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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험과 도발의 진수성찬 -서울독립영화제2002 -씨네21

duke518
2002년 12월 18일 15시 11분 28초 1886 2
실험과 대안은 독립영화의 기치고 화두다. 12월20일부터 막을 여는 ‘서울독립영화제 2002 ’는 올 한해 쏟아진 독립영화를 두루 살핀다는 점에서 끊임없는 자기 모색을 엿볼 수 있는 창이기도 하다. ‘충돌’이라는 이번 영화제의 부제는 주최쪽인 한국독립영화협회의 일방적인 선언이라기보다는 “초심으로 돌아가자”는 독립영화인들의 공유된 문제의식의 발로처럼 보인다. 이는 12월28일까지 상영되는 42편의 경쟁작에서 뚜렷이 나타난다. “충무로로 대변되는 기성 영화언어에 도전하는 작품들을 일별하는 데 중점을 뒀다”는 영화제쪽의 설명대로 예심을 거친 상영작들은 관습에의 도발을 통해 독립영화의 정체성 찾기를 보여준다.

경계는 허물고, 문턱은 낮추고

서울독립영화제는 1999년부터 한국독립단편영화제라는 이름으로 불리며 열린 경쟁영화제다. 인디포럼이 새로운 작가들을 발굴하는 장이었다면, 한해 결실이라 할 만한 작품들을 격려하는 일이 이 행사의 몫이었다. 올해 행사명을 바꾼 것에 대해 조영각 집행위원장은 “그동안 독립단편이라는 모호한 개념을 써왔다”며 “형식별 경계를 허물고 명실상부한 독립영화제로 거듭나기 위한 것”이라고 밝혔다. 실제로 지난해부터 극영화, 애니메이션, 다큐멘터리 등 장르별 시상을 단편(25분 이하), 중편(60분 미만), 장편부문으로만 바꾼 데서 더 나아가 서울독립영화제는 초청형식으로 상영됐던 뮤직비디오, 웹아트 등에도 출품제한을 두지 않고 경쟁의 문을 활짝 열었다.

이로 인해 올해는 그 어느 때보다 선의의 경쟁이 치열할 전망. 26편이 각축을 벌이는 단편영화 부문은 수상작을 쉽게 점치기 어려울 정도로 각양각색의 작품들이 포진해 있다.

  
<연분> <몸> <리사이클링>

원색 위주의 강렬한 색감과 절지애니메이션 특유의 날카로움을 결합해 설화적인 분위기를 물씬 안겨주는 <연분>, 가난이라는 가혹한 현실을 탈출하기 위한 한 소녀의 비상을 스타일리시하게 묘사하는 <비둘기>, 진부하지 않은 방식으로 상처투성이 역사를 망각의 늪에서 건져올리는 <몸>, 재활용 제품을 이용한 스톱모션 기법으로 환경의 중요성을 역설하는 애니메이션 <리사이클링>, 우연히 만난 두 남녀의 독백을 다양한 사운드와 이미지로 해체한 실험영화 < 7AM.SLOWLY:Opposite >, 가족과의 대화 중에 자신을 이해하지 못하자 폭발 직전의 신경증에 도달하는 한 소녀의 심리상태를 설득력 있게 묘사한 <과부아 상태에 빠지다>, 똑같은 외모를 갖고, 유사한 경험을 겪으며 살아가는 두 여자 이야기 <푸른 저녁의 감각> 등 경쟁작 대열에 선 작품들 모두 쟁쟁하다. 여기에 부산아시아단편영화제, 미장센단편영화제 등에서 수상했던 작품들도 대열에 합류해 있다. 초경을 경험한 소녀의 공포심리를 섬세하고 촘촘한 이미지 배열로 묘사한 <사춘기>, 진실이 통용되지 않는 세상에 대한 한 남자의 복수극을 통해 권력비판에 초점을 맞춘 신재인 감독의 <그의 진실이 전진한다> 등도 놓쳐선 곤란한 단편들.

다양한 꼴의 재기발랄하고 에너제틱한 작품들도 쉽게 눈에 띈다. <하드보일드 초콜렛 스타일>은 본선에 오른 유일한 뮤직비디오. 영화아카데미 출신으로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에서 류승범의 친구로 나오기도 했던 장건재 감독은 립싱크와 연기까지 도맡아 재치 넘치는 영상을 선사한다. 탈옥한 존속살해범의 인질극을 그리는 원신연 감독의 <자장가> 또한 독특한 형식의 작품. 무술감독 출신인 감독은 하나의 숏으로 10분이 넘는 인질극을 긴장감 있게 연출했다. <미녀와 야수> <피노키오> 등 익숙한 동화의 설정을 비틀어 현실의 부조리를 강조하는 <인톨러런스>도 에피소드별로 다양한 형식을 취해 보기가 새롭다. <바다를 간직하며>는 거침없는 발언이 귀에 박히는 영화. 학교를 도중 그만둔 소녀들이 도시의 밤을 누비는 모습을 담았다. 짝사랑했던 이에게 다가가 인터뷰를 청하는 < My Sweet Record > 또한 진솔함이 돋보이는 내밀한 개인 다큐멘터리로 주목을 요한다.

실험과 도발의 진수성찬

중편부문은 서울독립영화제만의 특별한 섹션이다. 특히 본선에 오른 12편의 작품들은 예심위원들로부터 “묵직한 주제와 형식적 실험이 균형을 이루고 있다”는 평가를 고루 받은 만큼 기대를 모은다. 단편영화 <복서>로 잘 알려진 박성오 감독의 <연애담>은 두 남녀의 사랑을 건조하게 포착함으로써 세상에 떠다니는 러브 스토리가 허구임을 증명하는 영화.

1970년대 농촌을 시네마스코프 화면으로 재현해서 향수를 불러일으킴과 동시에 등장인물들의 내상까지 응시하게끔 유도하는 <휴가>, 배우들의 천연덕스런 연기가 일품인 <안다고 말하지 마라> 등은 감독의 탄탄한 기본기를 보여주는 중편들이다.

이 밖에 철거 직전의 빈민촌을 다루되 <상계동 올림픽>으로 대표되는 사회다큐멘터리의 경향의 반대편에서 문제를 제기하는 <폐허, 숨을 쉬다>(사진)를 비롯해 올해 인디포럼에서 <빛속의 휴식> <시간의식> <아름다움에 대한 갈증> 등도 이번 기회에 되새겨 볼 만한 실험영화다.

이에 비해 장편부문은 저조하다. 지난해 6편에 이어 올해는 4편만이 상영된다. 출품편수의 저조는 최근 몇년 동안 자생적인 배급망을 통해 독립장편영화의 제작 활성화를 꾀했던 독립영화계가 아직은 이렇다할 만한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빈 자리를 메워주는 것은 역시 진중한 다큐멘터리. 국가보안법이라는 철조망에 막혀 현 정부에서도 몇 차례 입국이 좌절됐던 재독철학자 송두율 교수를 내세워 남한사회의 경직성을 비판한 <경계도시>, 월드컵의 아우성 속에 묻힌 노동자들의 비탄을 담은 <그들만의 월드컵>, 생존권 투쟁이 무자비한 난동으로 왜곡되는 것을 지켜보아야 했던 20여년 전 강원도 사북 광부들의 한탄에 귀기울이는 <먼지, 사북을 묻다> 등이 나란히 상영된다. 김정구 감독을 중심으로 파적의 회원들이 현대인의 분열증에 관한 옴니버스 단편을 묶어 내놓은 것이 극영화로선 유일하다.

초청작은 더 재밌다

경쟁영화제라고 해서 초청작들을 디저트로 분류하는 것은 금물이다. 지난해까지는 본선에 오르지 못했던 영화들이 상영기회를 얻었지만, 올해는 상업영화들 틈바구니에서 관객과 호흡할 만큼 충분한 상영기간을 얻지 못했던 <뽀삐> <우렁각시> <낙타(들)> 등 이목을 끌었던 독립장편영화들이 연이어 상영된다.

이 밖에도 올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화제를 모았던 박기복 감독의 <영매-산자와 죽은자의 화해>, 이현승 감독의 단편 <비트윈>, 김홍준 감독의 비디오 수필 <나의 한국영화-에피소드1>(사진) 등이 풍성한 식단 한켠을 채울 예정이다.

대안영상문화발전소 아이공이 직접 프로그래밍한 기획초청전 또한 미디어 아트, 비주얼 레이브 등 이제껏 맛보지 못했던 다양한 영상들을 맛볼 수 있는 자리다. 해외초청 부문은 표를 구하기가 쉽지 않을 것으로 예상되는 인기 섹션. 미국 독립영화의 대부로 불리는 ‘존 카사베츠 회고전’과 ‘영국단편파노라마:브리티쉬 쇼트 인베이전’이 준비됐다.

영화제를 앞두고 영양식단을 짜면서 한국독립영화협회는 상영관 문제로도 골머리를 앓았다. 서울아트시네마와 미로스페이스에서 나누어 상영되는데다, 두곳을 합해도 객석 규모가 지난해보다 200석이나 줄었기 때문. 한해 국내 독립영화를 결산하는 자리임에도 불구하고 안정적인 상영관 확보를 위한 정부와 관계기관의 관심과 지원은 여전히 부족한 것이 현실이다. 덧붙여, ‘깜장고무신’이라는 이름의 밴드를 결성 개막식의 축제 분위기를 돋웠던 지난해의 바통을 이어받아 독립영화인들과 돈독한 유대를 맺고 있는 그룹 ‘32-28-39’의 공연이 개막작 상영에 앞서 펼쳐진다. 상영작 전회를 둘러볼 수 있는 관람권(심야상영 제외)은 5만원에 구입할 수 있으며, 10명 이상의 단체관람의 경우에는 할인혜택을 받는다. 중·고등학생들은 신분증을 제시하면, 편당 5천원인 관람권을 2천원에 구입할 수 있다. 예매 및 기타 자세한 문의는 영화제 사무국(02-362-9513), 한독협 사무국(02-334-3166), www.siff.or.kr로 하면 된다.

이영진 ant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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