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을 눈으로 하는 줄은 누가 모르랴.
그런데 왜 저자는 편집에서 눈을 강조하는 걸까.
책 제목이 좀 이상했다. 눈보다 빠른 것은 없다라니...
우리의 눈은 영화를 공부했건 안했건 뭔가 이상한 것을 감지하는 능력이 탁월하다는 내용에서 시작한다.
관객이 영화를 보면서 뭔가 이상하다고 느낄 때, 그것이 촬영이든 연기일 때는 잘못된 걸 쉽게 알아차릴 수 있다.
그런데, 때로는 이상하다고 느끼면서도 딱히 왜 그런지를 찾아내기 어려운 경우가 있다.
음악을 공부하지 안은 귀도 그렇고, 영화를 공부하지 않은 눈도 뭔가 불협화음이 일어나는 것을 감지한다.
사실, 영화를 만드는 사람이면 음악가가 불협화음을 찾아내듯 문제가 되는 컷을 잡아내서 고칠 줄 알아야 한다.
'영화편집, 눈보다 빠른 것은 없다'란 책을 읽은 후 무엇이 영화를 허접하게 하는지 그 이유와 해결책을 분명히 알게 되었다.
그리고 섬세한 영화 웰메이드 영화가 왜 잘 만든 건지 제대로 감상하게 되었다.
단순히 그냥 안 좋은게 아니라 저 장면이 이렇게 저렇게 연결되어 넘어가니까 나쁘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이다.
이러이러한 편집 테크닉이 있다고 소개하는 것이 아니라,
상업영화와 학생영화의 장면들을 분석하고 문제점과 해결책을 그림과 논리로 설명해서 좋다.
단호하게 말하는데, 편집을 모르고서는 좋은 영화를 만들 수 없다.
그리고 나는 이것을 아주 아주 늦게 깨달았다.
내가 최고로 치는 유현목 감독님의 경우, 편집을 아무것도 모르는 시절에도 편집이 훌륭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게 어떤 맥락에서 훌륭한지를 설명하기란 힘들었다.
그럼에도 감정을 이끌어 가는 흐름이 대단히 날카롭다고 생각했는데, 결국 편집에 대한 탁월한 이해에서 나왔다고 생각한다.
영화비평을 할 때, 편집을 비평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전부다 스토리나 연기 위주로 하고, 가끔씩 촬영얘기가 나올 뿐이다.
영화 만드는 사람 사이에서도 편집이 좋았다는 얘기는 거의 듣질 못했다.
편집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이 없기 때문이다.
솔직히 좋은 영화 감독은 편집과 사운드를 이해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영화 '괴물'의 초반 장면에 보면, 외국인 과학자와 일하는 한국인과의 실험실 장면이 있다.
그때 사운드를 들어보면, 소리의 매칭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화면은 롱숏으로 잡고 있다가 미디엄 숏으로 들어가는데도 사운드 공간은 변하지 않는다.
많은 한국영화가 그렇다. 이건 좀 다른 얘기지만 녹음 및 편집에 대한 이해부족에서 생긴다.
편집이 훌륭한 영화 중 하나라고 회자되는 '올드보이'는 사운드와의 결합이 강렬한 영화이다.
박찬욱 감독의 초기 영화인 '3인조'란 영화를 보면, 카메라로 상당한 실험을 많이 한 걸 알 수 있다.
처음 볼 때는 몰랐지만, 당시 영화로서는 상당히 복잡한 카메라 워크를 하고 있다.
나름 범상치 않은 작업이었지만, 내가 보기엔 그때까지만 해도 편집에 대한 감독의 이해가 받쳐주질 못했다.
촬영에서부터 편집을 염두해두고 사용했어야 했는데, 그의 샷들이 다소 롱테크인 것들을 결함하기엔
초짜인 감독에게는 힘들었을 것이다.
당시에 현장편집이 있었더라면 그런 실수는 덜었을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많이 알려지지 않은 영화중에서 '질투는 나의 힘'이란 영화를 좋게 평가한다.
물론 홍상수의 영향을 너무 많이 받긴 했어도 홍상수와는 다른 여성특유의 섬세함이 존재한다.
예전에 감독에게 직접 수업을 들을 기회가 있었는데 그때 자신의 단편을 가지고 편집이 어떻게 구성되는지를 보여준 적이 있다.
비포와 에프터로 보여준 적이 있었는데, 수업내용은 편집이 만들어낸 간결함이었다.
한두 개의 컷의 이동으로 내용이 분명하고 강렬해지면서 늘어나지 않는 것이다.
우리는 글을 쓴다.
다 쓰고 난 후 글의 맥락을 조정하기도 하고 뒤바꾸기도 한다.
그게 편집이다.
글을 쓰게 되면 당연히 편집을 하게 되고 소위 퇴고 과정이 없이 좋은 글이 나올 수가 없다.
그런데, 글이 아무때나 퇴고할 수 있는 반면에 영화는 찍은 분량이 모자르다고 해서 다시 촬영을 가긴 불가능하다.
사운드와 함께 편집을 후반작업이라는 이름으로 너무 무시해 왔다.
그러다보니 찍고 버리는 샷들도 무지 많았다. 왜?
컷들이 안 붙으니까... 필요 없는 샷을 찍어서...
요즘 영화 현장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현장편집을 한다. 김지운 감독이 할리우드에서 한국식 현장편집으로 파란을 일으켰다 한다.
독립영화쪽에서도 촬영과 편집이 무척 가까워졌다...
편집을 잘 아는 감독일수록 현장편집을 더 적절히 이용할 수 있을 건 자명하다.
반드시 찍어야 할 씬인가를 결정하는 것은, 컷과 컷을 어떻게 붙여야 효과적인 지를 이해하는 능력에서 나온다.
즉, 근본적인 편집원리를 모르고서는 편집은 물론 연출을 할 수 없으리.
옛날에 180도 법칙을 모르는 촬영스텝과 일을 한 적이 있다.
그리고 그 법칙을 모르면서 촬영쪽에 일하는 사람이 무지 많다는 것도 안다.
그것은 2차원이란 영화의 특성에서 나오는 것이고 편집과 불가분의 관계다.
편집에도 기본적으로 알아야 할 것들이 존재한다.
연출과 촬영을 공부하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편집을 알아야 한다.
편집의 원리에 대한 책이 그간 없었기에 소개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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