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이든 영화든 회화든 음악이든.... 작품을 해석하는 방점은 크게 2가지가 있습니다.
1) 스투디움: 정본에 따른 해석입니다.
2) 푼크툼: 독자적인 시각에 따른 해석입니다.
보통 인문학이 발달했다느니, 창의적인 사고 방식이 존중받는다느니, 정신적으로 풍요롭다느니.. 그런 소리 듣는 유럽 등의 선진사회일 수록 푼크툼적인 해석이 많이 생산됩니다.
기계적이고 획일적이고 암기식 교육이 창궐하는 사회는 스투디움에 갇혀있죠. 스투디움이 나쁘다는 건 아닙니다. 다만 푼크툼과의 밸런스가 갖춰져야죠.
"감독이 이렇게 얘기했어" "감독 인터뷰 보니까 그거 아니래" "감독이 아니라고 했다니까~" ← 이런 사고방식이 제일 나쁜겁니다. 의미의 재생산을 가로막아요.
객관적인 답을 알고싶으면 예술을 향유할 게 아니라 백과사전이나 외워야죠.
제가 봉준호 감독한테 크게 실망했던 일이, 한 네티즌의 "마더"에 대한 독자적인 해석을 듣고는 대놓고 "푸하하하하. 뭐라고? 에라이~" 이런 식의 반응을 보이더군요.
작품이 작가의 손을 떠났으면 해석은 관객의 몫입니다. 오히려 그래야 작품이 생명력을 얻는 겁니다. 그런 점에서 봉 감독의 푼크툼에 대한 태도는 분명 수준 이하였습니다.
그에 비해 나홍진 감독은 너무 마음에 드네요. 나홍진 감독이 뭘 말하려고 했는지는 영화 표면 상에 드러난 그대로라고 봅니다.
하지만 그 이면에 깔린, 기획 중 고려했을 법한 주제의식, 또는 감독의 뇌 속 저변 어딘가에서 이번 작품을 만드는데 크게 기여를 했을 법한, (무)의식이 말하고 싶어하는 것들을 보면서 저는 저만의 해석을 찾았습니다.
영화에서 일본인, 즉 외지인은 한국에 입국한 지 매우 오래된 사람입니다. 낡은 여권이 그걸 의미하죠.
오랫동안 살았음에도 불구하고 마을 사람들과의 교류는 없고 산 속에서 혼자 개를 기르며 지냅니다.
한국 사회에 타자를 어떻게 대하는 가에 대한 단면을 엿볼 수 있죠.
타자에 대한 폭력성은 이후로 벌어지는 사건에 의해 구체화됩니다.
마을에 병이 돌았는데 난데없이 자기가 병을 퍼뜨렸다며 의심하고..
타향 생활 힘들어 죽겠는데 고라니를 생으로 잡아 먹는다고 이상한 소문이나 퍼뜨리고..
마을에서 어떤 여자가 자살했는데 내가 강간해서 그런거라고 증거도 없이 소문내고..
경찰이라는 놈은 영장도 없이 남의 집 쳐들어와서 집안 살림 다 부수고 한국말로 뭐라는지 모르겠지만 왠지 반말에 욕까지 하는 것 같고...
지 딸이 아픈데 왜 나를 찾아와서 갈구다가 내가 기르는 개까지 죽이고..
친구들 불러모아서 삽 들고 나 죽이러 오질 않나..
간신히 도망쳤더니만 비 오는 날 차로 치고..
병원에 데려다주긴 커녕 절벽에서 굴러 떨어뜨리고...
간신히 살아났다가 의료보험도 없이 혼자 동굴에서 식음전폐하고 있는데 왠 예수쟁이가 와서 나더러 악마라질 않나..
아오~~~~~~~~~~~~~~~~~~~~~~~~~~~~~~~~~~~~~~~~~~~~~
멀쩡한 사람도 빡쳐서 악마 되겠수다..
"그래 ㅆㅂ 내가 악마다!! 됐냐??? 어!!"
어떤 얘기만 해야 한다는건 없습니다. 연기자들을 위한 전용 자유게시판 정도로 생각하시면 되겠습니다.
가장 자주 나오는 페이문제나 처우개선등에 대한 논의도 이곳에서'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