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창시절 저는 자살을 결심했을 정도로 지독한 성폭행과 학교폭력을 당했던 왕따이자 가난한 흙수저 였습니다. 장남인 제겐 친 아버지, 친 어머니, 친 남동생 이렇게 가족이 전부였습니다. 사랑하는 제 가족을 바라보며 그 힘든 학창시절을 견디며 자살 시도를 하지 않고 끝까지 버텨낼 수 있었습니다. 가정 형편이 어려워 매일 이사와 전학을 다녔었고 급식비를 낼 형편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항상 거의 굶는게 일상이였어요. 때론 급식비를 내고 급식소에서 급식을 먹는 반 아이들이 부러웠습니다. 가끔 어머님이 도시락을 싸주시곤 했지만 김춘기라는 학생이 제 반찬을 다 뺏어 먹어서 저는 화장실에 숨어서 몰래 도시락을 먹곤 했었습니다. 급식도 못 먹고 도시락도 못 먹고 굶는 날에는 학교 운동장에 위치한 수돗가에서 물을 마시며 끼니를 떼우곤 했습니다. 그런 저의 가난해 보이고 약해 보이는 모습이 반 아이들에게는 괴롭히기 딱 좋은 먹이감으로 보였었나 봅니다. 체육 시간에 체육 선생님은 너희들끼리 알아서 놀아라 라고 말씀하시는 날에는 남자 아이들은 운동장에서 축구를 항상 했는데, 그럴때마다 골키퍼가 없다고 억지로 매일 저를 반 강제로 골키퍼를 시켰습니다. 제가 골키퍼가 하기 싫다고 하면 폭언과 폭행을 일삼았습니다. 전 억지로 운동장에 끌려나가 골키퍼를 하다가 축구공에 중요부위를 맞아 쓰러져 우는날이 많았고, 그런 저를 아이들은 재밌고 웃기다고 비웃었습니다. 체육시간에 운동복에서 교복으로 갈아 입을때는 아이들이 탈의한 저를 강제로 붙잡고 중요부위를 장난식으로 만지곤 했는데 아이들이 "야, 이새끼 고추 졸라커!" 이러면서 막 비웃고 그럴때마다 죽고 싶었습니다. 그때 당시 디아블로2 라는 게임이 유명했는데 아이들은 그런 제게 팔라딘 양손검이라는 별명을 지어주면서 22cm 자지 서형윤이라고 막 놀렸습니다. 아이들의 장난은 더욱 더 심해지고 강렬해 졌으며, 교실의 학생들은 저를 번갈아 가면서 괴롭혔고 매일같이 저는 김춘기라는 학생에게 제 뒤통수를 내어 주어야 했습니다. 수업시간이나 쉬는 시간이나 할거 없이 김춘기 학생은 제 뒤통수를 매일같이 후려 갈겼고 저는 엎드려 하염없이 울곤 했습니다. 수많은 여자 아이들과 남자 아이들의 비웃음 소리, 방관자들에게 둘러 쌓인채, 제가 김춘기에게 맞고 엎드려 숨죽여 오열하며 울때마다 모든 여학생들은 저를 대놓고 크게 비웃으며 손가락질하며 놀렸습니다. 어쩔때는 계속 맞은 뒤통수가 너무 아프고 그런 내 자신이 불쌍하고 슬퍼서 1교시부터 6교시까지 울어서 교과서는 눈물과 콧물로 범벅이 되여 형태를 알아볼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하지만 그럴때마다 그 녀석의 폭행은 계속 되였습니다. 음악 시간만 되면은 이번에는 김대광이라는 학생과 김헌중이라는 학생이 제 옆에 양 옆으로 다가와 앉아서는 유도를 한 육중하고 강렬한 몸으로 매일같이 제 팔뚝을 때렸었고 제 팔은 빨갛게 부어 올르면서 시퍼렇게 멍이 들다못해 나중에는 고름이 쌓인거마냥 누렇게 되었습니다. 홍기태와 원진영 이 두 학생은 그때 제가 시골 학교인 신림 중학교에 다니고 있을 시절인지라 그땐 중앙에 난로가 있었는데 그 난로에다가 쇠자를 데워서 제 목덜미에다가 지진적도 있었습니다. 제 목은 화상을 입게 되였고 기술 가정 선생님께서 다행이 화상을 입은 저를 교무실에서 발견해 주셔서 치료를 받았습니다. 저는 같은 성별의 남학생한테 성폭행을 당하기도 했는데 이상주라는 애가 매일같이 조용이 제 옆으로 다가와서 귀에다가 속삭이는 목소리로 아무도 몰르게 저를 옥상으로 따라오라고 하고는 자신의 성기를 빨라고 명령하기도 했습니다. 그 녀석은 자신에 항문에 제 성기를 집어넣으라는 명령도 서슴없이 했습니다. 저는 그때 정말 많이도 울었습니다. 그때가 제일 서럽고 수치스러웠습니다. 하지만 저는 겁쟁이라 자살할 용기도 없었습니다. 저는 아이들한테 맞고 울어도 내성적이고 조용하고 용기도 없고 숫기도 없어서 항상 말도 못하고 집에서도 가족들에게 말도 안하고 혼자 삭히고 그랬습니다. 물론 그당시 저 말고도 괴롭힘을 당하는 학생이 한명 더 있었습니다. 조기영이라는 학생이였는데 걔도 저처럼 매일같이 맞았죠. 하지만은 녀석은 혼자였는데도 용감해서 그 수많은 일진 학생들을 상대로 겁없이 덤벼들었어요. 하지만 그럴때마다 더 심하게 맞았죠. 그래서 전 그 광경을 보고 싸울 의지를 더 잃게되였던거 같아요. 물론 저는 겁쟁이라 싸울 의지 따윈 애초부터 없었던거 같아요. 김영대라는 학생은 맨날 우리집에 와서 게임 CD를 빌려가놓고 돌려주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때부터 친구들이 제 집에 오는게 싫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저를 구원하러 한 예쁜 여학생이 전학오게 되었습니다. 그녀가 바로 제 첫사랑이였죠. 그녀의 이름은 김은미였습니다. 장래희망이 스튜어디스였고 정말이지 자신에 꿈 만큼이나 엄청나게 예쁜 미인이었습니다. 그녀는 제가 아이들에게 괴롭힘을 당할때, 그리고 그녀와 같은 성별의 여자애들이 전부 저를 비웃고 놀릴때마다 앞장서서 그만하라고 말하고는, 저를 유일하게 혼자서 위로해 주었습니다. 하지만 아이들의 장난은 멈출 줄 몰랐고, 저는 그렇게 계속 힘들게 학창시절을 보냈습니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저는 학교가 제일 싫고 무섭습니다. 그러다가 다른 학교에서 사고를 친 일진 애들이 저희 시골 학교로 전학오게 되였는데 한명은 저처럼 집안 형편이 가난해서 시골학교로 저처럼 전학오게된 전학생이었습니다. 그 아이는 머리를 전부 삭발한 모습이었고, 주먹은 크고 두꺼웠으며 마치 자동차도 부숴버릴것 같은 위압감을 가진 안혁수라는 아이였습니다. 그리고 또 한명은 안경을 쓰고 갸름하고 날렵하게 생겼는데 무척 살기가 흘를 정도로 쎄 보이는 유흔경이란 학생이였고 마지막 학생은 이제까지 저가 본 학생들 중에서 키와 덩치가 압도적일 정도로 크고 거대한 허자회라는 학생이었습니다. 이 전학생 삼총사 아이들로 인해 저는 학창시절이 조금 편해지고 자유로워지게 되었습니다. 이 아이들에 위압감과 포스를 보고 일진 애들은 말도 한마디 못걸었으며, 이 애들은 자동으로 자기들이 맨 뒷자리에 앉았고 혹시라도 수업시간이나 쉬는 시간에 아이들이 눈치없이 떠들면 맨 뒷자리 창가 자리에 앉은 제일 강한 허자회라는 학생이 근엄한 목소리로 무협 소설책을 읽으며 조용히 하라고 말했고, 아이들은 바로 묵념을 했습니다. 그때 이후로 아이들은 교실에서 서로 눈치만 보며 조용이 지냈고 저를 괴롭히지도 않았습니다. 그렇게 저는 편하게 학교를 다니다가 신림 중학교를 겨우 졸업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주천 종합 고등학교로 전학을 가게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한편으로는 제가 고등학생이 되어도 왠지 이렇게 앞으로도 왕따와 구타를 당할까봐 저는 계획을 짜기 시작했습니다. 더이상 이렇게 당하고 살을 순 없어 학교에 가면 맨날 아픈척을 했고, 화장실에서 숨어서 몰래 코를 세게 후벼 파서 코피가 흐르게 해서 그 코피를 온 몸과 교복에 덕지덕지 발르고는 비틀 거리면서 피를 흘린 연기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럴때마다 선생님들은 제가 빈혈이 있는줄 알고 얼른 양호실 침대에 저를 눕혀주셨었습니다. 그렇게 저는 거의 매일같이 단 하루도 안 빠지고 1교시부터 6교시까지 양호실 침대에서 잠을 자며 생활하게 되었습니다. 양호실 침대에서만 계속 누워 자면 허리가 아파서 독서실에 가서 장르를 가리지 않고 수많은 책들을 읽곤 했어요. 그래도 드물게 아이들의 괴롭힘이 있긴 있었지만 중학교때만큼 심하지는 않았죠. 혼자 수많은 책들을 독파하다가 우연히 학교 내에 있는 도서실에서 엄청나게 두꺼운 책을 한권 발견했었습니다. 책의 제목이 아직도 기억에 남네요. 우울과 몽상이라는 책이었고, 작가님은 에드거 앨런 포 이셨습니다. 저는 그 책을 읽고 정말 많은 영감을 얻었습니다. 그렇게 혼자서 소설을 쓰는법을 해당 책을 읽으며 혼자서 독학했던거 같습니다. 그런데 중학교를 졸업후에 급격히 얼굴이 잘생겨지기 시작하면서 주변에서 저보고 잘생겼다고 하는 말을 많이 했어요. 계속 그런말을 듣다보니 문득 거울속의 제 모습을 보고 저도 모르게 심취해선 핸드폰으로 셀카를 찍어 여배우 구혜선님이 유명해진 다음 카페 오대얼짱 카페에 제 사진을 장난으로 올렸는데 드림피그 연예 기획사에서 오디션 제의가 와서 갑자기 캐스팅이 되게 되었습니다. 그로 인해 어쩔 수 없이 연예 소속사와 가까운 곳에서 살기 위해 또 이사를 가야만 했고 그렇게 저는 또 한차례 의정부에 있는 영석 고등학교에 전학을 가게 되어 그곳에서 마지막 고등학생 학창시절을 보내게 되었습니다. 주천 고등학교에서 영석 고등학교로 전학을 가게 되었을때도 똑같이 양호실과 독서실을 오가며 수업시간에 학교 바로 맞은편 매점에서 햄버거를 사먹곤 했습니다. 그런데 그게 소문이 나서 학교 후배 애들이 제가 수업시간에도 양호실 침대에서 자고 도서실에서 책 읽고 매점에서 햄버거를 사먹으니까 그런 저를 아웃사이더 일진으로 알게되어 맨날 제가 지나가면 후배 애들이 좌르륵 양 옆으로 비켜서서 고개를 푹 숙이는 광경을 보곤 당황하곤 했습니다. 하지만 제가 남들에게 그렇게 강하게 보여지는게 한편으로는 내심 설레구 뛸듯이 기쁘고 좋았습니다. 그렇게 다행히 고등학교도 겨우 졸업하게 되였지만 성인이 되어 사회에 나와서도 제 트라우마는 없어지지 않았습니다. 누가 나를 괴롭히거나 욕할지 몰라 혼자 무서워 하며 다른 사람들한테 말을 걸을 때도 벌벌 떨면서 말을 심하게 더듬곤 했어요. 결국 학교에서도 군대에서도 저는 항상 똑같은 바보, 찐따, 왕따였어요. 훈련병때 행군 도중 발바닥을 심하게 다친적이 있어 모든 훈련에서 열외가 되였었는데, 그때부터 내무반의 동기 훈련병들은 저를 시기하고 질투했어요. 한번은 제가 발바닥 부상으로 인해 급식소까지 못가서 훈련병 동기들이 제 대신 급식을 받아 음식 식판을 대신 들고 제가 내무반에서 먹은적이 있었는데, 동기들이 식판을 들고 걸어오면서 일부러 음식들을 다 흘려서 식판에는 먹을게 거의 남아 있지 않았죠. 꾸역 꾸역 눈물을 억지로 참아가며 울면서 겨우 밥을 떠먹는 그 모습을 감시 카메라로 전부 모니터링하신 훈육 분대장님이 훈육 소대장님에게 이 해당 사실을 모두 보고하셨고, 훈육 소대장님이신 최우선 상사님은 저를 불쌍히 여겨주시며 제가 편한 보직으로 갈 수 있게 최대한 배려해 주셨습니다. 그렇게 저는 연대장님을 모시는 2사단 32연대 직할 본부중대 PX병사로 입소하게 되었습니다. 2층 침대가 딸린 취사병 선임분들이 계신 편한 신막사에서 저는 그렇게 선임분들로부터 귀여움을 독차지하며 편한 군생활을 만끽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제 밑으로 PX병 후임이 오고 나서 제 군생활에 조금씩 균열이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손진욱이라는 이등병 후임이 제게 일을 못한다며 이등병인 저를 협박하고 욕하고 때렸는데 피해자인 제가 억울하게 누명을 쓰고 영창을 가게된 사건도 있었습니다. 중대장님이신 류재하 대위님은 제게 훈련병때 빼곡히 적어내린 제 생지부를 다 보셨다고 하시며, 그곳에 적힌 제 장래희망이 영화배우인걸 보고 영창을 가는게 나중에 네가 연기를 할때 도움이 될 수 있을거라며 절 꼬옥 안아주시며 영창 보내셨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제가 빼곡하게 페이지를 가득 채운 생지부가 다른 병사들에 깨끗한 생지부와는 달리, 제꺼만 유독 모든 군인 장교분들이 돌려본듯 너덜너덜하게 낡고 붉은 볼펜으로 밑줄이 쳐저 있는걸로 보아, 아무래도 제가 연대본부 PX 병사였을때 당시 그곳에 계시던 중대장님과 연대장님을 비롯해, 상부에까지 제 장문에 빼곡한 페이지를 다 채운 생지부가 보고되어 군단장님과 사단장님과 여단장님까지 모두 다 제 생지부를 보시고는 이 아이를 일부러 잘못도 안 했는데도 억울하게 가해자가 아닌 피해자인 저를 영창에 보내게 함으로서 고난과 역경을 줘서 군생활을 어떻게 헤쳐 나가는지, 그리고 또 배우라는 장래희망에 맞게 일부러 시련을 줘서 영창같은 힘든 삶을 연기에 녹여내릴 수 있게 해보자 하고 판단하시고 저를 보내신게 아닐까 하고 다 깊은 뜻이 있으셔서 그러셨겠지 하고 생각해 봅니다. 군사 징계 위원회로부터 회부되어 억울하게 피해자인 제가 영창을 다녀오고, 모든게 일사천리로 제 군생활이 빠르게 풀리면서 선임중 최고참이자 분대장이자 취사장이신 장남광 상병님께서 주무시다가 갑작스럽게 운명을 달리하시게 되는 돌연사 사건이 겹치며, 그렇게 저는 군대를 이등병때 빠르게 속전속결로 의가사 조기 전역 제대하고 사회에 나와서도 서울에서 달방 생활과 고시원 생활을 하며 엑스트라 일과 촬영 보조 스태프 일을 하면서도 저는 다른 사람들한테 항상 혼나거나 맞거나 욕먹거나 이중 하나였습니다. 점점 자신감이 결여되어만 갔고 결국 백수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제 배우의 꿈을 꼭 이루고 싶습니다. 그래서 저는 지금도 배우의 꿈을 이루기 위해 복싱을 하며 과거의 트라우마랑 맞서 싸우고 있습니다. 제가 과거 트라우마와 싸워 이길 수 있게, 배우의 꿈을 이룰 수 있게 꼭 좀 도와주십시오. 부탁드리겠습니다. 여러분의 후원과 추천 한표가 제겐 매우 귀중합니다. 배우 서형윤 올림. 추신 : 제가 가난하여 프로필 사진을 찍을 돈이 없어 핸드폰으로 찍은 사진들과 전역 사진과 졸업 사진들을 대신 올리게 되었사오니 이점, 양해 부탁드리겠습니다.
이름 : 서형윤
성별 : 남성
혈액형 : A 형
MBTI : INFP
연락처 : adamlang@naver.com
인스타그램 : https://www.instagram.com/seohyungyoon1988/
공식 홈페이지 : https://talented.co.kr/pc_portfolio?c=38663
첫번째 네이버 블로그 : https://blog.naver.com/dnjsalgh1234
두번째 네이버 블로그 : https://blog.naver.com/adamlang
배우 서형윤 필모그래피 : https://www.filmmakers.co.kr/actorsProfile/12441198?category=282
단편 독립 영화 : https://www.youtube.com/watch?v=5OZYvyGavlA&t=53s
두번째 단편영화 : https://www.youtube.com/watch?v=UFYogHAwrsU
배우 서형윤이 혼자 감독이 되어 만든 세번째 독립 영화 :
배우 서형윤이 사부님이신 Giga Ovgod 님께 바친 영화 :
배우 서형윤의 첫번째 브이로그 :
배우 서형윤의 두번째 브이로그 :
연극배우 서형윤의 세번째 브이로그 :
연극배우 서형윤의 네번째 브이로그 :
소설 집필 : https://necoje.nexon.com/community/contents/view/454/1?n4articlecategorysn=5
( ※ 해당 소설은 제가 직접 집필했고, 중세시대 온라인 게임인 마비노기 영웅전의 세계관을 그대로 차용해서 저만의 방식으로 재해석해서 집필했으며, 그리고 또 모델 유튜버이신 보레스트님에게 선물을 받게 되어 저도 보답으로 보레스트님을 찬양하고 헌사를 바치고 기리는 마음을 담아 소설을 집필하게 되었습니다. 보레스트님이 제게 선물을 주신 영상은 여기서 보실 수 있습니다. 5분부터 보시면 제 닉네임 아담랭을 직접 목격하실 수 있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YFULK2DHpGs&t=328s )
책사풍후님의 에이지 오브 엠파이어 게임 콜라보레이션 합방 코옵 Co-op 목소리 방송 출현 이력 : https://www.youtube.com/watch?v=LXdNo9JMrJ8&t=1657s
( ※ 유튜버이자 배우이신 책사풍후님, 니므롯풍쿠님의 방송에 목소리로 출연하였습니다. 합방 콜라보레이션 방송을 진행하였고, 18분부터 보시면 제 목소리가 흘러나오실 거세요. 18:08초 부분부터 보시면 되실거세요. 참고로 책사풍후님, 니므롯풍쿠님의 배우 프로필은 여기서 보실 수 있습니다. https://www.filmmakers.co.kr/actorsProfile/12450743?member_srl=12450733 )
마영전 팬아트 이력 : 중세시대 온라인 게임인 마비노기 영웅전의 팬아트를 담당했던 이력이 있습니다. 헤기 종족의 2차 무기 건의안 팬아트였고, 비록 제가 그림 실력은 정말 형편 없지만 네이버 웹툰 작가님이신 조석님의 작품을 참고하여 열심히 작품에 임했습니다. 해당 팬아트 작품은 여기 링크된 주소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https://heroes.nexon.com/Ucc/fanart/view?page=1&category=0&postno=188179
책사풍후 유튜버님에 생존 오픈 월드 좀비 게임인 다잉 라이트 게임 출연 이력 : 에이지 오브 엠파이어 게임 합방 방송때처럼 제가 얼굴 공개 없이 캠 화면 없이 오직 목소리로만 유튜버 책사풍후님에 방송에 출연해 같이 게임방송을 진행했습니다. 해당 방송은 여기서 보실 수 있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PlF4saVjAlg&t=11276s 참고로 제 목소리는 영상 후반부인 3:07:19 초 부터 흘러나오니 3:07:19 이 부분부터 보시면은 되실 거세요.
1일 기자 이력 : 제가 직업이 배우인데 이날은 1일 기자가 되어 사명감을 가지고 삼중 추돌 사고를 직접 현장에서 취재를 하게 되였습니다. 자동차가 폭발할 수 있는 자칫하면 굉장히 위험한 상황이었는데도 저는 오직 사명감을 가지고 직접 영상을 촬영하게 되었습니다. 해당 영상은 여기서 보실 수 있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6vaM4YE3w8A
유튜버 책사풍후님과 본격적인 콜라보레이션 합동 방송 이력 : 제가 본격적으로 드디어 제 유튜브 채널에 유튜버 책사풍후님과 콜라보레이션 합동 방송을 하게 되어 게임 영상을 녹화해서 올렸습니다. 배경 소리를 키운 버전은 https://www.youtube.com/watch?v=MlKPhd-4E3I&t=223s 여기서 보실 수 있습니다. 그리고 또 배경음 소리를 대폭 줄인 버전은 https://www.youtube.com/watch?v=l1-dEymNdZI&t=3293s 여기서 보실 수 있습니다. 배경음으로 인해 제 목소리가 많이 뭍혀서 안 들리신다는 피드백을 받게 되어 배경음을 대폭 줄이게 되었습니다.
디시인사이드에 서형윤(유튜버) 마이너 갤러리 창설 이력과 배우 서형윤 디시콘 출시 이력 : 디시인사이드에서 배우 서형윤(유튜버) 마이너 갤러리가 창설된 이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또 디시인사이드에 배우 서형윤의 디시콘도 출시된 이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갤러리는 아주 유명한 대통령이나 연예인 걸그룹 여배우 등등 세계적으로 인지도가 높으신 분들만 자신에 갤러리를 창설할 수 있기 때문에 아무나 자신에 갤러리를 창설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저는 무명 삼류 엑스트라 배우인데도 불구하고 저에 갤러리가 만들어 질 수 있었던 것은 그만큼 전적으로 제가 이제는 유명하다는 말이 된 셈이죠. 특히나 최근에 만들어진 걸그룹 뉴진스 마이너 갤러리와 저에 갤러리는 같은 등급으로 취급될 정도로 제 인지도가 대폭 상승하게 되었습니다. 왜냐하면은 뉴진스 갤러리도 마이너 갤러리인데 제 갤러리도 누구나 만들 수 있는 미니 갤러리가 아닌 운영자님에 승인이 필요한 마이너 갤러리이기 때문이죠. 마이너 갤러리를 만들고 싶어도 누구나 만들 수 없는게 운영자님에 승인이 필요하기 때문에 만들고 싶어도 신청을 하면은 바로 반려 처리가 되기 때문에 갤러리는 아무나 만들 수 없습니다. 그만큼 저는 이제 배우로서 아주 유명해졌다고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아울러 제 배우 서형윤 디시콘도 출시되여서 언제든지 제 프로필 사진이 들어간 디시콘도 사용할 수 있습니다. 제 배우 서형윤 디시인사이드 마이너 갤러리 주소입니다. https://gall.dcinside.com/mgallery/board/lists?id=seojumong
네이버 웹툰 도전만화 작가 이력 : 현재 저는 네이버 웹툰 도전만화 연재 작가로 활동중에 있습니다. 저에 웹툰은 이곳에서 감상하실 수 있습니다. https://comic.naver.com/challenge/list?titleId=804038
배우 서형윤 인스타그램 주소 : https://www.instagram.com/seohyungyoon1988/
후원 : 농협 서형윤 302-0235-576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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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서형윤의 갤러리 주소 : https://gall.dcinside.com/mgallery/board/lists?id=seojumong
배우 서형윤의 인스타그램 주소 : https://www.instagram.com/hyungyoonse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