 덩어리가 나왔다. 혹시 몰라서 사진을 찍어놓았다. (아직 받지 못하고 있음. 사무실에서아직 주지 않고 있음) 그리고 병원에 입원했다.
내일이 구정인데 병원에서 무엇을 하는 건지. 너무도 서글프다.
한국으로 돌아간다면 그를 반듯이 사회에 고하고 처벌을 달게 받게 하겠다. 내가 중국병원에서 이렇게 글을 남기는 건 지금 내 몸이 너무 아프고 머리를 다쳐서 글을 남기는 중이다. 의사선생님 말씀으론 머릿속에 피가 덩어리 졌다고 한다. 만약에 잘못되어 기억이 지워지면 안될것 같아 이렇게 글을 남긴다.
설마 죽지는 않겠지만 너무 두렵다. 머리, 허리, 다리, 목, 몸 구석구석이 너무 아프다. 난 그를 용서 할 수없다. 유씨 그는 미친개다. 감독님도 그를 가만 안둔다고 했다. 걱정 말고 치료 잘 받고 있으라고 했다. 빨리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다.
어머니가 보고 싶다. 어머님 사랑합니다. 보고싶은 가족들.... 부디 아무일 없이 깨어나길빌며.. - 막내 - 2004 년 1월 24일 am 1시 25분에.. 이상 입니다. 이 사건 이후가 더 황당하고 기가막힌 사연이 많답니다.
타자가 늦어서 곧 정리해서 올리겠습니다.
이글을 읽으시는 분은 더 많은 곳에 알려 주세요.
부탁 드립니다. 병원으로 감독님이 찾아왔습니다.
유씨를 용서 못한다고 하더군요. 저도 용서 못한다고 했습니다.
일단 치료 잘 받으며 기다리라고 하더군요. 스텝3명이 병문안을 왔습니다.
그중 한명이 다행이도 병원에서 사진을 한 장 찍어주었어요.
카메라폰으로.. (곧 보여드릴 사진이지만 화소가 낮아서 화면이
그다지 좋지 않음) 머리에 핏덩어리가 있어서
그것을 녹여야한다고 병원에서 항생제를 계속 맞아야했습니다.
다리는 물리 치료를 계속 받고 휠체어를 타고 다니고 정말이지 밥도 못 먹게하고 구정인 새해부터 계속해서 굶어야만 했어요.
정말 내가 왜 이러고 있어야하는지..
감독님이 오시더니 낼부터 촬영을 한다고 했습니다.
일단 촬영을 끝내고 구속 시켜준다고 약속을 했습니다.
전 고생해서 중국까지 온 스텝들 중국스텝들 촬영을 위해
고생한 많은 사람들을 생각을 해보니 영화는 찍어야 할 거 같았습니다.
누구 한 사람 때문에라기보다 감독님 말을 믿었습니다.
집에서 전화가 왔다. 집으로 가자들한테 전화가 오고 찾아오고 한다면서 어떻게 하냐며 부들부들 떠시는 어머님 목소리를 들으며 안정을 시켜 드렸다. 감독님이 기다려 달라고 했다고 알아서 해주신다고..
그래서 집에선 아무 일도 아니다 그런 일 없었다 돌아가라면서
기자님들을 돌려보내 셨다고 한다.
벌벌 떠는 어머니목소리 우리가 무슨 죄인인 것처럼 더 떨고
계시는 어머님을 생각하니 분노가 밀어 닥친다.
그리고 다음날 어머님이 쓰러 지셨다고 한다.
일주일이 지나서야 촬영이 걱정되어 퇴원을 했다.
PD도 없이 촬영하는 것이 걱정이 되어 목발을 집고 촬영을 나갔다.
그 저주받을 사람과 마주치기 싫었지만 내 일을 위해 일한다
생각하고 묵묵히 유씨 비유를 마치며 일을 했다.
2004년2월1일날 한국에 돌아왔습니다.
집에서 부모님이 너무도 걱정하시어서 한국에 귀국했습니다.
집에서는 당장 터트리자고 부모님께서 보채셨습니다.
하지만, 난 감독님을 믿고 부모님을 안심 시켜 드렸습니다.
혜민병원에 다시 가서 치료를 받고 진단서를 끊었습니다.
중국에서 치료를 잘 받아서 머리에 핏덩이는 녹아서 없어지고
많이 괜찮아 진거 같았습니다. 그래도 머리는 괜찮았지만 허리와 다리가 아파 진료를 받고 진단서를 끈었습니다. 병명은 흉벽좌상, 요추염좌, 다발성타박상등의 진단을 받고 집으로 돌아와 치료를 계속 받았습니다.
밤이면 공포에 떨며 잠조차 제대로 이루지 못해 정신과에서 처방해준 수면제를 먹고 잠들곤 해야 했습니다. 그나마 저는 젊고 건강한데다 체질상 상처가 빨리 아무는 체질이라 조금 괜찮아 진거 같아 다시 촬영을 위해 중국으로 갔습니다. 또, 유씨와 마주쳐야 했습니다.
그때처럼 아무도 안도와주면 어쩌나하고 불안에 떨며 하루하루를 보냈습니다. 혹시 모를 사고를 위해 회사에선 대표이사가 와서 있었고 본부장도 와서 곁에 있어주었습니다. 그 후로도 난 불안해서 약을 먹고 잠들어야 했습니다.
그 사건후로 유씨 매니져는 한국으로 돌아갔고 유씨는 예전과는 달리 조금 변해 있었습니다.
촬영장에서 항상 불안에 떨어야했던걸 유씨는 모를 겁니다.
중국 촬영을 마치고 한국에 돌아왔습니다. 감독님이 다른 제안을 했습니다.
영화 찍은거 개봉은 해야하지 않겠냐며 스크린 다 떨어지면
꼭 터트리게 해주겠다고 했습니다.
유씨 소속사가 쓴 각서, 병원에 입원하기 전에 병원 앞에서
머리를 많이 맞아 구토한 사진 얼굴 부은 사진 등등..
진단서 및 증인까지 서주기로 했다.
우리 어머니 형이 사무실에 오셨을 때도 약속을 했다.
난 그렇게 까지 생각해주는 감독님이 너무도 고마웠다.
한국보충 촬영도 열심히 잘 끝냈다. 계속해서 마주쳐야 하는
고통도 얼마 안 남았다 곧 개봉이다.
영화가 개봉을 했다 일단 난 그를 구속하기보다 영화가 잘되기를 기원했다 수많은 사람들과 스텝들 고생한 모든 사람을 위해서라도...
하지만 영화는 참패했다. 너무도 속상하다. 아쉬움을 뒤로 하고
이제 유씨 문제가 남았다. 개봉도 했고 스크린도 다 떨어졌는데
아무 말이 없다.. 내가 먼저 물어보았다 영화가 안 되어서 경황이 없 을수도 있다 생각했다. 유씨 얘기를 하니까 그래, 구속 시켜야지 했다. 조금 기다리라고 했다. 다음날 합의를 보면 어떻겠냐고 했다
난 솔직히 합의 볼 생각이 없다고 했다. 집에서 어머님 쓰러지시고 새해 엉망으로 지나가고 집은 쑥대밭이고 맞았을때 당한 수치, 수모 공포감 고통등 그 것을 돈으로 해결하기가 싫었다. 하지만, 유씨 그도 인간이기에 용서를 해줄까라는 생각도 했다. 일단 생각해 보기로 했다. 난 유씨와 유씨소속사에게 사과 받길 원했다. 나의 어머니 나 그리고 우리 가족에게 사과하길 바랬다.
그래서 난 용서할까라는 생각에 유씨 소속사에 전화를 했다.
하지만 소속사 측에선 적반하장으로 오히려 큰소리를 쳤다.
사과는커녕 내게 오히려 역정을 냈다.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
이게 도대체 어찌 된 일인가? 나 혼자 바보가 된 느낌이다.
유씨도 마찮가지다. 소속사에서 얘기를 하건 안하건 도리를 지킬 줄 알았는데 큰 기대는 안했지만 왠지 그가 가여워보였다. 말 한마디에 천 냥 빛을 갚는다 했거늘..
안타까웠다. 도대체가 왜 큰소리를 쳤는지 알 수가 없다.
그를 용서하고 싶지 않다. 너무 답답해 글을 올려 봅니다.
어찌 해야 하는지..
감독님은 아직도 기다리라고 한다. 답답하다. 이젠 더 이상 기다리기도 싫고 명분없는 약속도 싫다. 다음주면 그가 나오는 드라마가 끝난다. (장길산??아닌가?)
난 그전에 이 사실을 꼭 알리고 싶었다.
지금도 난 그가 너무도 무섭다..알고도 때리는 그가..
스트레스에 머리카락이 매일 한주먹씩 빠지고 어머님은 스트레스에 신경성에 풍이 오셔서 입이 돌아가려고 한다. 돌아 버릴거 같다. 어찌해야 하는지 이글을 읽으신 분들은 이글을 많이 알려 주시고요 좋은 조언 부탁 드립니다.
2004년 11월 13일날 새벽녘에.. 고통을 호소하는 대한민국 국민이..
작성자 : 검사 기자
출처 : http://www.pknews.net
오늘은 왠지... 나를 숨기고 싶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