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오늘도 좋은 광고 한 편을 제작하기 위해 잠도 못 자고, 사생활도 없고, 친구도 못 만나는 PD님들, 그리고 조감독님들.
저는 27살의 남자입니다. CF 연출부 경험은 한… 50번 조금 넘는 것 같네요. 대학 학부시절부터 광고계에 관심이 컸고, 그 꿈이 한 번도 흔들린 적이 없습니다. 덕분에 이번에 광고대행사에 AE로 취업하게 됐어요. 그리 유명한 회사는 아니지만 인턴 생활 중 좋은 기억이 많아서 나름 제 직장에 만족합니다. 그래서 저는 오늘 이후로 CF 연출부 알바와는 영원히 빠이빠이입니다.
위의 문장에 ‘영원히’라고 못을 밖기까지… 정말 많은 일들이 있었죠. 솔직히 좋은 기억은 별로 없습니다. 대부분이 힘들었던 기억, 기분 상했던 기억, 부당함에 아무 말 못하고 꾹 참아야 했던 기억들이네요. 그 많고 많은 기억 중, ‘언어’ 문제와 관련하여 한 말씀 드리고자 합니다.
“저기요….. 왜 반말해요?”
이렇게 질문하면 제가 이상한 건가요? 혹 “알바 주제에.” 라고 생각하시나요? 솔직히 광고판 언어 문제 정말 심각하다고 생각합니다. 태어나서 처음 보는 사람한테 “야! 너! 이 새끼! 야 이 새끼야! 저 새끼 진짜! 저 멍청한 새끼! 저 븅신!” 수도 없이 많이 들어봤습니다. 일단 머릿속에 쓱 스쳐가는 회사로는 아프…….. 카니스탄인지 뭐시기인지 하는 회사네요. 거기는 알바생 가축 취급하기로 명성이 자자하죠. 아프…… 뿐만이 아닙니다. 미간에 주름 쫙, 어깨에 힘 빡 주고 입만 열었다 하면 반말에 욕설에…. 그런 조감독 퍼스트, 세컨들, 촬영 감독들, 아트 실장들, 심지어 새파랗게 어린 아트팀 세컨까지… 너무나 많이 만나왔습니다.
상황은 이렇습니다. 연출부에게 가위 좀 가져다 달라고 합니다. 저는 태어나서 처음 만나는 AD 박스죠. 박스는 정리 하나 안 된 채 아수라장입니다. 가위를 찾는 데 시간이 지체됩니다. 가위는 포장도 뜯기지 않은 새 것입니다. 일일이 뜯어야 합니다. 가져다 줍니다. 그리고선 들려오는 칼날 같은 한 마디. “씨발 젼나게 빨리도 갖다 주네.” 그리고 인상 팍. “카메라 롤~~”
저도 욕 한마디 하겠습니다. 씨발 진짜 꼭 그렇게 욕을 꼭 섞어야 했나요?
저는 그나마 나이가 많은 축이 아니어서 다행(?)이긴 한데. 알바하다 보면 서른 둘, 셋, 넷, 심지어 50대 아저씨도 본 적 있어요. 그런 분들이 일 하시다가 자기 또래의, 심지어 액면가로 딱 보아도 자기보다 어린 사람한테 ‘씨발’ 소리를 들어야 할 때, 정말 이건 아니다 싶었네요. 그렇게 사람의 감정은 상하고 상해갑니다. 새벽 공기 마시며 상쾌하게 출근할 때의 기분은 그 순간 증발입니다. 욕을 먹은 사람 입장에서는,,, 솔직히 일 열심히 해주기 싫습니다. 어차피 하루짜리 알바인데요. 그들도 절 하루짜리 ‘병신’이라고 취급하는데요 뭘. 저 역시도 얄팍한 인간이어서 이렇게 생각한 적 많습니다. 돈 만원이 아쉬워도 그 회사는 다신 안 가죠.
이것은 사람 성격과 인성 문제를 뛰어 넘어서 업계 전반의 문화적 문제 같습니다. 그냥 그 업계 문화가 그런 것 같아요. 아주 옛날 옛적 오~래 전부터 굳어져 온….. 제가 이렇게 장문의 글을 올린다고 바뀔 상황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는 것은 더 큰 문제인 것 같아 이렇게 적습니다.
일을 막 시켜도 안 하겠다는 거 아닙니다. 촬영 새벽까지 딜레이 되는 거? 이 바닥에선 예삿일이죠. 식사 한 끼 라면으로 때운다고 굶어 죽지 않습니다. 턱없이 낮은 오버 차지? 그거보다 견디기 힘든 것이 바로 광고계 분들의 ‘언어적 무시와 하대’입니다. 하루짜리로 대해주실 거라면 알바생들도 하루짜리로 보답해드릴 겁니다. 말만 예쁘게 해 주셔도 건성건성, 성의 없게 일 하시는 분들 확 줄어듭니다.
인형탈 알바를 할 때에도, 카페에서 커피를 만들 때에도, 일식집에서 서빙을 할 때에도 광고판에서 들었던 욕은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편의점 사장님들 나이가 마흔, 쉰을 훌쩍 넘기셨어도, 알바생한테 병신, 씨발, 새끼, 같은 상스러운 말 쓰시는 분 요즘은 거의 없습니다. 물론 감정 섞인 잔소리를 하는 경우는 있습니다. 하지만 ‘병신’이라는 낱말은 들어 본 적이 없네요. 옛날 7080 공돌이 공순이들 미싱 돌리던 시절이 아니죠. 더딘 속도이지만, 세상이 점점 나아지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광고계 분들은 너무나도 일에 치이셔서 세상 돌아가는 걸 모르시겠지만, 세상은 그렇게 변화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기분 좋은 변화는 점점 확대되었으면 확대되었지 축소되지는 않을 것입니다.
앞으로 저도 좋은 광고 기획할 거고 여러분도 좋은 광고 제작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좋은 광고의 기준은, 거창한 게 아니라 좋은 ‘사람’입니다.
좋은 사람은 좋은 말을 입에 담고 삽니다.
“꼬우면 하지 마세요.” 같은 수준 낮은 댓글은 부디 안 달렸으면 합니다.
마지막은 이 문장으로 마무리 하고 싶습니다.
니가 다 써보기도 전에 죽을만큼 많은, 세상의 모든 예쁜 말, 지금부터 사용하세요.
분명한 프로젝트나 회사가 아니면 경계하시는게 좋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