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정보유출에 무방비로 노출된 우리들... 화가 납니다.

nahnnah 2007.11.21 22:05:13
방금 강남까지 헛걸음하고 집에 돌아왔습니다.

오늘 저녁에 급하게 연락받고 광고 오디션 보러 오라고 해서 갔었습니다.

추운 날인데 30대 중반의 커리어우먼 컨셉이라고 해서 정장을 입고... 추웠지요.

허걱, 근데 나중에 오디션 보러 가니 컨셉이 커리어우먼이 아닌 아이엄마인 주부였습니다. 에구궁. 의상 컨셉이 완전 다른데... 뜨악~ 알려 주려면 제대로 알려주지!!! 추운데 이게 뭐야... 에구궁...

방송용 메이크업을 하고, 머리는 미용실을 가야하나 말아야하나 고민하다가 시간이 임박해서 미용실을 갈 수 가 없었지요.
그러곤 몇번 차를 갈아타고, 자가용을 타고 가려니 퇴근길이라 차가 막혀서 전철이 훨씬 빠를 것 같아서, 집에서 한시간 정도 걸리는 오디션장까지갔지요.

그런데 보안유지 서약서를 쓰라고 하더라구요.

여태껏 7년 넘게 방송 광고쪽 일해오면서 그런 요구를 받은 적이 단 한번도 없었지만, 뭐 그럴 수 도 있겠다 싶어서 썩 유쾌하진 않지만, 서류를 봤습니다.

이것 저것 다 쓰고, 주소도 쓰고, 예명이 아닌 실명을 써야하며, 주민등록번호를 써야 하더라구요.

사실, 우리 일 하고 나서 돈 받을때마다 통장사본과 함께 주민등록증 사본 앞뒤로 다 복사해서 보내거나, 그것도 모자라서 주민등록등본까지(초본도 아니고 등본; 온 가족의 실명과 주민번호가 다 보여지는) 요구하는 경우를 많이 당하지만, 그건 어차피 일을 했고, 돈이 오가는 것이기에 세금 자료 등도 남겨야 하고 절차상 필요해서 그렇다고 치지만(그래도 주민등록등본은 좀 심하다 싶어요. 전 꼭 필요하다면, 등본이 아닌 초본을 제출하도록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드네요)

그런데, 이건 일을 하기로 확정이 된것도 아니고...
일을 하기위한 계약서도 아니고...
일을 하고 나서 출연료를 받기위한 것도 아니고...

그래서 주민등록번호 쓰는건 오버다, 꼭 필요하다면 앞자리만 쓰겠다고 했더니 안된다고 하더라구요.

좀 어이없어서 요즘은 수표 이서할 때도 주민등록번호 요청하는 건 이의 제기 할 수 있는데...
이건 뭐... 말이 안되는거 아니냐고...

사실, 광고 한껀에 한 역할을 두고 오디션을 보게 되는 모델의 수는 적어도 50명 이상, 많으면 몇백명에 달하는데...

모델을 믿지 못해서 서약서을 받는것 자체도 좀 웃긴 일인데, 주민등록번호까지 쓰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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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모델을 믿지 못해서 서약서를 받듯... 나는 그들을 순수하게 그냥 믿고 따르기엔 뭔가 찜찜했다.

합격한 단 한명 외의 다른 모델들이 쓴 그 실명과 주민등록번호는 사실, 누군가가 맘만 먹으면 얼마든지 도용될 수 있는 여지가 있는 것 아닌가???
실명과 주민번호만 있으면 사소하게는 실명 인증 받고 여기저기 웹사이트 가입부터 시작해서, 크게는 범죄에 이용될 수 도 금전적 손해를 보게 될 수 도 있다.

말이 안통하기에 모델협회 부회장님께 전화해서 이러저러하다고 말씀드리니 펄쩍 뛰시며 말도 안된다고 하셨고, 광고 관계자를 바꿔드렸다.

뭐 그러나, 자기네들의 폼을 따르지 못하겠다면 자기들도 자기들의 요구를 따르지 않는 모델을 오디션 볼 수 는 없다고 했다.

사실, 그 광고껀이 천만원 조금 못되는 비교적 큰액수의 광고껀이었기에 아마도 대부분의 모델들이 주민등록번호 별로 쓰고싶지도 않아도 쓰고 오디션에 임했을 것이다.

또, 신분증 대조를 안했기 때문에 그냥 숫자 몇개 틀리게 쓰고 대충 쓰고 할 수 도 있는 노릇이기도 했다.

그러나 주민번호 숫자 틀리게 쓰는것도 일종의 거짓말이니 그렇게 하고 싶지 않았다.

전에도 아는 친구가 그 동일한 회사에 오디션 보러 가서 다 쓰고 오디션 보고 최종 합격된 후 프로덕션 미팅까지 하고 기다렸으나 광고 불발되어서 촬영 안들어갔었다고 했다.

뭐 일부러 그러는 것은 아니겠지만, 혹시라도 광고를 빌미로 사람들 신상 명세를 취합하는 나쁜 사람들이 없으란 법도 없고...


하여튼, 뭐 에이전시측이야 거기도 약자니까... 클라이언트가 요구하는 대로 맞춰줄 수 밖에 없는 노릇이니 어쩔 수 없는 것이고.
광고주가 요구해서 광고대행사에서 폼을 만들었을텐데...
광고대행사측에서 서약서 폼을 만들때 주민등록번호까지 다 쓰도록 만든 것 자체가 오버액션이 아니었나 싶다.


어쨌거나, 나는 오디션을 포기하고, 그냥 돌아왔다.
시간 안되어 미용실 안가서 다행이지 미용실까지 갔다가 보러간 오디션 이었으면 돈 아까와서 속이 더 상했을 것이다.

목에 칼이 들어와도 내 소신대로 밀어부치는 성격이 여실히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잠시 눈 질근 감고 주민등록번호 쓰거나 살짝 숫자 몇개 다르게 쓰고 오디션 보면 되는건데...

그렇게 해서 합격된다면, 내 통장에 몇달간 살아갈 수 있는 몇백만원이 꽂히는건데...


주민등록번호 쓰는것에 대해 이의를 제기한 모델들이 몇명 있긴 했는데, 끝까지 안쓰고 오디션 포기하고 그냥 돌아간 사람은 나뿐이라는 것 같았다. ㅋㅋㅋ




뭐 그 광고가 어떤 광고였고 어떤 에이전시를 통해서 본거고 그런 것은 중요하지 않다.
하긴, 무슨 광고인지 조차도 보안유지 해 달라는 광고였지??? ㅋㅋㅋ


우리 배우&모델들이 '갑'이 아닌 '을' 또는 '병'이나 '정'의 입장이기에...
이건 아니다 싶고 부당한 요구를 당한다는 생각이 들어도 울며 겨자먹기로 그냥 그냥 시키는대로 다 응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 의외로 빈번하다.

그것이 속이 상한다.

어쨌거나 정식으로 모델협회를 통해서 계약 단계나 결제 단계 외에 오디션을 보기위한 전제조건으로 주민등록번호와 실명을 요구받는 상황은 부당한 요구라는 진정서를 접수하고, 각 광고 대행사에 그와같은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공문 내려보내달라고 요청할것이다.

추운날, 급하게 방송 메이크업하고 정장입고 하이힐신고... 강건너 가서 헛걸음하고 왔지만,
이것이 헛걸음이 아니라, 앞으로 우리에게 또 일어날 수 있는 부당한 개인정보 유출을 막을 수 있는 계기가 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도록 만들어야겠다.


같이 갔던 친구는 나랑 같이 주민번호 안쓰고 있다가 결국엔 쓰고 오디션 보고 왔지만, 나는 그냥 안하겠다고 하고 안하고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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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처럼 큰액수의 광고껀을 놓치면서 자기주장을 펼 필요까진 없겠지만,

"주민등록 번호를 쓰라고 요구하는 것은 좀 아닌것 같습니다" 라는 말만이라도 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모든 배우&모델들이 그렇게 거부반응을 보이면 함부러 주민번호 쓰라고 요구하는 일은 줄어들거나 사라질 수 있을 겁니다.

사실, 기획사나 에이전시 영화사 미팅가도 개인정보 쓰라면서 주민등록번호까지 다 쓰도록 되어있는 곳이 많습니다.
저는 언제나 앞자리만 쓰고 뒷자리는 안씁니다.

근데 많은 분들이 그냥 주민등록번호를 다 쓰시더군요.

유명 회사도 있지만 금방 만들었다가 금방 사라지는 유령 회사 같은 곳도 많은데 그런곳일수록 더더욱 주민번호를 쓰라고 합니다.

주민등록번호를 쓸때는 꼭 한번 더 생각 해 보고 쓰시기 바랍니다.
고용 관계가 성립되는 계약서거나, 협회등의 공식 단체라면 몰라도......


하여튼, 화가나서 좀 흥분해서 썼으니, 다시 보고 오타도 수정하고 문맥상 호응 안맞는 부분도 수정해야할것 같네요.^^

안그래도 출연료 받을 때마다 이렇게 서류들을 남발해도 되나? 싶을 만큼 개인정보유출에 노출이 심한 직업인데,
오디션 보는데서 주민등록번호와 실명을 쓰라는 요구를 받으니 참 황당하더라구요^^ 씁쓸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