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예술종합학교 학생 단편영화 노인 배우를 구합니다.(남여1분씩)

clo 2014.11.04 01:03:53 제작: 차정윤 작품 제목: 갑니다 감독: 차정윤 극중배역: 60대 후반의 할머님, 70대 초반의 할아버님(노부부입니다) 촬영기간: 11월 14일-16일 사이 2회차 출연료: 협의후 결정하겠습니다 모집인원: 2명 모집성별: 남자, 여자 담당자: 연출 차정윤 전화번호: 010-9284-7994 이메일: irene1253@hotmail.com 모집 마감일: 2014-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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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예술종합학교 영화과 학생이자 영화 <갑니다>  연출을 맡은 차정윤입니다.

이번에 학교 수업 과제의 일환으로, 5분 정도 러닝타임의 초단편 무성영화 를 만들고자 합니다.

오즈 야스지로 감독을 오마주하는 작품을 생각하고 있구요, 구체적인 작품은 <동경이야기>를 비롯 <맥추>, <만춘> 입니다.

시나리오가 나와있는 상태이고, 촬영에 앞서 '가장 중요한' 배우 분들을 구하는 중입니다. 할머니 한 분, 할아버지 한 분 이렇게 두 분을 모집합니다.

촬영은 강원도 고성에서 진행될 예정이고요, 하루에서 이틀. 넉넉히 2회차 촬영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동 및 식사, 숙박은 저희 쪽에서 제공해 드릴 계획입니다.

- 노부부의 이야기인 만큼, 두 배우분의 역할과 호흡이 정말 중요합니다.

 

학생 영화, 라고 생각하지 않고. 오로지 좋은 작품을 만들기 위해 열심히 프리 프로덕션 작업을 진행 중입니다.

 

부담 갖지 마시고, 어떤 것이라도 좋으니 편하게 연락 주시면 좋겠습니다. 배우 분이 정해지면 그 이후에 최대한 많은 대화를 나누려고 합니다. 시나리오는 직접 만나 뵈는 자리에서 드리도록 할께요.

기본적으로 원하는 이미지가 있다면, 할아버님은 오즈 감독 영화에서 대부분의 아버지 역할을 맡은 류치슈 와 비슷한 이미지였으면 합니다. 꼭 그렇지 않더라도 크게 관계가 없으니, 연락부탁드려요.

다만 할머님, 할아버님 두 분 모두 강한 인상보다는 인자한 이미지를 찾고 있습니다.

 

 

 

 (연락은 이메일 혹은 문자로 부탁드려요.)

 

 

간단한 시놉시스와 연출의도 를 알려드리며 글 마치겠습니다.

 

 

시놉시스 

 

아들을 잃은 노부부가 있다. 아들을 떠나 보낸 후 17년의 시간이 흘렀다. (아들이 떠난 나이 스물넷, 현재 노인의 나이 일흔넷, 부인의 나이 예순 아홉) 그를 떠올릴 수 있는 공간으로 노부부는 함께 떠난다. 그곳에서 나란히 앉아 시간을 보내던 중 잠깐 다녀 올 곳이 있다며 자리를 뜨는 노인. 돌아온 노인의 모습이 달라져 있다. 영화에서의 마지막 대사 - 부인에게 "우리 이제 그만 갑시다." 라고 말하는 노인은 '어디로' 가자는 것일까. 두 사람은 어디로 갈 수 있을까...

 

(참고: 오즈 야스지로의 <동경 이야기>중에서. 노부부가 등장하고, 자식들 중 한 명인 아들 쇼지가 전쟁 죽에 죽은 설정이 등장합니다.)

 

 

 

연출의도

 

여기서의 '가는 행위'는 물리적인 이동의 의미를 포함할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

가는 것. 떠나는 것. 은 분명 이동임에도 불구하고 '어디로' 가는지의 목적지가 중요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가야할 곳이 있어서 그 곳을 향해 가자는 의미라기보다는, '갑시다' 라는 말 속에 담긴 의지.

우리, 머물러 있지 말고, 고여 있지 말고, 정체해 있지 말자는 일종의 다짐이 느껴지도록 영화를 만들고

싶습니다. 어찌할 수 없었던 크나큰 상실은 아무리 시간이 흐른다고 해도 여전히 상실이고, 여전히

이별이고, 여전히 아플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살아갈 수 있거나 살아가야만 합니다.

그래서 노부부는 <갑니다>.

 

오즈 야스지로 감독은 흔히 가족애, 가족관계를 그리고 있다는 평을 받아요. 그러나 그 말은 어디까지나

표면적일 수밖에 없고 오히려 본질적으로는 가족의 해체와 분리를 다루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것은

마침내 어떤 종류로든지간에 '이별'이 되어 버려요. <갑니다>에서는 상실. 그 상실의 크기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줄어들지 않을 것만 같은 (자식을 잃은) 순간에조차, 슬픔에 고여 있는 것 대신

- "가자", "갑시다" 라고 말할 수 있는 삶에의 의지를 보여주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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