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이 갓 지나 뇌성마비를 앓은 소녀가 있었다. 일곱 살 되던 해 죽음을 선고받고, 마지막으로 이번 생에서 ‘참회’의 절이나 실컷 해보고 죽자는 어머니의 손에 이끌려 성철스님을 찾았다. “살려거든 하루에 천배씩 하라”는 스님의 말씀에 따라, 소녀는 22년간 하루도 빠짐없이 1000배를 했다. 어느 순간 나무인형의 사지처럼 제각각 놀던 소녀의 팔다리는 제자리를 잡았고, 소녀는 번듯한 한국화가로 성장했다.
부처님의 가피(加被)를 적은 불교설화에 나옴직한 얘기로 들릴 수도 있다. 그런데 한국화가 한경혜(29·‘작가의 집’ 대표)씨는 생명을 건 ‘절(拜)수련’으로 장애를 극복하고, ‘대한민국 미술대전’ 특선 2회, 입선 5회의 당당한 한국화가로 자리잡았다. 요즘은 경남 진영에 있는 자신의 작업실이자 집인 ‘작가의 집’에서 외국인을 대상으로 한 한국문화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이 지역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그림을 가르치는가 하면, 경기도 과천에서도 그림공부방을 열고 있다. 지난 2월엔 인사동 통인화랑에서 ‘작가의 집 아이들 전시회’를 열었고, 최근 자신의 장애극복기를 적은 ‘오체투지’(반디미디어)란 책을 냈다. 몸이 두 세개라도 하기 힘든 일들을 척척 소화하며 세상과 거리낌 없이 만나고 있다.
불교신자라면 108배를 해본 독자가 적지않을 것이다. 숙련된 이들은 이 정도는 쉽게 하지만, 1000배로만 가도 상당한 체력과 인내심을 필요로 한다. 한씨는 ‘신이 허락해야 할 수 있다’는 ‘1만배 1백일 수련’도 세 번이나 했다. 하루에 1만배를 한다는 건 시간만 따져도 계산이 잘 안나온다. 온몸을 구푸려 양 다리와 팔꿈치, 이마를 바닥에 대었다가 다시 몸을 곧게 펴는 절 동작은 몸 전체의 근육과 뼈마디를 쓰는 것이다. 보통 단련된 운동선수라도 ‘절’을 하는 것은 다르다고 한다. 그만큼 체력적으로도 힘들지만 평안한 마음가짐이 따라가지 않으면 끝까지 하기가 어렵다.
9일 진영에 있는 한씨와 통화를 했다. ‘절’얘기부터 해보았다. 한씨는 ‘부처님 에어로빅’이라고 불렀다.
―보통 사람들에게 매일 1000배도 엄두가 안나지만, 1만배 1백일은 상상이 안되는데요.
“저는 어릴 때부터 해왔으니까 가능하죠. 그렇지만 누구나 1만배도 1년 정도 수련하면 할 수 있어요. 매일 108배씩 100일을 한 뒤, 그 탄력으로 매일 1000배씩 100일을 하고 곧바로 1만배를 하면 됩니다.”
―절은 하면 좋은 점이 뭡니까.
“우선 운동이 돼요. 그것도 헬스클럽을 다니는 것처럼 돈이 드는 운동이 아니에요. 장소도 반평이면 되니까 공간에 구애받을 일이 없죠. 또 자신이 조절하며 하기 때문에 부상 위험이 없어요. 그래서 물리치료를 해야하는 장애인들에겐 더 없이 좋은 대체운동이에요. 무엇보다 머리가 좋아져요.”
장점을 얘기하자니 끝이 없다. 머리도 좋아진다고? 한씨는 중학교만 마쳤지만, 절 수련을 통해 몸만 제자리를 잡은 것이 아니라 2개월만에 대입검정시험에 합격할 정도로 집중력도 생겨났다. 홍익대 미술 대학원에서 석사과정도 마쳤다. 머리가 좋아진다는 말도 맞는 것 같다.
―그래도 절은 재미없고 힘들잖아요. 특히 절을 하다보면 잡생각이 들어서 괴롭고 그래서 그만 두게 되고요.
“절을 할때 마음을 비우는 게 중요해요. 저는 절을 할때 전생의 빚을 갚는다는 참회의 마음으로 해요. 그리고 원력(願力)을 병행할 수 있어요. 소원, 대원을 바라는 강력한 바람이 의욕을 부추기고 그것이 마음을 평안하게 가져가며 이끄는 힘이 되죠.”
―한경혜씨가 절 수련을 통해 장애를 극복한 것을 보고 이를 따라 해보려는 장애우들도 많이 생겨날 것 같은데요.
“중요한 것은 운명은 받아들이는 게 아니라 내가 극복하고 개척하는 것이라는 점이에요. 그런 마음가짐으로 항상 노력하는 자세가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절은 온몸을 낮출 뿐 아니라 마음도 낮추는(하심·下心)행동이다. 그래서 절은 인간이 보여줄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동작이라고도 이른다.
그러나 어려서부터 절을 일상화해온 그에게도 ‘만배 백일기도’는 쉽지 않았다. 한씨는 하루 17시간씩 100일을 절만 하는 이 수련을 처음 할 때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고 시도하기도 했다. ‘만배 백일기도’는 그 정도로 자신의 육체를 죽음과 만나는 바닥까지 끌어내리는 극도의 고행이다. 그 바닥에서 ‘육체적, 정신적 껍질이 번데기처럼 벗겨지는’고통을 만난다. 그래서 수행이 깊은 스님들도 평생 마음을 내기 어렵다고 한다.
정상적으로 살 수 없었던 ‘뇌성마비’란 병마, 부모의 이혼, ‘모두 죽자’고 나서기까지 했던 극한의 생활고…, 웬만해선 헤어나기 힘든 환경을 한씨는 절로 극복했다. 그는 요즘도 물론 매일 1000배를 이어간다. 보통 1시간30분 정도 걸린다고 한다.
‘절을 할수록 손과 발, 다리, 배 등 몸 전체가 따뜻해지고 반대로 머리는 차고 맑은 산속 공기를 마시듯 청량해짐을 느낀다. 마치 정수리 부분에서 시원한 솔바람이 나오는 듯한 기분이다. 그래서 땀은 흐르게 되지만 호흡이 편안하게 이어지기 때문에 힘들다고 느끼는 것이 아니라 점점 머리가 맑아지고 몸은 따뜻하면서도 개운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다.’(‘오체투지’중에서)
엄주엽기자 ejyeob@munhw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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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을 하며 신체가 바로잡히고 정신의 집중력이 좋아졌다고 했지만, 한씨의 경우는 그 정도가 아니다. 그는 두번째 만배 백일기도에서 ‘구경각(究竟覺)’을 만난다.
‘구경’은 불교에서 보살의 수행이 원만하여 궁극적이고 완전한 지혜를 얻는 경지를 말한다. ‘구경’에서 모든 1700공안(화두)과 법게송과 선문답이 나왔고, 붓다의 말인 팔만대장경도 이 자리를 설명하기 위한 과정이라고 한다. 한마디로 ‘한 소식’인 것이다.
두번째 만배 백일기도의 80일째, 몸도 마음도 마지막 숨결만 남겨놓은 듯한 극한 상황에서 한씨는 감정의 변화도, 희망도, 절규도, 포기도, 아무 생각도 나지 않는 무심한 상태가 된다. 무심코 창밖으로 시선을 보낸 순간 ‘심장이 바닥으로 내동댕이쳐지는 듯한’ 놀라움에 사로잡힌다. ‘나’라는 것을 잃어버리고, 아주 영롱한 가운데, 주관도 객관도 없는 그런 경계속에 마음이 집중되어 ‘나’가 사라진….
―그 순간을 쉽게 설명해 주세요.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불립문자(不立文字)예요. 본지풍광(本地風光), 본래면목(本來面目), 견성성불(見性成佛), 구경각이 다 같은 얘기지만 구경각이 가장 한국적 표현인데, 그래서 흔히 ‘구경가자’라는 말속에 남아있죠.한씨의 설명은 쉽게 이해하기 어려웠지만 이를 옮겨본다.
구경각이란, ‘나’를 잊어버린 상태에서, 모든 망상이 떨어진 상태에서, 실상(實相)에 들어가 시방(十方:불교에서 동·서·남·북의 사방과 서남·서북·동남·동북 등 네 모퉁이 및 상하를 아울러 이르는 말)과 하나가 되는 것이며, 시각적으로 찰나의 모든 현상이 눈에 들어옵니다. 또 다른 표현으로 주관과 객관이 모두 떨어진 상태에서, ‘나’조차 없는 상태, 이 순간 자신은 하나의 무생물(바위나 산)처럼 ‘동(動)’함이 없는 가운데, 시방과 일체되어 실상을 바로 보게 되는 순간이라고 개인적으로 말하고 싶습니다. 우리는 상주법계(시방법계)라는 영원불멸한 무대에서 살고 있으며,변치않는 무대배경은 항상 그대로 있는데, 모든 생명들은 몸만 바꾸어서 태어나고 죽기를 반복할 뿐입니다. 여기에서 시방법계라는 영원한 무대를 알게되는 순간이 ‘구경각’입니다.”
―구경각을 접한 전후의 변화는 무엇인가요.
“구경각을 접한 사람은 부처님을 팔아먹고 살 수가 없어요. 불공(佛供)이란 것은 모든 생명체를 인격체로 대하는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니에요. 불사(佛寺)를 짓는 등의 일과는 거리가 멉니다. 나는 생명체로서 나중에 지수화풍(자연)으로 돌아가지만, 내 마음만은 영원히 불성으로 남아있습니다.”
그는 “구경각을 한 번 여행갔다 왔다고 해서 영원히 내 것이 아니듯, 앞으로 영원히 거기에 머물기 위해 살아야 한다”며 “제 먹을거리를 해결하고 이웃과 어울려서 사는 것이 그 과정”이라고 했다. 다시 세상으로 돌아와 건강하게 사람과 온갖 생명과 만나는 것, 건강하고 정확하게 만나는 그 과정이 바로 수행이라는 말로 이해됐다. 그는 성철스님과 약속한 ‘매일 1000배’를 평생 이어갈 것이라고 했다.
엄주엽기자
오늘은 왠지... 나를 숨기고 싶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