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1~2달 사이 기실 배우들에게 온 연락입니다.
물론 기실 배우들은 스스로 판단했거나, 저에게 미리 물어봐서 피해는 없었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 글을 보고 있는 외부 배우 누군가는 여기에 넘어가서 돈을 잃었을 거예요. 늦게나마 이 글을 봤다면, 그 돈은 보내주고 다시 잘 준비해서 좋은 작품 만나기를 바라는 마음에 적어봅니다.
첫 번째 사례입니다.
작품에 출연시켜준다고 하고, 돈을 보내라고 하는 경우입니다.
> 이곳은 50만원을 요구했군요. 이 정도면 귀엽네요.
간절한 마음이 크다면, 이 조건은 언뜻 보아 나쁘지 않아 보입니다. 강남 캐스팅 학원이 월 50-60만 원이라고 하면, 수업료 1개월 치만 내면, 단편영화 하나 출연할 수 있는 거잖아요? 그러니까 계산해 봤을 때 나쁘지는 않은 거죠.
근데 "작품 촬영하면서 카메라 앞에서 어떻게 연기해야 하는지 제대로 연기 교육을 해줄게"도 아니고, "돈 내면 작품에 캐스팅해 줄게"라고 사기 목적으로 계획된 것은 결국 작품으로 만들어지지도 못하고 엎어지는 일이 훨씬 많습니다. 혹은 만들어져도 어디에 들이밀지도 못하는, 돈을 줘도 안 찍는 허접한 영상 하나 나올 가능성이 큽니다. 허접한 영상이라도 찍으면 다행이지만, 대부분은 안 만들어집니다. 질질 끌면서 희망고문하며 몇 개월, 1년 이상 끌다가 지쳐서 나가떨어지게 만들겠죠. 왜냐하면 이렇게 접근하는 사람들은 처음부터 당신 돈을 가져가는 게 목적이었으니까요.
다음은 금액이 좀 더 큰, 두 번째 사례입니다.
신생 소속사에서 프로필+매니저 투자 비용 목적으로,
캐스팅과 케어를 약속하며 1년에 300만원을 요구한 겁니다.
이런 경우 많으니 조심하세요.
이건 엔터 업계가 어떻게 움직이는지 잘 모르는 배우 지망생들에게 많이 치는 수법입니다.
일단, 1년에 300만원? 말도 안 되는 금액이에요.
차라리 1년 계약에 1200만원을 요구했다면 더 그럴듯했을 텐데 말이죠.
막내 매니저/로드 매니저 1명에 월 300만원은 줘야 해요. 이것도 몇 년 전 금액이라, 지금은 더 올라갔을 수도 있겠네요. 근데 캐스팅까지 해주려면 일을 잡아오는 실장급이어야 하는데, 이건 월 500만원은 줘야 할 것이고. 그렇게 1년이면 6000만원을 요구하는 것이 현실적으로는 더 맞을 것 같네요.
하지만 이것도 이상한 게, 배우 지망생/신인배우가 일이 계속 있는 게 아니라면, 로드 매니저가 계속 따라붙을 이유가 없죠. 여기서 운 좋게 일이 생겨서 촬영을 나간다고 해도, 헤어 메이크업 샵 비용 들고, 드라마 들어가면 옷이 날짜에 붙도록 계산해 주는 스타일리스트가 있어야 하고, 스타일리스트도 옷만 구해주는 경우와 촬영장에 따라와서 케어까지 해주는 케이스 두 개로 나뉘어서 또 단가가 나뉘고요.
아무튼.. 더 있지만 이 정도 설명하고 다시 처음으로 와서, 1년에 300만원?
말이 되나요?
그냥 여러분 돈 가져간 겁니다.
일 진행이 처음부터 불가능한 상태로 제안해놓고.
물론 돈 입금 후에 이거 하나는 할 겁니다.
'배우 프로필 촬영'
이건 해줄 거예요. 왜냐면 프로필 찍는데 30만원이면 되니까요. 그러면 아무것도 모르는 배우지망생들은 어깨에 뽕 들어가서 뭔가 되고 있다는 착각에 빠지고 믿게 되어요. "그래! 뭐라도 해주잖아?! 기다려보자." 근데 프로필은 회사 없이도 돈만 있으면 혼자 찍을 수 있어요. 대단한 거 아닙니다.
그리고 기다리다 지칠 때쯤 불만을 갖기 시작하면, 작품 한두 개 정도 이야기되고 있으니 기다리라고 할 겁니다. 물론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그 매니저 상상 속 작품일 확률이 크지만요. 더 지나면, 매니저가 일 잡으러 가느라 활동비(주유비, 카페, 술값, 접대비)로 쓰였다고, 돈이 더 필요하다며 더 큰돈을 요구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시간이 가면서 여러분 돈은 종이가 될 거예요.
그 회사가 인터넷 치면 나오는, 밖에서 보면 번듯한 회사다? 상관없어요. 여러분도 내일 사업체 하나 등록할 수 있어요. 제작사 대표님이 되실 수 있습니다. 인터넷에 등록해 보세요. 됩니다. 사진도 여러 개 넣으시면 홈페이지도 이쁘게 만들 수 있어요. 대표님 명함도 팔 수 있고요.
여러분, 배우지망생의 간절함을 역이용하는 사기꾼은 없어지지 않아요. 그러면 내가 그걸 판별하는 능력을 기르는 수밖에 없어요. 스스로 판단이 어렵다면, 반드시 현장에서 일하고 있는 배우 선배, 코치에게 물어보세요.
빨리, 쉽게 가려고 하지 마세요. 내가 아직 실력이 그만큼 안 되었는데, 뭔가 쉽게 풀리네? 생각이 들면, 의심해야 해요. 세상에서 내가 가장 이쁘고 잘생겼다고 하는 부모님 말고, 내가 그만큼이 아닌데 나를 높여주고 대우한다면 그건 의심해야죠.
출연이든 소속사든. 여러분이 가치가 있어야 합니다. 돈 받고 제대로 배우답게 일하세요. 그거 하고 싶어서 이 일에 뛰어든 거 아닌가요? 그러면 '왜 나 안 써주지?'하면서 고뇌하다가, 위와 같은 사기꾼들이 주는 것을 기회라고 생각하면서 걸려들지 마시라고요.
거울을 보세요. 얼굴을 보세요. 몸매를 보세요. 그리고 당신의 연기력과 매력을 생각하세요. 돈을 주고 쓸 만큼의 가치가 있는지. 스스로 냉정하게 판단하세요. 스스로 생각해도 "나 아닌데.." 하면, 남들 눈에도 그렇습니다. 그러면 스스로 귀하게 쓰일 수 있게, 제대로 연기 공부하고, 매일 훈련하고, 외모 관리하시고, 당당하게 '배우로' 촬영장에 서세요. 그게 스스로를 소중하게 생각하는 겁니다.
조급해하지 말고 바르게 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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