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_ 주구장창 연습해도 연기가 안 느는 이유는?
1) sns
2) 자의식
3) 부모님의 반대
4) 정신력과 체력이 부족해서
5) 극예술 스튜디오에 안 다녀서(?)
눈치가 꽤나 빠르신 분들은 이미 정답이 눈에 훤히 보일 텐데당연 5번이 아닌 2번이다.
그 이름만 들어도 무시무시한 존재.
자의식.
자기 자신에 대해 갖게 되는 의식,
연기를 할 때 상황에 집중하는 게 아니라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바라볼까?' 하며 연기를 하는 자기 자신에게 온 신경을 뺏기게 되는 악마같은 존재다.
이런 자의식에 대해 처음 들어봤거나 어느 정도의 존재감인지 감이 잘 안 잡히는 분들을 위해 간단하게 상황을 묘사해보도록 하겠다.
오늘은 수요일, 단장님의 연기 수업 날이다.
이 날만을 기다려왔다. 미리 말씀해주신 독백 연습은 물론이거니와 작품, 장면, 인물 분석까지 나름대로의 준비를 전부 다 끝낸 상태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수업을 듣기 전부터 불안감이 슬금슬금 엄습해오는 기분이 든다.
아니나 다를까, 수업이 시작되고 더불어 내 발표가 다가오니까 마치 누군가가 내 목을 조여오는 것 처럼 느껴지기 시작한다.
하지만 이 내 마음을 최대한 진정시키고 겸허히 사람들 앞에 나서본다.
'연습한 대로만 하자'
첫 대사를 내뱉는 순간, 자의식이 들어왔다.
'아 망했다.'
그 때부터였다. 내가 하고 있는 연기에 전혀 집중되지 않는다. 단장님의 왠지 모를 애처로운 눈초리와 무언가를 적어내려가는 모습만 자꾸 의식될 뿐이다.
그 와중에 연습한 대로 동선도 대사도 정확하게 수행이 안된 것도 마음에 안 든다. 되는 대로 움직이고 있고 입만 벙긋벙긋 하고 있는 내 연기가 창피할 정도다.
너무나도 다시 하고 싶다. 도망가고 싶다. 그러나 그렇다고 연기는 끊을 수 없기에 꾸역 꾸역 끝까지 한다.
드디어 이 혼돈의 시간이 끝났다.
단장님께서 한마디 하신다.
연습 안 했지?
자의식이 이렇게 무서운 존재다. 아무리 온갖 정성을 들이면서 연기연습을 했어도 이 의식이 들어오는 순간, 모든 게 어그러지게 되고 무너지게 된다.
그러나 놀랍게도 나를 포함하여 배우를 꿈꿔본 사람은 무조건 한 번쯤은 이 놈의 [자의식] 에 대한 고민을 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왜냐고?
절대적인 건 아니지만서도, 사실 자의식은 '연기를 배워서 생기는 존재' 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만약 이 글을 읽는 자네에게 자의식이 생겼다는 건, 그만큼 연기를 어느 정도 배워서 그런 고난을 겪고 있는 중이니 너무 염려하지도 않아도 좋다.
자네는 어떻게 보면 아마추어 에서 프로로 넘어가는 관문에 도달한 셈과 마찬가지다. 이 [자의식] 을 제대로 제거할 수 있다면야 말이다.
아니 근데, 연기를 배워서 자의식이 생긴다고요?
그렇다. 연기를 어느 정도 배운 분들은 아시겠지만, 이 과목은 알면 알수록 진짜 난해한 과목이다. 그래서 사람마다 연기 정의도 다르고 학원도 매체, 입시, 무대 나눠져있는 거다.
그만큼 연기를 배우면 배울 수록 속된 말로 챙겨야 하는 것들이 너무 많아진다. 그런데 이 와중에 한국사 역사처럼 정리가 영 되지 않는다.
연기에는 뚜렷한 정답이 없기 때문이다.
물론 어느 정도 기준점이라는 게 있긴 있다, 그러나 그것도 한 10년 이상은 꾸준히 공부 해야 생긴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가끔씩 '오히려 처음에 연기를 할 때가 더 잘했던 것 같고 자유로웠던 것 같아요' 라고 말하는 분들이 여럿 있는 이유가,
그게 다 내가 잘하고 있는 지 못하고 있는 지 가늠 조차 안 되기 때문이다.
게다가 연기가 처음이다보니 스스로 못하는 게 당연하겠지 라는 맘으로 자유롭게 표출하게 된다. 그러니 재밌을 수 밖에.
고로 연기를 파괴시키는 주범인 [자의식] 을 버리는 방법은 심플하다.
주제 파악
1. 연기를 '잘' 할려고 하지마라
사기꾼 같겠지만, 이 말은 믿어도 좋다.
연기는 매번 잘 할 수 없다.
배우는 스스로 한 연기에 대해 만족하는 날이 올 수 없다, 오히려 온다면 그게 배우로서 인생이 끝나는 것과 다름이 없다고 생각한다.
잘 하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자네의 연기는 진실했는 지를 따져야 한다.
자네는 상대에게 집중했어야 했고 목적을 이루기 위해 노력했어야 했다. 그런데 그 과정 속에서 '자신의 연기' 에 집중했다는 자체가 진실하지 못했다는 거다.
다시 한번 복창한다.
연기는 매번 잘 할 수 없으니 매번 진실하기 위해 노력하라.
2. 자네를 믿지 말고 연습을 믿어라
자네의 신체는 거짓말을 못한다.
스스로 생각해도 연습의 양이 부족하면 당연히 선생님은 물론이거니와 타인의 눈치를 보게 될 것이다.
연습도 많이 안 해놓고 무작정 나를 믿고 연기한다?
말도 안 된다. 그 사고 방식은 대참사가 일어나기 딱 좋은 사고방식이다.
자의식 따위에게 자네의 순수한 연기를 빼앗기고 싶지 않다면, 부족한 만큼 연습하고 또 연습하라.
여기서 주의할 점이 '혼자서 연습하지 말라.'
이따금씩 '혼자 있을 때는 연기가 잘 되는 데 사람들이 있으면 연기가 안 됩니다...' 라고 하소연 하는 친구들이 있는데, 나는 진실을 말해준다.
그건 사실 연기를 못하는 거야.
자네가 생각해도 그렇지 않은가? 배우는 아무도 없는 공간에서 연기를 하지 않는다. 아니 할 수 없다. 무조건 관객이 한명이라도 있는 곳에서 연기를 한다.
그게 무대고 곧 연극이다.
그러니 혼자 있을 때 연기를 잘하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이런 분들 중에 진심으로 연기가 늘고 싶다면 의도적으로 사람들 앞에 나서라. 연습실도 사람들이 있는 곳에서 연습도 종종 하라. 무대에 서있는 힘을 길러라.
누군가 지켜볼 때 버티는 힘도 배우가 가져야 하는 능력 중 하나다.
3. 평가는 받을 수록 무조건 좋아진다고 여겨라.
자의식이 생기는 이유가 뭐겠는가?
평가가 두려운 것이다.
그러나 자네가 배우가 되겠다고 마음 먹은 이상, 배우라는 직업이 끝낼 때까지 [평가] 를 들어야만 한다.
심지어 현재 대한민국 대표 50대 배우들도 여전히 작품이 나오면 관객들의 평가를 받게 되는 게 이 현대 사회의 현실이다.
무엇보다 관객들은 작품의 스토리를 보러 연극과 영화를 보러가는 것도 있지만, 사실 배우의 연기를 즐기러 (=평가하러) 가는 경우도 꽤나 많다.
이처럼 배우에게 평가는 거의 관객같은 존재다.
관객이 많아지면 많아질 수록 평가도 그만큼 많아지고 당연히 책임감도 더해진다. 그럴 때마다 평가가 무섭다고 뒷걸음질 치고 무서워할 것인가?
그렇다면 진작에 때려치워도 좋다. 배우 할 사람 많다.
이런 나쁜 말을 원한 게 아닌 거 나도 잘 알고 있다. 그러니 부탁인데 평가에 대한 프레임을 재해석하라는 뜻으로 세게 말했다.
평가는 감사한 일이다. 관객은, 특히 연기 학원 선생님께서는 내 연기를 바라봐주고 더 나은 방향으로 바꿔주고자 그 자리에 앉아계신거다.
그런데 여기서 자의식에 사로잡혀서 막상 연습한 연기도 안 보여주고 집에 가면 얼마나 아깝겠는가? 통탄스러워서 밤도 지새우게 될 것이다.
그러니 평가는 받으면 받을 수록 좋은 거라 여기고 자네의 아직은 부족한 연기를 아낌없이 베풀어라. 좋은 선생님이라면 이를 분명 더 나은 방향으로 바꿔주실 것이다.
결론적으로 자의식이 생긴다는 건 아직 '진정한 자네' 를 보여줄 용기를 못 냈다는 것과 일맥상통한다.
즉, 아직 배우 자기 자신이 부끄럽다는 것이다.
그러나 자네가 연기를 기깔나게 하는 장면을 스크린관에 나타나게 하고 싶다면, 나약하고 볼품없다고 느끼는 모습 또한 관객들에게 보여주는 용기가 필요하다.
부끄러워마라.
그 부끄러움은 자네의 연기가 도움이 1도 안된다.
한번의 쪽팔림은 영원한 행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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